▶[서지월시인의 현대시창작 해설]」<좋은 시 읽기와 좋은 시 쓰기의 실제>
ㅁ김명인 시- ‘바다의 아코디언’
김명인시인의 ‘바다의 아코디언’을 보면 문장을 휘감는게 예사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노래라면 내가 부를 차례라도
너조차 순서를 기다리지 않는다
다리 절며 혼자 부안 격포로 돌 때
갈매기 울음으로 친다면 수수억 톤
파도소리 긁어대던 아코디언이
갯벌 위에 떨어져 있다.
파도는 몇 겁쯤 건반에 얹히더라도
지치거나 병들거나 늙는 법이 없어서
소리로 패이는 시간의 헛된 주름만 수시로
저의 생멸(生滅)을 거듭할 뿐.
접혔다 펼쳐지는 한순간이라면 이미
한생애의 내력일 것이니.
추억과 고집 중 어느 것으로
저 영원을 다 켜댈 수 있겠느냐.
채석에 스몄다 빠져나가는 썰물이
오늘도 석양에 반짝거린다.
고요해지거라. 고요해지거라.
쓰려고 작정하면 어느새 바닥 드러내는
삶과 같아서 뻘 밭 위
무수한 겹주름들.
저물더라도 나머지의 음자리까지
천천치, 천천히 파도소리가 씻어 내리니,
지워진 자취가 비로소 아득해지는
어스름 속으로
누군가 끝없이 아코디언을 펼치고 있다.
ㅡ김명인 시-‘바다의 아코디언’ 전문.
바다의 아코디언이라? 무얼 의미하는가. 쉴 새 없이 주름을 데리고 와 해변가에 부서지는 겹겹의 파도물결를 오래 바라보지 않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 착상이리라. 파도물살만 데리고 오는 게 아니라 그 물이랑 사이로는 해조음까지 스며들어 함께 오고 있는 것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하루 이틀이 아니라 수천 년 수만 년을 아코디언을 켜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헛된 주름만 수시로 / 저의 생멸(生滅)을 거듭할 뿐'이라 했는가 하면, '접혔다 펼쳐지는 한순간이라면 이미 / 한 생애의 내력일' 것이나, 한 생애에 극한된 몸짓이 아니라는데 있다. 뒷받침해 주는 아주 고급적인 표현으로는 '추억과 고집 중 어느 것으로 / 저 영원을 다 켜댈 수 있겠느냐'인데, 강한 역설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생멸을 관조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바다를 읽을 수 있다.
**(한국 대구문인협회 발간「장독대석류꽃」<좋은 시 읽기와 좋은 시 쓰기의 실제>에 수록.2006.7)
'▶좋은 시쓰기와 읽기 > ▷한국 현대시 해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ㅁ오세영 시 '矛盾의 흙' (0) | 2008.12.21 |
---|---|
ㅁ황동규의 시-'풍장(風葬)-1' (0) | 2008.12.21 |
ㅁ신동집 시 '행인 1' (0) | 2008.12.21 |
ㅁ서정주 시 ‘무슨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 (0) | 2008.12.21 |
ㅁ작가론 보고서/서지월시인론ㅁ (0) | 2008.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