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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신문]한국 최고의 시인 서정주, '미당기념사업회 창립대회' 열려

아미산월 2010. 1. 31. 05:59

[동북아신문]한국 최고의 시인 서정주, '미당기념사업회 창립대회' 열려

한국 최고의 시인 서정주, '미당기념사업회 창립대회' 열려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현대 한국 최고의 시인 미당 서정주의 10주기를 맞이하여 <사단법인 미당기념사업회>가 지난해 10월 20일 오후 서울 남산 자락에 자리 잡은 ‘문학의 집, 서울’. 문인은 물론 연극인·화가·건축가 등 문화계 인사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미당기념사업회 발기인 모임이 열린데 이어, 본격적으로 창립대회가 2010년 1월 27일 오후 3시부터 미당의 동생인 서정태씨와시인 김남조·강민·민영·허영자·이근배·서정춘·유안진·김형영·한분순·문효치·이가림·홍신선·문정희·서지월·황인숙·문태준씨, 소설가 윤후명씨, 평론가 김화영·박혜경·김춘식씨, 서울대 김현창 명예교수, 현대문학 양숙진 대표, 언론인 김성우씨 등 문학계 유명인사등 100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문학의 집>에서 개최되었다. 

 

   
 

  ▲ 홍기삼 이사장

 

 

 
 

 ▲ 김남조시인

 

 

 

   
 

  ▲ 이근배 시인

 

 

 

 ▲ 문정희 시인

 

 

 

   
 

  ▲ 서지월 시인

 

   
 

  ▲ 고안나 시인

 

 

 

 

 

  ▲ 낭송가 김명음

 

 

 

  ▲ 소리꾼 장사익

 

 

 

 

  

 

 

 

 

 

 

 
  일찌기,“한국어를 미당만큼 아름답고 깊이 있게 한 시인은 일찍이 없었다. 한국 현대시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여러 말이 있지만 문학은 문학만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김치수. 이화여대 명예교수) 

 

"아무 말이나 붙들고 놀리면 그대로 시가되는 경지에 이른 미당은 정히 부조방언의 요술사이다. 토박이 터줏말을 줍고 갈고 닦아서 새 옥돌로 만드는 데 있어 미당이 발휘한 정성과 안목은 외경에 가깝다." (유종호. 연세대 석좌교수)

 

"서정주는 정부다. 그가 그의 당대에 보여주고 있는 秘術的 카리스마와는 달리, 한국시문학사는 그를 언어의 정부로서 논술할 필요가 있다." (「서정주시대의 보고」에서, 시인 고은) 

 

"우리가 미당과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부신 광망이다" (김구용. 서울대 교수)

 

"이 땅에 미당을 읽지 않고 시를 쓴 사람 나와 봐라." (미당 서정주시인 팔순잔치에서, 시인 황동규. 서울대 명예교수)

 

 “한국 현대시에서 한 분을 뽑으라면 어느 누구도 미당을 뽑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미당은 일부 오점이 지나치게 부각돼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그의 시가 빠지는 등 홀대를 받고 있다. 바로잡혀야 한다.”(시인 이근배)


  “미당은 한 시대를 아우르는 시인이 아니라 한민족 오천년의 역사와 민족의 얼을 통째로 관통하는 시인이다. 그리고 고조선시대의 '공무도하가', 고구려 유라왕의 '황조가', 가락국의 '구지가'로 내려오며 통일신라의 최치원, 고려조의 이규보, 조선조의 서거정에 이은 당대의 시인이기도 한데, 미당 서정주가 오천년 한민족의 얼을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하게 했던 것이다.”(시인 서지월)

 등의 찬사를 아낌없이 받아왔던 터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유자효시인의 사회로 진행 되었는데, 이근배시인이 의장을 맡아 사업회 정관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으며, 전 동국대학교 총장 홍기삼교수를 초대 이사장으로 선출하였고 감사에는 시인 이혜선, 김기택씨가 선임됐다.

 

홍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대학 다닐 땐 미당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교수가 됐을 땐 선생님의 공덕동, 남현동 자택을 연일 드나들었다"며 "선생님이 비록 개인적 욕망과 공적 권력 사이의 거리 조절에 서툴긴 했지만, 그런 지엽말단을 갖고 그분의 온화한 성품과 문학적 업적을 훼손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남조 시인은 축사에서 "미당의 대표 시를 추려 간행하는 작업을 맡아 작고 2주일 전에 병원에서 선생님을 뵌 기억이 난다"며 "시인인 나조차 부끄럽게 만들 정도로 미당은 한국 현대시 100년사에 가장 탁월한 시인이자 한국적 서정의 완성자"라고 말했다. 

 

  미당의 제자로 알려져 있는 문정희시인은 미당기념사업회를 보고 하는 자리에서 가수 송창식씨가 불러 국민의 노래가 되기도 한 미당의 시 '푸르른 날'을 인용해 들려주었는데 시낭송회에서는 재능시낭송가들과 서지월, 김명음, 고안나 등 시인들이 미당의 시를 낭송하였는데, 서지월시인은 생전 미당이 대구의 서지월시인이 가져다 준 홍시를 대상으로 인간과 자연과 산짐승이 나누어 먹는 화해정신을 읊은 시 '서지월이의 홍시'를 낭송했다.

 

「大邱의 詩人 서지월(徐芝月)이가 / "자셔 보이소" 하며 / 저희 집에서 딴 감을 가져왔기에 / 보니 거기엔 / 山까치가 / 그 부리로 쪼아먹은 / 흔적이 있는 것도 보여서 / 나는 그걸 골라 먹으며 / 이런 논아 먹음이 / 너무나 좋아 / 웃어자치고 있었다. (詩 <徐芝月이의 紅枾> 전문) 이 시는 맨처음 한국일보에 발표되었으며 미당 서정주시인의 마지막 시집 "80소년 떠돌이의 시" (시와시학사 발간) 에 수록되어있기도 하다.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전문시낭송가인 김명음씨는 미당 서정주 시 '신부'를, 고안나시인은 미당의 시 '만주에서'를 낭송하여 찬사를 받았다. 또한 소리꾼 장사익의 축하공연이 있었는데 미당의 시 '저무는 황혼'에 곡을 붙인 노래를 불러 화제를 모았다. 

 

  미당 서정주는 1915년에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2000년에 서울 자택에서 졸하였다. 미당은 시세계의 폭넓음과 깊이로 해서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손꼽힌다.

 

  어린시절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부안 줄포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29년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36년 동아일보에 '벽'으로 등단하였으며, 1941년 동대문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후 동아대학교, 조선대학교 등에서 강의했으며, 1960년 이후 동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해방 후에는 조선청년문학가협회의 시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동아일보사 문화부장,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을 역임했다.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창립과 함께 시분과 위원장을 지냈고, 1950년 6·25전쟁 때는 종군 문인단을 결성했다.

  

  1954년 예술원 종신회원에 추천되었고, 1977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0년에는 금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미당은 시력 65년에 <국화옆에서>, <푸르른 날> 등 600 여편의 시작품을 남겼으며, <화사집>에서 <늙은 떠돌이의 시>에 이르는 15권의 시집을 남겼다.  

 

  한편 미당이 졸한 2000년 12월 24일에도 그해 첫눈이 내렸다고 하며, <미당기념사업회> 창립대회를 개최한 이날도 하늘도 선생을 추모하기라도 하듯이 함박눈이 평펑 쏟아져 참석자들의 마음을 더욱 경건하게 하였다.

 

 미당은 일찌기 시 <내리는 눈발속에서는 >에서, '괜,찬,타,… / 괜,찬,타,… / 괜,찬,타,… / 괜,찬,타,… /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속에서는 / 까투리 매추래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 / 괜찬타,…괜찬타,…괜찬타…괜찬타,… / 포그은히 내려오는 눈발속에서는 / 낮이 붉은 處女아이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라 읊은 바 있다.

 

 

 

 ◆발기인 모임에 참석한 인사들. 왼쪽부터 윤재웅·김원·김후란·송하선·서정태·김용직·홍기삼·김종길씨, 오현스님, 이근배·손숙·김성우·이남호·서지월씨. [지난해 미당기념사업회 발기인 모임 사진/동국대 제공] 

  

서영근 서예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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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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