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월시인의 현대시창작 해설]」<좋은 시 읽기와 좋은 시 쓰기의 실제>
ㅁ황동규의 시-'풍장(風葬)-1'
황동규시인의 시 <풍장(風葬)>이 말하는 생의 끝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이법인데, 그냥 숨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하나의 노정으로 펼쳐 보이며 색다른 멋이 풍기는 작품으로 읽힌다.
내 세상 뜨면 풍장 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택시에 싣고
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白金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化粧도 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ㅡ황동규의 시-'풍장(風葬)-1' 전문.
풍장으로 귀결되는 이 작품은 ‘옷은 입은 채로 /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놓고’ 그리고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결국 살을 말려 바람 속으로 사라지는 육신인 것이다. 황동규시인의 초탈의 세계는 이렇듯 문명의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데 설득력을 갖는다. 또한 시의 품격 가운데 그 하나가 표현력에 있다면 황동규의 시에서는 뛰어난 언어구사가 돋보이는데 이 작품 역시 예외는 아니다.
‘손목시계 부서질 때’는 정지는 시간 즉 죽음의 의미이며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白金조각도 /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달라고 했으니 별 의미 없어 보이는 것 같지만 그 하나하나의 몫이 언어조직 속에 구체화 되어 나타나고 있다. 언젠가 황동규시인이 한 말이 기억난다. ㅡ'시는 구체적일 때 진실과 만난다'라고 했고 보면 말이다
**(한국 대구문인협회 발간「장독대석류꽃」<좋은 시 읽기와 좋은 시 쓰기의 실제>에 수록.20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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