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쓰기와 읽기/▷한국 현대시 해설

ㅁ신동집 시 '행인 1'

아미산월 2008. 12. 21. 13:33

▶[서지월시인의 현대시창작 해설]」<좋은 시 읽기와 좋은 시 쓰기의 실제>

 

ㅁ신동집 시 '행인 1' 

 

해방 이후 대구를 대표하는 신동집시인의 시 한 편을 소개해 본다.

길을 가다 발이 무거워 한동안 나무 그늘 돌 위에 쉬어본다. 이마에 밴 땀을 씻으며 아래켠으로 눈을 돌리면 들판을 건너가는 사람의 흰옷이 간혹 조만하게 아른거리고 있다. 이웃 마을이나 읍내로 잠시 나들이 가는 길인지, 그런데 이들은 왜 하나같이 가면은 다시 안 올 행인으로만 보일까. 길은 분명 같은 길이요 내키면 언제라도 올 수 있는 길인데.

한동안 나는 생각해 본다 . 지난날 인연 있던 사람들의 일을. 바람이나 잠시 쏘이러 또는 장에나 가듯이 가벼운 인사말로 떠난 사람도 알고 보면 다시 못 올 헤어짐이 될 줄이야. 내일 또 만나자던 웃음 먹은 얼굴이 지금은 해밝은 하늘에만 걸려있는 사람도 있다.

쉬었던 몸을 일으켜 발을 다시 옮기면, 아른거리며 가는 저 들판의 사람 눈에 나도 또한 가면은 아니 올 행인으로나 보일까. 기우는 해그늘에 제비는 돌아가고 철교에 느릿이 화물차는 지난다. 오는지 가는지 구별도 없이.

ㅡ신동집 시 '행인 1' 전문.

'길은 분명 같은 길'이지만 '내키면 언제라도 올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데 이 시의 핵심이 있다. 바로 '나도 또한 가면은 아니 올 행인으로나 보'이는 것이다. 시인은 관조의 눈으로 세상풍경을 보고 있는데, '행인'이라는 어휘자체가 인간은 누구나 이 땅위에 잠시 머물렀다가는 존재인 것이다. '바람이나 잠시 쏘이러 또는 장에나 가듯이 가벼운 인사말로 떠난 사람' 뿐만 아니라, '내일 또 만나자던 웃음 먹은 얼굴이 지금은 해밝은 하늘에만 걸려있는 사람도' 언젠가는 영원한 헤어짐이 된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담담하게 펼쳐지는 풍경이 시인에게는 예사로 비치고 있는게 아니다. 이런 시인의 원숙된 달관의 경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해그늘에 제비는 돌아가고 철교에 느릿이 화물차가 지나는 풍경'이 존재해 있는 지금의 상황이나 시간이 흐르고 나면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그 좋은 예라 하겠다.

**(한국 대구문인협회 발간「장독대석류꽃」<좋은 시 읽기와 좋은 시 쓰기의 실제>에 수록.20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