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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문학](2009' 창간호)<초대시>서지월 시-'비슬산 참꽃' 외2편

아미산월 2009. 11. 11. 05:35

[달성문학](2009' 창간호)<초대시>서지월 시-'비슬산 참꽃' 외2편


비슬산 참꽃

 

서 지 월

 

비슬산 참꽃 속에는
조그만 초가집 한 채 들어있어
툇마루 다듬잇돌 다듬이소리
쿵쿵쿵쿵 가슴 두들겨 옵니다

 

기름진 땅 착한 백성
무슨 잘못 있어서 얼굴 붉히고
큰일난 듯 큰일난 듯 발병이 나
버선발 딛고 아리랑고개 넘어 왔나요

 

꽃이야 오천년을 흘러 피었겠지만
한떨기 꽃속에 초가집 한 채씩
이태백 달 밝은 밤 지어내어서
대낮이면 들려오는 다듬이소리

 

어머니 누나들 그런 날의 산천초목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쿵쿵쿵쿵 물방아 돌리며 달을 보고
흰 적삼에 한껏 붉은 참꽃물 들었었지요

 

 

귀뚜라미 보일러 수리공과 골목 채소장수

 

서 지 월


1

 

몇 년째 내 세 들어 사는 전셋집 오래된 귀뚜라미 보일러에
자주 귀뚜라미가 울어 아내가 전화 걸어
서비스 부탁한 일도 두서너 번
이번에는 귀뚜라미 보일러 고참수리공이
조수수리공과 함께 왔었는데 그놈의 귀뚜라미 보일러
귀뚜라미 소리가 안 나게 하기 위하여
둘이서 열심히 손 보고 있었는데
-이 집이 어떤 집인지 알어?
고참소리공의 말에 조수수리공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그러는 잠깐 사이, 고참수리공은
-시인의 집이야 시인의 집……
둘이서 이마 맞대며 귀뚜라미 보일러
귀뚜라미 소리 안 나게 열심히 손 보면서
역시 신기한 듯 이마 맞대고
-이 집이 시인의 집이야 시인의 집……
소근거리는 것을 내 아내가 부엌에서 일하며
들었다고 나중에 내한테 전해주길래
시인이 위대한 건지 아니면 시레기 보다 못한건지 간에
살다가 참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2

그 귀뚜라미 보일러 수리공들도 이제는
영 발길이 뜸해졌는데 골목에서 채소장수의
채소 사려! 소리가 들려, 이날 집보고 있던 내가
냉큼 달려나가 뭐 살 것 없을까 하고 골목을 나가서
채소 감자 두부 펼쳐놓은 것들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그 채소장수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만 역시
채소 사러 나온 옆집 아주머니한테 무어라 중얼중얼
-저분이 시인 맞죠 서지월시인……
그러고는
-아이구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 건네길래
다른 말 할게 없어 나는 그저
-아, 예예
했을 뿐이었다 남들은 직장 다니느라고
매일 출근하는데 어디 나갈 데마저 잘 없는 내가
이날 따라 골목 나갔다가 직접 들은 얘기다
햇빛도 눈이 부신 여름 한낮
살다가 보니 밥 안 먹어도 배부를 때가
이때구나 하고 생각했다
역시 시인이 위대한 건지 시레기 보다 못한건지 간에

 

 

3

 

지금은, 내 돈 못 벌어준다고
아내와 말 안 하고 얼굴 안 보고 사는지도
수년이 더 되었지만
이젠 아예 그 귀뚜라미 보일러 녹슬어
귀뚜라미 소리도 뚝 멈춰 못 쓰게 되었으니
그 귀뚜라미 보일러 수리공들도 올 리 없는데
그 옆에 지키고 섰는 감나무 한 그루 무슨 생각에선지
감나무잎만 스레트 지붕 위로 말없이 흘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냥 가지고 가셔요!


ㅡ전업시인인 나에게


서 지 월


대구 봉덕시장 옷수선집에 옷 맡겨놨다가
어느어느 날 맡겨놓은 그 옷 찾으러 갔더니
그냥 가지고 가셔요!
하며, 수선한 옷 내게 내미는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수선집 주인 부부
말하자면 2천원 3천원 삯 받고 옷수선 해 주며
수십 년 봉덕시장에서 그 일만 전문으로 해 왔는데
나 역시 10년 가까이 그 옷수선집 드나들었는데


내가 찾아가면 늘 내게
요즘도 시 많이 쓰십니까?
아니어요, 전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는
쓰지 않는 걸요 하고 답하기도 했지만
신문에 보니 많이 나오데요!
라고 할 땐, 나는 쓴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지


그런 옷수선 하며 살아온 그 봉덕시장 길가
허름한 간판 달고 수십 년 한 자리에서
옷수선 하며 살아왔다지만 건물세
미싱값 실값 전기세 등등 그것도 수월치 않을건데
시만 쓰며 살아가는 전업시인인 나에게
앞에서 말한 어느어느 날 맡겨놓았다는
옷 찾으러 갔더니


그냥 가지고 가셔요!
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그냥 가져왔지만 말인 즉
세상에 과부심정 과부가 알고
서민입장 서민이 안다고 나같이 전업으로
큰 돈 안 되는 그것에만 매달려 해 온
전업 아닌가 말일세


푼돈으로 살아가며 겨우 생계 이어가는 전업은
전업끼리 통한다니까!?
나도 수십 년 시만 써 오며 볼펜값 종이값은
그렇다치더라도 남들 희희낙락하며 맛있는 것 먹을 때
밤잠 안 자고 굶으며 싸늘한 방에서
행주 쥐어짜듯 머리 쥐어짜기도 하고
싸매기도 하며 시만 쓰며 고달픈 삶 살아왔거늘


그래도 세상은 공짜 전혀 없이
돈 계산 다 요구하더라는 것
식당 가서 밥 먹으면 밥값 줘야지
레스토랑 가서 커피 마시면 커피값 줘야지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거나 책을 사거나
통닭을 시켜 먹거나 짜장면을 시켜 먹어도
돈 지불해야지 휴대폰값 인터넷 PC통신 사용료
전기세 다 지불해야지
모임 가면 회비 내야지


시집 내면 몇 백만원어치 시집 사서
여기저기 달라는 데 안줄 수 없는 데는
싸인까지 해서 줘야지
전업시인에게도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걸
모르는 일은 아니지만
밤 세워 시를 써서 이튿날 차비 들여 가서
시낭송 해 주거나 발표 하거나
시화전 하면 경비부담 해야지


그렇다고 나 혼자 기인처럼 사는 것 또한 아닌
처자식 딸린 몸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그러나 김소월처럼 시 하나만큼은 언젠가
빛나리라는 정신 그것으로 일관해 온 건 틀림없지만


왜 하필이면 옷 수선해 수공 받고받아도
변변찮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봉덕시장
옷수선집 주인은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전업시인을 헤아려
이렇게 옷수선비 안 받고
그냥 가져가셔요 라고 하느냐 말이다


내 친구가 빵집을 해도
수십 번 지나쳐도 빵 하나 그냥
먹어보라는 소리 못 들었으며
한둘이 아닌 내 제자의 시를 신문에 잡지에
수십 번 해설 써서 소개해 주어도
이 선생 안 모시고 승용차에 딴 시인 태워
다니더라는 것, 인간사 이러할 진데


진작 청산가리 먹고 일찍 목숨 끊은
평안북도 정주 곽산 김소월 심정 이제야
좀, 좀은 알 것 같기도 하더이다

 

 

 

<약력>

▲1955년, 대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과 연개소문과 같은 생일인 음력 5월 5일 단오날
대구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371번지에서 태어남. 본명 서석행(徐錫幸). 아명은 건식(巾湜).
▲중학교 2학년때인 1970년 소년조선일보에 동시 <초록빛 잎새>가 발표되면서부터 시를 쓰기 시작.
▲1985년,『심상』,『한국문학』신인작품상에 각각 시가 당선 되어 등단. 
▲1986년,『아동문예』 동시 당선, 「신인문학상」수상.
▲1993년, 제3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1999년, 한국문인협회 문경지부 주관「정문문학상」수상.
▲2002년, 중국「장백산문학상」(세계문학 부문) 수상.
▲1999년,「전업작가 대한민국 정부특별문예창작지원금 1천만원 수혜시인」으로 선정됨.
▲2006년, 한국전원생활운동본부 주관, 詩碑「신 귀거래사」가 영천 보현산자연수련원에 세워짐.
▲2006년, 한국시인협회 창립 50주년기념 향토적인 삶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인으로 선정됨.
▲2007년, 달성군 주관, 한국시인협회 KBS MBC 매일신문 영남일보 대구문화예술총연합회 등 후원으로
詩碑「비슬산 참꽃」이 비슬산 자연휴양림에 세워짐.
▲2008년, 서울특별시「시가 흐르는 서울」에 시 <내 사랑>, <인생을 묻는 그대에게>가 선정됨.
▲백담사 만해마을 <세계평화의 시벽>에 육필詩「강물에서」가 동판으로 새겨져 있음.
▲현재, 한국시인협회 중앙위원. 대구문인협회 외국문학분과위원장.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공동의장.
▲한중문예창작대학, 대구시인학교 지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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