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詩壇]김창영 시-'집안 가는 길'
집안 가는 길
김 창 영 (심양 조선족시인)
유리왕이 지나온 길을 따라
2천년 지난 세월 후 나혼자 그 길 간다
아직도 생돼지 울음소리 들려오는 듯
꿀꿀꿀꿀..... 하늘의 뜻이런듯
제사상 제물운명 벗어나 어디론가 길 떠난 생돼지
나 보다 먼저 길 떠난 그 생돼지
숲에서 튀어나올 듯 물속에서 튀어나올 듯
혼강(渾江)을 허리에 휘감고 가다가
혼강(渾江)과 갈라져 루하(漏河)와 손 잡고 가다가
압록강이 먼곳까지 마중나와 반기어 준다
생돼지 울음소리 하늘로 올라가고
나만 홀로 남아 텅 빈 하늘 날으는 까마귀
울음소리 손바다 위에 받아쥔다
<이 시를 말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유형도 갖가지이듯이 시를 쓰는 스타일이랄까 유형이랄까 방식도 다양하리라 본다.
2천년이라는 시공을 뛰어넘는 역사성을 가미한 그러면서 시인 자신의 행로와 중첩시키면서
쓴 이러한 스타일의 시가 말하자면 대게 담시 계통이나 여행시가 되는데 이 시에서는 역시 그런
냄새를 다 제거하고 시의 기본질서 즉 본래의 틀을 유지하며 품격있게 만들어 낸 본보기라 하겠다.
필자가 쓴 시 <왕청 가는 길>을 읽고 영향을 받고 섰다고 피력했는데 뚝심이 대단하며 장한 일이다.
오히려 필자가 쓴 시 <왕청 가는 길>은 서정성에 그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집안 가는 길> 이 시가
훨씬 무게도 더허고 두께도 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제자는 스승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옛말이 있듯이, 같은 길을 가면서 작품으로는 스승을 능가는 하는 시를 쓴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바로 이 시가 2천년의 시공을 초월하여 씌여졌다는게 놀라움을 표한다.
보라, 2천년 고구려 제1의 도읍인 환인에서 집안으로 도망쳐 간 생돼지 울음소리가 꿀꿀꿀꿀..... 거리면서
'숲에서 튀어나올 듯 물속에서 튀어나올 듯' 이런 상상을 끌고와 풍요로운 길을 장식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제사상 제물운명 벗어나 어디론가 길 떠난 생돼지 / 나 보다 먼저 길 떠난 그 생돼지' 이런 표현에서는
반복과 댓구 대조를 이루면서 역사의 시간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 길을 시인은 지금 가고 있는 것이다, 집안땅으로 향하는 길이다. 듣자 하니 시인은 집안땅이 고향이라 들었는데
시인 자신이 고향땅을 향해 가고 있다, 물론 버스나 화물차 또는 승용차를 타고 가고 있겠지.
한 편의 시를 다루는데 있어서 길의 이미지가 이 시의 핵심을 이루는 만큼 그런 교통수단 따위는 모두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혼강(渾江)을 허리에 휘감고 가다가 / 혼강(渾江)과 갈라져 루하(漏河)와 손 잡고 가다가'
이런 반복비유도 아주 잘 된 표현이라 할 수 있으며,
생돼지 울음소리 하늘로 올라가고
나만 홀로 남아 텅 빈 하늘 날으는 까마귀
울음소리 손바다 위에 받아쥔다
에서, '까마귀 / 울음소리 손바다 위에 받아쥔다'는 마지막 처리가 아주 좋다. 이런 감각적 표현이 물렁하기 쉬운
서정적 표현을 능가한다니까!
그리고, 아주 중요한 이미지로 <까마귀>가 등장하는데 무얼 의미하는가. <까마귀>는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등장하듯이
삼족오, 세발까마귀로 고구려의 부활을 의미하는 고구려의 혼이라 말할 수 있다.
이처럼 한 편의 시가 완벽을 기하려면 등장하는 이미지 낱낱에도 의미망을 형성하는 심오함이 있음이 확인된다.
필자가 오래전에 집안을 간 적이 있는데, 나라의 제사에 쓸 돼지를 키워 제자에 쓰려고 울에서 꺼내다가
그만 돼지를 놓쳐버렸다 한다. 그 생돼지가 달아난 곳이 지금의 집안땅이었는데 그 도망쳐 달아난 생돼지를 잡으러
신하들은 불알이 요령소리가 날 정도로 뒤쫒아 간 모양이다. 가서 보니 생돼지 보다도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비옥한 평야지대라 당시 왕인 고구려 제2대 유리왕께 신하들이 청언을 해 그래서 집안으로 도읍을 옮겼다 하는데
집안이 고구려 제2수도가 된 것이다.
필자가 쓴 그 시가 <서지월시인의 만주가행> 시리즈에도 인용되어 있는데, 아마 그 영향도 시인은 받았는 것 같다.
한국의 미당 서정주시인도 만주땅에 가 있으면서 전해지는 설화를 듣고 그대로 시로 옮긴게 <신부>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듯이 말이다. 부지런하면 초가삼간도 생긴다니까.
(2008년 10월 1일 밤, 01시 51분 한국 서지월시인/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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