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詩壇]황정인 시-'텅빈 하늘'
공중을 날아 다니는 잠자리
언제 나무가지에 내려 앉을까
찌그러진 바자굽에 기대어
애타게 기다리는 소녀
지쳤는지
아니면 앉고 싶었던지
그새 잠자리는
앙상한 나무가지에 내려앉았네
지루한 기다림으로
찾아 온 기쁨
활짝 핀 웃음 담고
잠자리에게 다가가는 소녀
고사리같은 손에
붙잡힐까 망설이다
잠자리는 호르랑
멀리 날아가버리네.
두발 동동 구르는
소녀의 두 볼에
눈물방울이 대롱대롱 맺혔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길조차 없는 하늘 너머
소녀의
텅빈 마음만 내려앉았네.
ㅡ시를 쓴다는 것이 요리 하는 것 다름 아니지요. 같은 소재(재료)인데 얼만큼 맛내게 하느냐가
요리 솜씨 아니겠습니까. 한 편의 시작품도 마찬가지이지요. 내가 어디에 미당 서정주시인 시 잘 쓰는 것
말하니 비판이 들어오더라구요. 친일시를 쓴 사람이라구요. 참으로 허망했습니다. 그럼 친일시 몇 편
그 당시 썼다고 뛰어난 미당의 시를 부정하거나 외면해야 하나요? 그건 아니지요. 한국 시단에서
미당 서정주시인에 대해 참 많이 거론되어 왔지요. 친일시 쓴 것에 대한 것도 모양 좋은 건 분명 아니지요.
일제치하 한 젊은 시인으로서 시대를 직시하지 못하고 큰 실수를 한 것이지요. 그러나 어쩝니까.
시는 미당을 당해낼 시인이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지요. 한국 현대시의 역사가 100년이 흘렀지만
미당을 능가하는 시인이 아직 없다는 말이지요. 그만큼 시를 제일 잘 쓴다는 것에는 누구도 함부로
부정하지 못하는 현실이지요. 그걸 친일시 쓴 시인이라 해서 덮어버리면 진정한 한국시는 어디에서 찾겠나요.
나는 늘 말합니다. 누구나 좋은 시를 쓰려고 하는 이들에게는 진정한 스승은 좋은 문작품이라고요.
나는 그 통로를 열어주는 매니저 또는 매개의 역할을 하는 거죠. 한국의 이름난 비평가인 연세대 유종호
교수께서는 '미당의 머리 속에 들어가면 시가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요리를 잘 하는 솜씨를
가졌다는 말이지요. 한국의 대가시인인 황동규선생님은 '미당의 시를 읽지 않고 시 쓴 사람 나와봐라!'라 했지요.
무슨 뜻일까요. 한국에서 저마다 시를 쓴다는 시인은 미당의 시를 독파하지 않은 사람 없다는 말이지요.
시를 잘 쓴다는 말은 도예가가 도자기를 잘 빚는 것, 어머니가 부엌에서 밥을 윤기있게 잘 짓는 것,
수박농사 짓는 농부가 수박 맛나게 잘 열리게 하는 것, 등등이겠지요. 이게 아니면 잘 한다는 소리 못 듣지요.
어떤 사람은 남의 시를 잘 안 읽는다고 하지요. 닮을까 봐 그러기도 하다는데 창조는 하늘에서 마구
떨어지는게 아니지요. 수많은 모방과 답습으로부터 창조되는 것이이지요. 패션에 있어서도 개성이라는 것도
자기 혼자의 개성은 존재하지 않지요. 많은 부류의 온갖 패션들을 보고 느끼고 인용하고 유용하다 보면
거기서 새로운 개성이 창출되는 것이지요.
아뭏든, 위의 시는 요리를 잘 했어요. 추억이 없는 사람 없고 어린시절 추억 없는 사람 어디 있겠나요.
그런 추억의 공간을 잘못 끌어오다 보면 진부해지기 쉽고 타성에 젖기 쉽지요. 그런데 이 시에서 시인은
현재형으로 추억의 한때를 가지고 왔다는 것, 아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 장면제시가 선명성을
띄고 있다는 것, 이렇게 형상을 매만지는 솜씨가 아주 좋아요. 장면의 전환도 실감을 주고요.
(2008년 10월 2일 밤, 09시 37분, 한국 서지월시인/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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