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한국시단

[아동문예](2010.1월호)서지월 동시-'산수유 붉은 열매' 외4편

아미산월 2009. 12. 6. 07:00

[아동문예](2010.1월호)서지월 동시-'산수유 붉은 열매' 외4편

<동시-1> 산수유 붉은 열매

서 지 월


흰눈 속에
산수유 열매
눈알이 빨갛다
밤새 뭘 했기에
저토록 동글동글 할까

흰눈이 내리면서
무어라 소곤거렸기에
뜬 눈으로 밤 지세워을까

산수유 열매가
말 걸어왔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은 숲에서
밤새 오돌오돌 떨고 있었는데

안스러운 듯 흰눈이 내려
포근히 감싸주었다고


<동시-2>  겨울잠

서 지 월


절 한 채
겨울 잠에 들었다
다람쥐 오소리 자벌레들도
긴 겨울잠에 들었다

산까치 멧새들만
자신들의 세상인 양
날으고 있었다

대웅전 추녀끝에는
물고기 한 마리 춥지도 않은 듯
댕그렁 댕그렁
헤엄 치고 있었다

목탁소리는 들려왔으나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와 함께
흰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동시-3>  홍시 하나

서 지 월


홍시 하나
동그마니 달려 있다

텅 빈 하늘에
대낮에도 환한 등불같이
누굴 기다리는가

가지를 옮겨 앉는
멧새 한 마리
꽁지를 까딱까딱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지나가던 바람이
살짝 윙크하면

얼굴 더욱 빨개진 홍시
고개 떨구고
어쩔 줄 모른다


<동시-4> 조선족 아이들

서 지 월


조선족 아이들은
세종대왕을 모른데요
이순신장군을 모른데요

조선족 아이들은
소학교때 모택동을 배운데요
중국어로 말하고
중국 역사를 배운데요

조선족학교 다녀도
모택동을 배우고
중국말을 먼저 배운데요

조선족 아이들은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부르고
진달래꽃을 천지꽃이라 부른데요

조선족 아이들은
한글이라 하지 않고 조선어라 부르고
대한민국을 남조선이라 부른데요


<동시-5> 두만강에 가면

서 지 월

두만강에 가면
옥수숫대가 키재기를 한대요
강 건너 북조선땅 바라보며 키재기를 한대요
불어드는 바람한테 물어봤더니
배 굶어 키 작은 북한 아이들 안스러워
옥수수처럼 무럭무럭 자라라고
자꾸 발꿈치 높이며 키재기를 한데요

두만강은 잔돌들 품안에 안고
엄마처럼 노래 부르고
여치 베짱이들도 온 힘 다해 소리 지르며
북한 아이들 무럭무럭 자라라고
밤을 지새운데요


<시작 노트>

- 입에 발린 소리일지 모르나 나는 1986년 『 아동문예 』 신인문학상 당선으로 등단 이후 한시도 『 아동문예』를 잊어본 적이 없다. 단지 내가 다른 데에 눈을 돌려 너무 바쁘게 살아오다 보니 제대로 문안하지 못해 늘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새 25년 가까이 되었지만(10년 가까이 활동했지만) 세월의 무상함을 강하게 느낀다. 내 머리가 희끗희끗해졌으니 말이다. 그간 중국 만주땅을 9차례나 밟았는데 만주땅의 많은 아동문학가들을 만났다. 동시와 동화를 쓰는 조선족 아동문학가들을 만나보니 그들도 얼심히 조선어(한글)로 작품을 쓰고 있었다. '민족은 하나'라는 말이 실감할 수 있었다. 내게 아동문학 작품론도 의뢰해 와서 써 준 적도 있는데 어쩌면 우리 한국의 아동문학 정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이 기회에 중국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윤동주 동시비 건립에 심혈을 기울이고 계시는  한석윤 아동문학가의 동시와 동심세계를 소개해 볼까 한다. (서지월)    

 


<서지월시인 약력>

▲1955년, 대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과 연개소문과 같은 생일인 음력 5월 5일 단오날
대구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371번지에서 태어남. 본명 서석행(徐錫幸). 아명은 건식(巾湜).
▲중학교 3학년때인 1971년 소년조선일보에 동시 <초록빛 잎새>가 발표되면서부터 시를 쓰기 시작함.
▲1985년,『심상』,『한국문학』신인작품상에 각각 시 당선.  
▲1986년,『아동문예』 신인문학상 동시 당선으로 등단.
▲1993년, 제3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1999년, 한국문인협회 문경지부 주관「정문문학상」수상.
▲2002년, 중국「장백산문학상」(세계문학 부문) 수상.
▲1999년,「전업작가 대한민국정부 특별문예창작지원금 1천만원 수혜시인」으로 선정됨.
▲2005년, 백담사 만해마을 <세계평화의 시벽>에 육필詩「강물에서」가 동판으로 새겨져 있음.
▲2006년, 한국전원생활운동본부 주관, 詩碑「신 귀거래사」가 영천 보현산자연수련원에 세워짐.
▲2007년, 달성군 주관,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 KBS MBC 매일신문 영남일보 대구문화예술총연합회 등 후원으로 詩碑「비슬산 참꽃」이 비슬산 자연휴양림에 세워짐.
▲2008년, 서울특별시「시가 흐르는 서울」에 시 <내 사랑>, <인생을 묻는 그대에게>가 선정됨.
▲현재, 한국아동문학가협회 및 아동문예작가회 회원. 대구문인협회 외국문학분과위원장.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공동의장.
▲대구시인학교 지도시인.

주소 : (우)711-862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78,「시산방」내, 서지월 시인
¤ 전화 : (053) 767-5526  휴대폰 011-505-0095
¤ 이메일: poemmoon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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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아동문학평론]서지월-'한석윤시인의 동심세계'

작은 것들에 대한 꿈과 희망, 그리고 애정의 극치

ㅡ한석윤시인의 동심세계

서 지 월 (한국 시인, 아동문학가)


세계 어딜 가나 동심은 살아있다. 인간의 가장 근원정서라 할 수 있는 동심의 세계는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때묻지 않는 순진무구한 세계이다. 이러한 동심을 안고 평생을 살아오신 한석윤시인의 동시를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내게 크나큰 보람이이요 행복이었다.

1985년 등단 이후, 나는 줄곧 시를 써왔지만 내가 문학에 대한 꿈을 가지고 시작한게 동시였고 동시 또한 즐겨 써온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이글을 쓰게 된 인연이라 본다. 나는 1986년 한국의 『 아동문예』를 통해 동시인으로 이미 등단을 했으며 1996년도인가 계몽사에서 펴낸『한국아동문학선집 』42권에도 나의 동시가 3편 수록 되어있고 보면, 한석윤시인 역시 계몽사에서 펴낸『한국아동문학선집 』 에 조선족 아동문학가로 작품이 소개됐고 보면 한석윤시인의 동시를 접하는 순간 묘한 감동도 받았던 것이다.

한석윤시인은 1943년 두만강 변경지대인 훈춘 태생으로 중국 연변땅의 어엿한 원로 아동문학가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한국이 아닌 중국 국적의 조선족 아동문학가라는데 더욱 민족애와 조선족 동심애가 남다르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견해다. 내가 중국 만주땅이 좋아 즐겨다녔는데 이번 제8차 만주기행에서 드디어 한 원로 아동문학가를 만나게 되었으니 바로 연길에서 아동문학가로 활동하고 계시는 한석윤시인이었던 것이다.

한석윤시인은 이미 중국 조선족소년보사 사장, 그리고 총편집을 지내신 분으로 중국소년아동신문출판계의 최고상이라 불리우는 「엽성도상」 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소수민족문학상 및 한국 방정환문학상도 수상하셔서 이미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아동문학가이시다.

우리말이 아닌 중국어 문화권에서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 아이들에게 우리말로 씌어지는 동시를 쓰고 읽게 한다는 것 또한 조선민족이 가지고 있는 긍지이며 민족의 주체성을 살리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보면 참으로 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중국 연변땅에 빛나는 발자취를 남기고 간 아동문학가들의 시비 건립에까지 전심전력을 다하고 계시니 나는 크게 고무되지 않을 수 없었던 점도 말해두는 것이다.

어떤 장르이든 간에 문학은 감동의 산물이다. 감동이란 억지가 아니라 절로 솟구쳐 오르는 정감을 전제로 한다. 가장 원심적이며 그러면서 가장 일상적이며 가장 원대한 꿈을 제시해 주는 우주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장르가 아동문학이 아닌가 한다. 게다가 가장 명료한 단상과 깔끔한 언어로 전해주는 동시야말로 가장 친근한 우리의 동심인 것이다.

◇ ◇ ◇ ◇ ◇

1.민족정서를 노래한 동심의 세계

한석윤시인의 동시 가운데 필자 나름대로 가장 눈에 띄는 동시가 있는데 바로 <조선의 참새>다.


챠챠
중국 참새는
중국말로 울고

쥬쥬
일본 참새는
일본말로 울고

짹짹
조선 참새는
조선의 새라서
남에 가나
북에 가나
조선말로 운다

짹짹
하얀 얼 보듬는
조선의 참새

ㅡ<조선의 참새> 전문.


이런 간단한 의성어를 통한 어감에서 오는 뉘앙스의 매력도 그러하거니와, 챠챠(중국 참새), 쥬쥬(일본 참새), 짹짹(조선 참새) 등 각 단락에서 변별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우리 조선민족의 긍지를 잘 살려낸 수작으로 꼽힌다. 역시 '짹짹'하며 우는 조선 참새는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조선의 새라서 / 남에 가나 / 북에 가나 / 조선말로 운다'고 했으니 남북 역시 따로가 아닌 동족이라는 사실도 환기시켜주며 '하얀 얼 보듬는 / 조선의 참새'이니 역시 우리민족은 백의민족인 것이다.


우리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노래한 작품을 보자,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가

파아란
젖가슴
헤치여들고

수수백년
말없이
서있는 산은

ㅡ<백두산> 전문.


조선족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중국어 표기로 장백산이라 부르는지 모르지만 역시, 백두산이 의미하는 백의민족의 상징으로 오랜 세월 자리 잡아왔고 보면 거기 천지의 모습을 시인은 '파아란 / 젖가슴'이라 했으며, 왜 그렇게 '파아란 / 젖가슴 / 헤치여들고 // 수수백년 / 말없이 / 서있'기만 하는건지'를 통해서 '무엇을 / 기다리고 / 있는 것일가'가 의미하는 것은 백두산의 영원성 그 자체를 말함일 것이다. ' '파아란 / 젖가슴'을 통해서도 천지의 싱싱함과 퇴색되지 않는 맑고 정갈한 정신사가 얼비친다.


2.가족개념의 혈육의 세계

아빠가 출장 떠난
그러한 밤은
엄마하고 나하고
잠 못드는 밤

-어디서 저녁진지
받으셨을가

아기 아닌 아빠의
걱정 때문에
엄마는 밤중까지
잠 못드시고

-알쏭달쏭 꽃리봉
사시였겠지

아빠가 오실 날
꼽아보느라
손 빼들고 나도 말똥
잠이 못들고

아빠가 출장 떠난
그러한 밤은
어리 뒤척 저리 뒤척
잠 못드는 밤

ㅡ<아빠 없는 밤> 전문.


예나 지금이나 아빠가 멀리 출장 떠나고 엄마와 함께 밤잠을 설치는 정황을 눈에 선하게 잘 그려내고 있는데 그러한 혈육지정을 동심의 세계에서 바라본 대표적인 작품으로 읽힌다. 내가 중국 만주땅(동북삼성) 전역을 누벼봐서 알지만 한국과 다른 상황이 그것인데 바로 만주땅이 광활하기에 가장 가까운 거리라 해도 서너 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이며 멀기로는 열두 시간씩 걸리는데도 있고 보면, '아빠가 출장 떠'나면 한국처럼 두세 시간 걸리거나 하룻밤 자고 오는 것이 아니라 몇날 며칠이 소요되는 긴 기다림의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이만큼한 인내도 한국 아이들과는 다른 환경에서 그들은 성장하고 있다고 해야할까.

이렇게 엄마하고 잠 못드는 밤에  '-어디서 저녁진지 / 받으셨을가'라며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과 '-알쏭달쏭 꽃리봉 /사시였겠지'로 전환되는 두 심리현상이 실감을 자아내는데 바램(꽃리봉)이라는 순진무구한 세계로 잘 그려져 있다. 꿈을 잃지 않는 동심의 세계가 바로 '-알쏭달쏭 꽃리봉 / 사시였겠지' 인 것이다.


다음의 <지붕동네 담동네> 역시 가족의 개념으로 읽히는 의인화된 동심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절창으로 읽힌다.


지붕동네 박님네와
담동네 호박님네
한날 한시에 아기 보았다

박아기도 동글동글
호박아기도 둥글둥글

-여보세요
우리 아긴 뽀얗게
때벗이 했거든요
박엄마는 자기 아기가
더 예뻐보이고

-우린 아길 보세요
포동포동
살집도 좋거든요
호박엄마는 자기 아기가
더 귀해 보이고

구름 속에서 빠금히
얼굴 내밀던 해님이
그걸 보고 벙글서 웃기만 하는데

-미운 아기 어디있어요
우리 아기도 곱거든요
처마밑 제비네 부부
지지배배 떠들어대네

ㅡ<지붕 동네 담동네> 전문.


지붕동네 즉 지붕과 담동네 즉 담위에 박님네 가족과 호박님네 가족이 '한날 한시에 아기 보았다'는게 재미있다. 또한 '박아기도 동글동글 / 호박아기도 둥글둥글'이라는 표현도 실감나지만, '박엄마는 자기 아기가 / 더 예뻐보이고 '호박엄마는 자기 아기가 / 더 귀해 보이고'에서 느껴지는 혈육지정과 박아기의 모습을 '우리 아긴 뽀얗게 때벗이 했'다는 것과 호박아기의 모습을 '포동포동 / 살집도 좋'다고 박엄마와 호박엄마가 주고 받는 말 속에서는 상호 교감을 이루는 눈부신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 묻어나 있다.

거기다가, 구름 속에서 빠금히 얼굴 내밀던 해님이 내려다 보며 벙글벙글 웃기만 하는 것도 생동감이 넘치지만  '-미운 아기 어디있어요 / 우리 아기도 곱거든요'의 처마밑 제비네 부부가 '지지배배 떠들어대'는 정황 역시 삼위일체의 교감을 이루는데 성공하고 있다. 동심의 세계 역시 놓쳐서는 아닐 정황들을 불러와 효과적인 표현으로 제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3,유리창과 공존의 세계

아래 <아기와 나팔꽃>에서도 구체화된 정황이 생동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이처럼 한석윤시인의 동시는 구체화된 정황묘사와 공간적 장면제시가 설득력을 더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걀걀 웃는
아기 웃음
너무 부러워

나팔꽃이
창턱으로
기여오르고

새빨간 나팔꽃이
한번 보구퍼

아기도
창턱으로
기여오르고

창턱에서
서로 만난
아기와 나팔꽃

유리 한 장
사이 두고
입맞춰보네

ㅡ<아기와 나팔꽃> 전문.


창턱을 기어오르는 나팔꽃과 방안에서 창턱을 바라보는 아기와의 만남이 예사롭지 않다. 거기 '유리 한 장'이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팔꽃이나 아기는 '유리 한 장'을 의식하지 않는데 이 작품의 촛점이 맞춰진다. 만일 의식을 했다면 정지용의 시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유리는 경계의 의미로 작용하는 것이다. 동심의 세계에서는 의식을 못한게 아니라 의식하지 않는데 있다고 보면 옳을 것이다. 비록 '유리 한 장 / 사이 두고 / 입맞춰보네'라고 시인은 읊었지만 그건 정황묘사에 불과한 것이리라. 그래도 나팔꽃과 아기는 서로 마주하며 한때의 기쁨을 나누어 갖는 것이다.


-내 눈 돌려주세요
내 눈 돌려주세요

눈붙이면 가슴 긁는
별들의 울음소리

꺼멓게 멍이 든
하늘 저 쪽에

재졸대던 그 별들이
있음직한데

깨여보면
창턱에 눈물만 아룽

ㅡ<별들의 눈물> 전문.


이 작품에서 보면, 밤마다 빛나던 별이 반짝이지 않는 데서 오는 안타까움을 '눈붙이면 가슴 긁는 별들의 울음소리'로 잘  표현하고 있다. '꺼멓게 멍이 든 하늘'인 것이다. 그런데 아침에 깨어보니 창턱에 이슬인지 간밤에 내린 빗방울인지 아룽아룽 맺혀있는 것을 동심의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처럼 밤마다 동무가 되던 별이 보이지 않는 긴 밤이 지나가고 창턱에 맺혀있는 형상을 통해 '별들의 울음소리' 로 흘러내린 그 눈물로 인식한 것이다. 역시 유리창을 통해 본 동심의 세계로 일맥상통한다고 보는 나의 견해이다.


4.해와 달,  심리의 세계

온 여름
무슨 이야기
들려주었길래

온 여름
무슨 이야기
받아들었길래

알찬 나락은
나락마다
땅을 향해 깊숙이
절하는것일가

ㅡ<해님의 이야기> 전문.


시나 동시는 설명하지 않는데 매력이 있는데 산문과 구별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해님의 이야기>로 보여진다. 제목을 <해님의 이야기>라 했지만 해님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나오지 않는다. 의미로 떠올리는게 또한 시의 매력인 것이리라. 알찬 나락이 '땅을 향해 깊숙이 / 절하는것'을 통해서 느끼는 일인 것이다. 고도한 압축을 통해서 개연성을 가지고 주제나 의미를 파악하는 즐거움이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은 한 마디로 일축하면 대자연의 숭고함과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자세가 나락을 통해 겸허히 받아들여지고 있다.

달은 인간이 희구하는 가장 친근한 대상 가운데 하나이다. 수많은 시인들에 의해 달이 등장했고 보면 자연의 대상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달이 아닌가 한다. 한석윤시인의 <달님>은 별을 그 동경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데 주목된다.


달님은
별이 좋아
밤에만 뜬다

오순도순
모여앉아
언제나 웃는

달님은
별을 찾아
밤에만 뜬다

밤이래도
별 없으면
달님은 잔다

웃음 없고
꿈이 없는
그러한 밤은

달님도
역겨워
집에서 잔다

ㅡ<달님> 전문.


보라, 별이 존재하지 않으면 달은 '웃음 없고 / 꿈이 없는 / 그러한 밤'이 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달과 별의 상응관계를 말하고 있는데 같은 밤하늘에 존재한다는 공유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인간도 단하루라도 함께하는 이웃이 없으면 그만큼 외롭고 쓸쓸하며 '웃음 없고 / 꿈이 없는'것과 마찬가지이듯이 우주세계에서 불과분의 관계에 놓여있는 공존의 대상인 것이다.

아래의 <상현달>과 <하현달>에서 보여주는 세계는 더옥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는데 달의 생성과정을 눈여겨 볼만하다.


1(상현달)

빛 한오리 받아먹고
몸 한번 늘궈보고

또 한오리 받아먹고
몸 두 번 늘궈보고

그래그래
먹는 멋에 산다야
크는 멋에 산다야


2(하현달)

빛 한오리 풀어내여
아기집에 걸어주고

또 한오리 풀어내여
까치집에 걸어주고

그래그래
푸는 멋에 산다야
주는 멋에 산다야

ㅡ<달의 노래> 전문.


상현달이 커가는 과정을 '먹는 멋에 산다야 / 크는 멋에 산다야'라고 친근감 있는 어조를 활용하여 읊었는가 하면, 하현달로 기우는 모습 또한 '푸는 멋에 산다야 /주는 멋에 산다야'라 읊고 있다. 가지는 기쁨도 중요하지만 주는 기쁨 또한 아름다운 덕목임을 말해주고 있다. 문학작품에서 의미부여와 설득력이 그 작품성을 말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하는데 한석윤시인이 모든 대상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관찰력이 대단한 것도 바로 대상에 대한 의미부여와 설득력이 공감을 획득하고 있다는데 장점으로 읽힌다. <달의 노래>에서 현저히 나타남도 그러하다.


5.아기풀 또는 풀꽃, 천진난만의 세계

아기풀이 따로 있겠는가. 동심의 눈으로 보이는 여린 풀이다. 그런 아기풀과 장대비와의 교감을 만나 보자.


좋겠다
참 좋겠다
쫘르륵 쫘르륵
장대비 쏟는 날에도
토동통
물장구치며 노는
풀아기들은

좋겠다
참 좋겠다

우후후
바람세찬 날에도
오호호
소리치며 노는
풀아기들은

그래
정말 좋겠다

반뜩반뜩
언제나
파아란 웃음
담고 사는
풀아기들은

ㅡ<아기풀> 전문.


비가 오면 더욱 신나는 아기풀들, 세찬 장대비인데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즐거워하는 아기풀들에게는 조금도 비겁하거나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고 천진난만으로 살아가고 있음이 증명된다.


바람이
풀밭을 쓸고갑니다

졌지?

배시시
아기풀이 일어섭니다

졌지?
졌지?

이번엔
바람이
황철나무를 꺾던
룡힘을 뽑아봅니다

아기풀이
허리를 배탈며
캐드득 캐드득
웃어댑니다

ㅡ<바람과 아기풀> 전문.


동심의 세계는 바로 이러한 것이리라. 재미있게 읽히면서 천지난만한 아기풀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이 돋보인다. 아무리 세찬 바람이더라도 아기풀 같이 작은 것은 다치거나 상함이 별로 없다는데 인식을 함께 한다. 그만큼 때묻지 않은 심성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어떤가, '바람이 / 풀밭을 쓸고 가'며 '졌지?'라고 말해도 그새 '배시시' 일어서는 아기풀인 것이다. 또한 '아기풀이 / 허리를 배탈며 / 캐드득 캐드득 / 웃어대'는 모습은 어른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세계이다.


못본체 지나가는데도
바지가랭이에
노란 웃음
한가득 묻혀주네

짓밟고 지나가는데도
신발뒤축에
하얀 향기
담뿍 발라주네

ㅡ<풀꽃> 전문.


예사로 지나치거나 밟아도 조금도 눈살 찌푸리지 않고 오히려 웃음과 향기를 선사해 주는 이 기막힌 풀꽃의 자태를 보라.  산길을 가거나 들길을 갈 때 무심히 지나치는 인간의 행위에 풀꽃향기가 묻어나는 것을 시인은 긍정의 눈으로 의미부여해 주고 있다는데 놀랍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러면서 아름다운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노래하는 한석윤시인의 애정어린 동심의 눈이 이 작품에서 더욱 눈부시게 빛난다.


6.나팔꽃과  감응의 세계


줄기를 타고 오르는 나팔꽃에게는 의지의 대상이 있기 마련인인데 문제는 시인이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포착해내고 있느냐는 것에 있다.


-나를 타고
서봐요

허리 못펴는 나팔꽃에게
선뜻 등을 내미는
울타리 수수대

-이 꽃
달아보세요

메마른 수수대 가슴에
진분홍
꽃송이 달아주는 나팔꽃

ㅡ<수수대와 나팔꽃> 전문.


나팔꽃과 수수대의 상응관계 설정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허리 못펴는' 즉, 줄기로 오르는 나팔꽃에게 '선뜻 등을 내미는 / 울타리 수수대'의 착한 마음씨가 감동적이다. 그래서 '메마른 수수대'에게도 위안이 되며 '가슴에 / 진분홍 /꽃송이 달아주는 나팔꽃'과의 눈물겨울 정도로 서로 고마워하고 감사할 줄 아는 그들인 것이다. 우리 인간사이도 그러했으면 하는 바램도 묻어있는 작품으로 읽힌다.

다음의 작품을 보자.



앙그작 앙그작
순이네 처마보다 높은
사장님댁
담벼락을 기여오르는
순이네 나팔꽃

-거긴 뭐하게?

까르르
네온등보다 환한
순이의 밝은 웃음
걸어놓는 나팔꽃

ㅡ<순이네 나팔꽃> 전문.


알고 보니, 이번엔 '순이네 처마보다 높은 / 사장님댁'을 기여오르는 나팔꽃이다. '순이네 처마보다 높은 / 사장님댁'이라 했으니 빈부의 차이가 현저함이 암시되기도 하는 대목이다. 그래선지 '-거긴 뭐하게?' 라는 반문도 작용할 만도 하다. 그러나 희망이 꺼지지 않는 등불이듯이 '까르르 / 네온등보다 환한 / 순이의 밝은 웃음 / 걸어놓는 나팔꽃'이 된 것이다. 무얼 의미하는가? 비록 순이네가 가난하지만, 꿈은 나팔꽃을 통해 사장님댁을 밝히는 길목의 네온등 보다 더욱 값진 나팔꽃이 '사장님댁 담벼락을 기여'올라 '순이의 밝은 웃음'을 대신 걸어놓는 것이다. 고마운 나팔꽃이 아닐 수 없다. 가난하다고 꿈이 없는 게 아니며 그걸 알고 나팔꽃은 순이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주고 있으니 말이다.


7.무지개, 메아리, 시계 등 조화의 세계

먼저 <무지개>를 보자.


빨간색만 달랑 달아봐
그게 그렇게 예쁠수 있겠니

보라색만 홀랑 걸려봐
그게 그렇게 눈시릴수 있겠니

서로서로 정다웁게 어깨를 안고
알롱달롱 떠올린 지구촌 기발

그래, 그래서 아기들은
색동옷도 세상 좋아하는가봐

ㅡ<무지개> 전문.


무지개의 조화가 곧 색동옷의 바탕이 됨을 연상시켜주는 발상으로 읊은 작품이다. 그처럼 한 색깔로는  그렇게 예쁘거나 눈시릴수 없는, 그래서 '서로서로 정다웁게 어깨를 안고 / 알롱달롱 떠올린 지구촌 기발'이 되는 것이다. 또한 아기들이 색동옷도 좋아하는 이유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데 있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산속에서 웨쳐본
내 목소리
메아리로 돌아오는것처럼

내가 남긴 행실도
어딘가에 맞혀
나한테로 돌아오고있을거야

눈을 감고
귀 기울려보면
토드닥 토드닥
고것들이 되돌아오는 소리

ㅡ<메아리> 전문.


이 작품 역시 메아리 자체를 두고 노래하고 있는게 아니라는데 있다. 다분히 확연한 주제의식을 장점으로 하고 있는 한석윤시인의 동시에세 늘 모범이 되며 텍스트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속에서 웨쳐본 / 내 목소리'가 '메아리로 돌아오는것처럼',  '내가 남긴 행실도 / 어딘가에 맞혀 / 나한테로 돌아오고있을거'라는 예감이 그것이다. 시인은 '눈을 감고 / 귀 기울려보면' 느낄 수 있다고 예시해 주는게 '고것들이 되돌아오는 소리'인 것이다. 하, 참 기발한 착상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잘잘못들이 다 구별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시인이 말하는 주제는 착한 맘씨로 살아가면 복 받는 어린이로 성장한다는 바른 교육의 의미로 읽히는 작품으로 보여진다.

신선하게 와 닿는 작품으로 <겨울 발자국>은 어떤가 면밀히 음미해 보자.


겨울 발자국은
하얀 발자국
메새도 새매도
하얀 발자국

겨울 발자국은
하얀 발자국
노루도 호랑이도
하얀 발자국

하얀 눈에 발을 씻고
사뿐 걸어서
산짐승들 발자국
하애졌을가

하얀 눈에 미역 감고
하얀 눈 먹은
산짐승들 마음도
하애졌을가

겨울 발자국은
하얀 발자국
하얀 자국 찍은 맘도
하애졌으면

ㅡ<겨울 발자국>전문.


역시, 눈 내린 햐얀 발자국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세상이 때묻지 않은 세계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메새나 새매, 노루, 호랑이 이 모든 산짐승들이 '하얀 눈에 발을 씻고, 하얀 눈에 미역 감고, 하얀 눈 먹'은 겨울 발자국들이니 그 산짐승들 '마음도, 하얀 자국 찍은 맘도 하애졌으면' 하는 바램이 진정한 동심임이 다시금 확인된다.

사물을 노래한 <시계>를 보자.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날가

온 하루
재잘거리고도

한밤중까지
끊어질줄 모르는
이야기

ㅡ<시계>전문.

시간을 셈하는 데는 잠시도 쉬지 않는 시계의 일상이 아이들이 떠들고 웃으며 자라나는 것처럼 동질의 세계로 비쳐진다.  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는 시계를 통해서도 비쳐지듯 이처럼 게으름을 피우거나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닌 부지런히 신나게 자라는 것이다. 시인의 긍정적인 동심의 세계가  이 작품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8.동화책의 상상,  동화의 세계

동화책이 왜 재미난 걸까. 시인은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동화책이 재미난건
동화책속에선
아이들이 하늘님이기 때문

동화책속에선
교편잡은 선생님도
회초리든 아빠도
아이들 앞에서 쩔쩔매야 하고

동화책속에선
금관쓴 나라임금님도
한번쯤은 발가벗고
발가숭이 임금님
발가숭이 임금님
아이들한테 놀림당해야 하고

그래,그래
동화책이 재미난건
동화책속에선
아이들이 하늘님이기 때문

ㅡ<동화책이 재미난건>전문.


동화책의 세계가 동심의 근원세계임을 하늘님, 교편잡은 선생님, 회초리든 아빠, 금관쓴 나라임금님을 통해 재미있게 예를 들어 제시해 주고 있다. 그만큼 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가 가장 정의롭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성질인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나 아이들이 그 나라의 주인인 것이다. 바른 교육이 따로 있겠는가. 놓여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살아움직이는 것에서 소중함을 알고 조그만 것에서 애정을 느끼면 세상은 밝은 웃음으로 가득한 것이다.

◇ ◇ ◇ ◇ ◇

필자가 시인으로 그리고 아동문학가로 한때 한국의 아동문학, 즉 동시라는 동시는 거의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찾아 읽었던 기억이 새삼스러운데 중국 조선족 아동문학가로 활동하고 계시는 원로 한석윤선생님의 작품을 대해본 소감은 한 마디로 감개무량하다. 이처럼 확고하게 한 편 한 편에서 주는 동심에 대한 감흥은 실로 대단하게 여겨지는 필자의 솔직한 소견이다. 필자에게도 아주 좋은 공부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한석윤선생님께서는 한국을 기준으로 지도상으로 보면 두만강 바로 위쪽에 살고 계시지만 자주 오갈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데 있다. 국적마저 다르니 더욱 이웃 도시처럼 자주 왕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목메여올 따름이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통해서 1년에 한두번쯤은 왕래할 수 있으리라는 다짐을 해 본다.

이 글을 쓰면서 더욱 인연이란게 참 묘함을 느꼈는데 내가 한석윤선생님께서 평생동안 써오신 동시 전편에 대해 작품론을 쓰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는 큰 영광이지만 꿈에도 생각지 못햇던 일이다. 중국 장춘 토템세미나에서 필자하고 나란히 주제발표자로 나선 연길의 문학평론가 김용운선생님도 초면이었지만 연길로 흘러와 다시 만나게 되었으며 내게 전해진 한석윤선생님 동시집 여러 권이 인연이 될 줄 몰랐던 것이다.  

아무쪼록, 어진 마음으로 살아가시는 동시인으로 정평이 나있는 한석윤선생님께서 지금도 아주 건강하시지만 더욱 건강을 유지하며 필자와 더 오랜 기간 동시를 논하며 아름다운 동심의 세계를 열어 나가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서지월 씀)

 

중국 연길에서, 조선족 아동문학가 한석윤선생님과 한국 서지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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