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행지에서는 내 몸에 대한 기준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여러 날 배 안에서 지내기도 하고 하루 종일 걷기만 할 때도 있고 갑자기 끊어진 길을 찾기 위해 산을 오르기도 하며 죽을 힘을 다해 모래구덩이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일도 생긴다. 내 몸의 기능 역할 기준 등이 갑자기 달라지는 게 여행이다. …시작 행위 역시 여행의 행위에 근접하게 닮아 있다. 뚝 끊어진 층층낭하를 내려다보며 눈앞이 캄캄해지기도 하고, 시어 하나를 찾아 피라미드의 미라 관 뚜껑을(저주를 무릅쓰고) 열고자 하는 '열에 들뜸'이 있고, 고독과 부드러움과 설사와 변비가 있다.'
황학주 시인이 쓴 글 '시와 사막' 일부다. 황 시인은 현재 아프리카 구호단체인 피스프랜드를 이끌고 있다. 아프리카에 가서 마사이족들과 함께 3년 살다가 온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그가 아니면 좀체 나오기 힘들 법한 '시와 사막'을 통해 여행과 시, 사막의 시론을 들려준다. 사막과 같은 극한의 공간이나 초원처럼 도시 삶에서는 접할 수 없는 넓은 공간을 오래 접했던 시인의 시론은 자연스럽게 자연과 연결되면서 독특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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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월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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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주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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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전문 계간지 '시와 사상'이 봄호(64호)에서 '시와 여행'이라는 기획특집을 내세웠다. 여행을 문학 행위의 액세서리 정도로 취급하지 않고, 그것이 시에 끼치는 영향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기획이어서 눈길을 끈다.
이 특집에는
서지월 시인도 '만주땅에서의 나의 시혼'이라는 글을 실었다. 그는 지금까지 9번 만주땅을 여행한 시인이다. 그는 만주여행이 시에 끼친 구체적 영향을 들려준다. '당나귀 노새 소달구지가 길을 가며/견육점이라 써붙인 보신탕 전문식당이/즐비한 풍경 낯설지 않고/때론 하늘은 비를 내리시어/땅을 적시는 것을/더러는 삼등완행열차가 벌판을 가로질러/나를 정처없이 가게 하는 것을…' 그가 이 글에서 소개한 여행시 '만주의 노래' 일부분이다. 그는 여행이 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반대로 시가 여행을 더욱 깊게 만들어주는 사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