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문학회](2010.창간호)<신작시>서지월 시-''외1편
나의 抒情詩
서 지 월
열 대여섯 살 무렵부터 나는 열심히 서정시를 써왔습니다. 꽃과 나비, 새들의 하모니며 저녁마다 우러르던 바알간 노을빛에 그리움 같은 걸 묻어두며 누이의 화안한 미소에까지 나의 서정시는 번져갔습니다. 그러니까 우선 시는 곱다는 것으로, 크레용을 가지고 좋아하는 계통의 색깔을 골라 도화지 위에 박박 그려내는 그런 그림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해에는 비가 많이 내렸고 태양에 흑점이 많이 생긴 해로서는 농작물 피해 뿐만 아니라 눈이 산더미같이 와 억수로 추운 겨울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세상은 잔칫날 파장처럼 술렁거리며 저마다 생활의 짐을 꾸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여튼,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변소에 가 앉아 똥을 누면서 생각하듯 서정시는 계속 써 온 것입니다. 빨랫줄에 널린 빨래의 그 휴식의 표정을 보고 삶의 한순간이 애처로웁듯 초췌하다는 것을 밥을 먹으면서 힐끔힐끔 알아차릴 수 있었고 내가 그리던 사랑나무의 핑크빛 사랑열매도 저문 강언덕 위로 낙하할 즈음, 나는 세상을 근심처럼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사물의 형상이라는 게 어두운 쪽은 잘 보이지 않듯이 용케 명암을 따지는 세상을 맞게 되었고 혓바닥 내민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숨 가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버릇은 서정시를 쓰는 그것만은 휙 뿌리쳐버리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베에토벤의 심포니가 더욱 강렬하게 뇌리를 때리었고 나자빠진 영혼처럼 서정시를 썼습니다만 흰 백합화를 흔들며 지나가던 소녀꽃장수마저 거리에서 사라져버린지 오래 바람도 집 잃어 우는 하늘을 보았습니다.
내가 그만한 무지개 색깔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형편이라서 늘 눈물나고, 어릴 때는 노란 은행잎 주워 세면 마냥 즐겁기만 하여 더 가질려고 떼를 써 줍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신 다른 것에 눈을 흘리는 정황이 되었으니 때가 묻고 구성이 잘 되질 않았습니다. 비오는 날의 장단같은 것이 어딘가 맞지 않는 슬픔 느끼고 저무는 처마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정녕코 오늘에 와서 이제껏 꽃이나 별이나 사물에서 보던 나의 서정시가 도시를 꽉 메운 빌딩 속 어딘가에 숨어, 눈 딱 감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하고 몇 번을 외쳐봐도 눈 떠보면 흰구름 한 송이 피어오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나의 서정시는 바람 구르는 새벽풀밭 잃고 새들이 날아와 야영할 숲마저 잃어버린 채, 세상의 마지막 광장 쪽으로 우리가 쓸쓸히 발 맞추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달빛
ㅡ木月先生님 추도
서 지 월
우리 집 庭園의
배꽃가지 사이로 내리는 달빛 속에는
잘 빗질해진 머릿결
慶尙道 處女의 분냄새와
그것도 경주시 내동면
혹은, 외동면의 사투리
물알로 들어있어
소매를 적시나니
밤마다 스스러워 뜰에 서면
둥두렷한 懷心의 달
임은 가고,
산은 九江山
달아 달아 밝은 달아,
혼백만 남은
설운 달아,
빈 항아리 눈물을 채우고
어이하리야
지난 날 가랑잎 밟던 소리를,
우리 집 정원의 배꽃가지 사이로 내리는
그 달빛 속에는
누이의 하얀 모시옷 자락도 보이지만
南道를 날아와 앉은 杜鵑이가
쓴 목청 돋구어
꽃 지는 온 밤을
온 밤을
울어 지새우노니.
+ + + + +
'▶이달의 한국시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명숙시집](ShiMyung-Sook Portry)-'섬' (뿌리 출간) (0) | 2010.03.31 |
---|---|
[대구문학](1,2월호)<월간시평>서지월-모국어의 수난 속에서 (0) | 2010.03.20 |
[문학저널21]<詩選>서지월 시-비슬산참꽃/신지혜 (0) | 2010.03.06 |
[시와 경계](2010.2.27)문학축전<낭송시>서지월 시-'내가 생각하는 것' (0) | 2010.02.25 |
[문학의 문학](2009.겨울호)서지월 시-'에밀레의 노래'외1편 (0) | 2010.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