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2010 봄호)<시에시인>서지월 시-'복사꽃 가지' 외4편
복사꽃 가지
서 지 월
구부정한 복사꽃 가지 굽은 등 위로
배를 붙인 애벌레 한 마리
좋은 세상인 듯 기어간다
그가 만들며 가는 길은
내 유년의 집앞 들길 같은 거였다
그 아래 흐르는 시냇물 작은 울림이
복사꽃 가지를 흔든다
틈새 비집고 들어온 바람이
무어라 말 걸어온다
세상이 왜 이렇게 고요한가
떠 오고 가던 구름 발길 끊어지고
어디선가 낯선 새소리
휘리릭 휘리릭, 혼자서 嶺 너머 간다고
뒤 안 돌아보는데
구부정한 복사꽃 가지 등 굽은 길 위로
환생한 나비 한 마리 날아든다
꽃밭
서 지 월
먼길 가는 나비처럼 꽃들은
떠날 채비로 분주하다
저마다 입고 온 옷들을 다시 매만지며
옆엣 꽃들에게도 말을 건낸다
다가오는 미래의 호기심으로 가득 차 꽃들은
먼저 자신의 이름표와 생김새를 확인하며
꿀벌이 날아와도 귀찮은 듯
손 내어젓는다
호들갑 떠는 바람이
선머슴애처럼 문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
꽃들은 자신을 호명할 때까지 차례 기다리며
히죽히죽 웃기도 한다
오늘 호명되지 않으면 다시 하룻밤 더 자야 하고
化粧을 다시 해야 한다
버려진 장독
서 지 월
장독이 저홀로 태아처럼 웅크리고 앉아
배고픈 아이와 같이 엄마를 기다리는 것은
찔레꽃 허옇게 흩뿌리던 비탈길에 버려진
그 후부터였다
新婦의 다홍치마빛 석류꽃과
누이의 눈썹같이 맑은 초승달이
자취 감춘 후로 草家는 쓰러지고
인적마저 끊어져 풀벌레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난데 없는 총성이 하늘을 울렸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투기가 점령하면서부터
온통 쑥대밭 되어버린 페허가 잘 말해주고 있었다
고향도 실향도 그에게는 하나의 텅 빈 가슴일 뿐
이제는 김치도 된장도 옛추억일 뿐이었다
누구하나 그를 수습해 양지 바른 곳에 안장하지 못했다
개밥그릇 하나
서 지 월
지상으로 유배 온 개밥그릇 하나
마당에 놓여 빗물을 들이마시고 있다
누가 그를 씻어주리라 생각했던가
맑은 날 마당가에서 개들의 식사 도맡아 해주며
이리 채이고 저리 채여 찌그려진 몰골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마다
개밥 주느라 머리까지 허옇게 새어셨는데
저승 가신 날 개밥그릇 저 혼자 처량하게 남아
마당을 지키고 있었다
지상으로 유배 온 개밥그릇 하나
遺産처럼 버려져 빗물을 들이마시고 있다
허공(虛空)
서 지 월
속 비어있는
항아리나 궤짝 같은 것
한 시대의 역사가
머물러 있다가 빠져나갔거나
지고한 선비의 붓끝이 움직여
쌓아두었던 書冊이 행방 묘연하게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일,
아니면,
봄꽃으로 가득했던 숲이
어느 새 여름 오고
가을 지나 헐렁한 시간의
간극 맞이해
거기 싸락눈 이따금씩 휘날리듯
이것들의 침묵 앞에서
무슨 할 말 있으리
<약력>
▲1955년, 대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과 연개소문과 같은 생일인 음력 5월 5일 단오날
대구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371번지에서 태어남.
▲1985년,『심상』,『한국문학』신인작품상에 각각 시가 당선 되어 등단.
▲1993년, 제3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1999년, 한국문인협회 문경지부 주관「정문문학상」수상.
▲2002년, 중국「장백산문학상」수상.
▲2006년, 한국전원생활운동본부 주관, 詩碑「신 귀거래사」가 영천 보현산자연수련원에 세워짐.
▲2007년, 달성군 주관, 한국시인협회 KBS MBC 매일신문 영남일보 대구문화예술총연합회 등 후원으로 詩碑「비슬산 참꽃」이 비슬산 자연휴양림에 세워짐.
▲시집 『꽃이 되었나 별이 되었나』(1988, 나남출판사),『江물과 빨랫줄』(1989, 문학사상사),『가난한 꽃』(1993, 도서출판 전망),『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백도라지꽃의 노래』,『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등 있음.
▲한중문예창작대학, 대구시인학교 지도시인.
주소 : (우)711-862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78,「두문시산방」내, 徐芝月 시인
¤ 전화 : (053) 767-5526 휴대폰 011-505-0095
¤ 이메일: poemmoon55@hanmail.net
#은행계좌 ☞국민은행 : 586301-04--018322 서지월(서석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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