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한국시단

[차령문학](2010. 봄호)서지월 시-'경칩(驚蟄) ' 외4편

아미산월 2010. 2. 23. 08:25

[차령문학](2010. 봄호)서지월 시-'경칩(驚蟄) ' 외4편


경칩(驚蟄)


서 지 월


놀라워라
세상이 다시 깨어났으니
놀라워라
지촉이 다시 흔들리고
겨우내 삼매경에 빠졌던
개구리, 개구리가 맑은 눈 비비며
우리 앞에 모습 드러냈으니


참으로 놀라워라
무덤 속 영원히 깨어나지 않은 주검들 뒤로
살결같은 흙 비집고 나와
인간세상 살맛 난다고
다시 개구리가 봄을 깨웠으니
몸 비트는 수양버들
파릇파릇한 보리들
봄하늘 어루만지노니


시냇물아 무얼하느냐
노래 불러야지
숨찬 언덕아, 풀밭이여 무얼 하느냐
새옷 갈아입어야지
맑게 씻기운 하늘아
종다리를 풀어놓아야지
해방이 따로 있느냐
너희들이 이 땅의 주인인 것을!


놀라워라
선한 눈매를 가진 개구리가
우리 앞에 다시 모습 드러냈으니
세상이 다시 살맛나느니
놀라워라
참으로 놀라워라

 

 

버드나무


서 지 월


강물 위로 뛰어내리는 나뭇잎들은
무슨 생각에서 자신을 내맡기는 걸까
강물은 늘 저 혼자 돌아다니다가
나뭇잎들 만나 머리에 이고 가는 게
그나마 반가운 듯
미소 띠며 물살 일으킨다
강가의 버드나무는 못 본 채
까치집 하나 지어놓고
거기 온힘으로 버티고 서 있다
떠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강물과 나뭇잎들과 달리
버드나무는
자신이 살아오온 날들이 흡족했다는 듯
빈 허공에 까치들 등받이 되어주며
기지개 켜고 있다

 

 

저 우산

 

서 지 월

 

누가 버린 걸까
접혀지 저 우산

햇빛나는 날은 현관에
모셔져 있다가
바람 불고 비 오는 날
외출 나갔다가
온몸 찢긴 채로
접혀져 버려진 저 우산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지만
왠지 나는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고달픈 한 生이었다
생각하는 것이다

 


눈발 속에서


서 지 월


이대로 내가 돌이 되면
너는 알까?
싸늘한 돌담에 기대어 서서
민들레꽃 피기를 기둘리는 마음


봄은 가고 또 오건만
산딸기 향기로 눈이 내리면
너를 부르며 손짓하던 뜨거운 海溢처럼
여기, 비릿한 꿈 하나 심어두고 가리라

 

흰눈


서 지 월


세상의 모든 마음이 詩가 될 수 없음을 알아
아무도 모르게 흰눈은 등 뒤에도 내린다
앞서 가는 사람 자신의 등 뒤 볼 수 없지만
뒤에서 걸어가는 사람 앞사람의 등 책장 넘기듯
훤히 읽으며 가고 있다 뒤돌아 보았을 때
잠시 앞이 되는 등이지만 쌓인 흰눈의 무게는 모른다
뒤에서 걸어가는 사람도 앞서 가는
사람의 등 뒤에 쌓인 눈의 표정만 읽을 뿐
그 무게 가늠할 수 없다
이제 눈은 더 많이 내려 앞서 가는 사람의 발이
더욱 깊게 패인다
뒤에서 걸어가는 사람도 발이 깊게 패이는 것
알면서도 계속 걸어간다
그 뒤를 따르는 강아지들도 자신의 등에
내리고 있는 흰눈은 보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따라온다

 

 

<약력>


• 1955년, 고주몽 연개소문과 같은 생일인 음력 5월 5일 단오날  대구 달성 출생.
• 1985년『심상』,『한국문학』신인작품상에 시가 당선 되어 등단.
• 1993년, 제3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 2002년, 중국「장백산문학상」수상.
• 시집, 『꽃이 되었나 별이 되었나』,『江물과 빨랫줄』,『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
『백도라지꽃의 노래』,『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등 있음.
• 대구시인학교, 한중문예창작대학 지도시인.


주소 : (우)711-862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78,「두문시산방」내, 徐芝月 시인
¤ 전화 : (053) 767-5526 휴대폰 011-505-0095
¤ 이메일:
poemmoon55@hanmail.net
¤ 은행계좌 ☞국민은행 : 586301-04--018322 서지월(서석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