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인생/◇[情談]조선족 이야기

[니카][徐芝月 에세이]만주벌판과 민족정신-내 만주기행의 의미

아미산월 2010. 3. 22. 04:46

ㅁ[니카][徐芝月 에세이]만주벌판과 민족정신-내 만주기행의 의미

[徐芝月 에세이]만주벌판과 민족정신-내 만주기행의 의미
아미산월   - Homepage : http://poemtree21.net/ Hit : 872 , Vote : 72         [2008/06/05]



[徐芝月 에세이]만주벌판과 민족정신

ㅡ내 만주기행의 의미에 대하여

서 지 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실제로 된 경우가 나의 경우였다. 1998년 여름인가 학교에서는 방학기간이었다. 박명호라는 부산 사직여고 국어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 여름 만주를 가지 않겠느냐고. 나는 전업시인이기도 해 시간을 낼려면 충분히 낼 수 있는 입장이어서 응했다. 박명호 친구는 그전에도 만주를 다녀온 경험이 있기로 먼저 길을 연 문인이니 또한 다행이었다.

8월 중순이었는데 당시 대구시인학교 회원이었던 이채운 정이랑 이별리 이상우 이렇게 6명이 인천국제여객선터미날로 가서 <동방명주>호를 타고 서해안 뱃길로 해 먼저 단동에 도착했다. 북한의 신의주 맞은 편 중국측 항구도시가 단동이었다. 거기서 하룻밤을 묶고 산 넘고 물 건너 환인으로 가 역시 하룻밤 묶으며 고주몽이 대고구려를 세운 오녀산도 오르고 우리 민족 오천년 역사의 강 비류수도 처음 대하고 참으로 감개무량했었다. 거기서 다시 집안-통화-송강하-이도백하-장백-백두산-연길-도문-목단강시-하얼빈-길림-심양을 거쳐온 게 나의 첫 만주기행이었다. 16박 17일 한 것 같다.

이후로 7차례나 만주기행을 감행했는데 만주땅 최북단인 흑룡강 최상류 막하-북극촌에서부터 흑룡강 최하류  동강시-삼강구까지 뻗어가 보기도 했었다. 아직 못 가보고 남아있는 곳이 여러군데가 되지만 대표적으로 말하면 우수리강 쪽과 두만강 끄트머리인 훈춘-삼합 쪽으로는 아직 길을 트지 못했다.

이런 감개무량은 가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고 체험하지 않으면 그 광활한 만주땅의 기상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나는 친구따라 강남 간 격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역사책을 많이 읽어 늘 압록강 두만강 위 우리 고대역사의 현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살았었다.

지금도 날마다 밤마다 가고 싶고 가서 거기 머무르고 싶은 내 그리움의 땅이 되었다. 나는 내 개인적으로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땅으로 명명하는데 그만큼 5천년 역사의 웅혼한 정신사가 내 민족서정시의 근원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조선족이라면 그리고 만주땅이라면 절로 마음이 쏠리고 따뜻한 피의 순환을 느끼며 몸과 마음이 전율한다. 생각만 해도 신기하게 여겨졌는데 나중엔 안 일이지만 고주몽 뿐만 아니라 연개소문과도 같은 생일인 음력 5월 5일 단오날에 태어난 기(氣)의 발화로도 생각된다.

10년 가까이 참 많은 시와 기행문 에세이 등을 생산했는데, 만주땅만 생각하면 내 마음이 뿌듯하다. 앞으로 더 많이 해야할 일들이 남아있는 줄로 아는데 더욱 부지런히 내 문학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긍지를 세계에 울려퍼지게 하는데는 남한만 가지고도 안 되며 남한-북한을 합친 한반도를 가지고도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오로지 만주땅의 정신사를 근간으로 한 토대 위에서 가능한 일이라 본다.

아직도 민족정신이 문학에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고 있는 한국 현실이 안타까우며 사회적으로도 민족정신사를 찾는 문화적인 인식 또한 덜 되어 있어 불만인 것이다. 나혼자 부르짖고 나혼자 노는 것 같다. 외롭게! (2008년 6월 5일 집필)

ㅡ시전문지「詩와詩人」(2008.6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