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시인협회]<시향만리>(창간호)윤미전 시-'다부재 길따라'외2편
다부재 길따라
윤 미 전
굽이마다 돌아앉은 다부재 길따라 자루째 쏟아부은 쌀튀밥같은 조팝꽃무더기 숨바꼭질하는 아이들마냥 바람에 이끌려 서둘러 흩어졌었네 산허리쯤 둥지 튼 도봉사 그윽히 내려다보며 그는 미륵인 양 좌정해 있었네 차례차례 엎드린 나무계단 밟고 올라 얕은 숨 고를 때 종달새 한 마리 마중나와 나를 반겼네 노파의 굽은 등같이 꺾어진 능선, 산짐승처럼 버티고 있었네 그래 처음부터 쉬운 길이 어디 있을까 밤길같은 낯선 길도 오래 가다 보면 익숙해 지는 것이야 가파른 고갯길 가부좌 틀고 참선 중인 바위의 귀 잡아 당기며 힘겹게 오르는데 급한 마음 자꾸만 등 떠밀었네 무슨 생각에선지 진달래꽃 다소곳이 앉은 채 경계의 눈빛 던지며 있었네 눈 아래 모든 것들 내 것이 된 양 설레었었네 신발 위 뽀얗게 몰려든 먼지, 오르기보단 내릴 때를 조심하라며 왔던 길따라 돌아서는 발길, 오래 배웅하고 있었네
구두
윤 미 전
처음부터 내것이 아니었던 걸까 고가도로 기둥 하나 떼어다 세워 놓은 듯 높은 다리 치켜들고 쇼윈도우 지나가는 서로 닮지 않은 표정들 햇살 등에 업고 짤랑짤랑 요란한 출입문 들어서면 희거나 검은 얼굴들 함께 진열장 뛰어내릴 자세로 나를 데려가라 손 내어민다 거친 자갈길 마다않고 묵묵히 건너다 줄 검게 그을린 모습 믿음직해 지폐 몇 장 건네고 당당히 들어 앉는 낯선 옆모습 처음부터 내것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 어디 있을까 새 구두 신고 걸음 옮길 때마다 딱따구리 부리로 쪼아대듯 뒷꿈치 짓물러 길 위를 나뒹군다 횡단보도 앞 붉은 티셔츠 입은 아이의 눈빛, 달라붙어 비틀대는 발걸음 훔치고 있다 비좁은 시루 안 서로의 숨소리 들으며 오손도손 자라는 콩나물처럼 낮은 목소리로 다정하게 안부 물을 수 없을까 자동판매기 커피 한 잔 뽑아들듯 쉽게 다가왔던 그는 설레던 마음 옭아매며 구속할 뿐이었네 저멀리 꺾어진 채 텅 비어 있는 나의 길
미용실 가던 날
윤 미 전
함부로 어깨 너머 기웃거리는 머리카락 단죄하려 미용실로 들어선다 강산은 변하여도 내 모습 변하지 않게 가꾸어주던 둥근 눈매의 그 미용사 보이지 않네 새로운 둥지 찾아 비눗방울처럼 가볍게 날아간 그녀 생각하며 잠시 앉을까 말까 망설인다 호기심 많은 전등불빛 나와 함께 두리번거리고 끈질긴 장마비처럼 반복되는 노래, 실내를 단순한 발라드풍으로 염색하고 있다 이제부터 머리관리는 제게 맡겨주세요 낯선 손길 전혀 낯설지 않게 머리의 이쪽과 저쪽 익숙한 손놀림으로 바삐 회전한다 그게 아니예요 적당히 머릿결 부풀리고 배추잎 솎아내듯 잘라내지 마세요 수상한 파마머리 말고 있는 초면의 미용사 마땅찮아 거울 속 갇힌 얼굴표정 잦은 브레이크를 밟는다 머리가닥같이 수많았던 날들 적당히 부풀리며 살아오진 않았던가, 멋쩍게 웃어본다 실밥마냥 묻어있는 머리카락 털어내며 멀지 않은 날 회귀할 연어처럼 한 생이 방생된다

<약력>
▲1962년, 경북 칠곡 출생. ▲대구한의대학교 문예창작과 및 동대학원 졸업.대구대 국문과 박사과정. ▲2004년,대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계룡문학상」시 당선. ▲<심상>,<연변문학>, <장백산> 등 작품 발표. ▲2004년,제5회「적벽강여울소리 시인상」수상. ▲2005년,일본 도쿄 아시아환태평양시인대회 참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칠곡군협의회 의장. ▲현재, 대구한의대학교 겸임교수. 대구시인학교 회장.<낭만시> 동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