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단뉴스

[동북아신문]나와 대륜,그리고 민족정서

아미산월 2009. 8. 31. 12:05

ㅁ[동북아신문]나와 대륜,그리고 민족정서

http://www.dbanews.com/

>사회·문화>

function openPop(){ window.open('http://ec.512.co.kr/web/link.jsp?mcode=23208&nid=11754','elis','width=710,height=685,top=0,left=0,scrollbars=no'); }
 
나와 대륜,그리고 민족정서
[서지월 시인 강연자료]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민족서정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서지월시인은 오는 8월 28일(금) 오전 9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대구 대륜고등학교 대강당에서 대륜고 학생 1200명 대상으로 이뤄지는「서지월시인 초청 '나와 대륜, 그리고 민족정서' 문학강연 및 시인과의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서지월시인은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한지 35년만에 모교에서 문학강연회 가지는 뜻있는 자리로 대륜고등학교는 일제치하때 '광야'의 이육사시인이 그 출신이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시인이 영어교사로 교편을 잡았으며 국회의장을 지낸 이효상시인이 교장을 역임한 민족숨결이 강하게 배어있는 대구의 요람으로 알려져 있다.  

강연요지에서 밝히고 있듯이 서지월시인은 평생을 전업시인으로 시만을 고집하며 살아온 시인으로 중학교 2학년때부터 시인이 되기를 꿈꾸어 왔으며 40년 세월 하룻밤도 시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또한 한국시인으로서는 유일하다시피 중국 만주대륙을 9차례나 밟으며 웅혼한 민족기상을 시로 승화시켜왔는데 그 열정과 저력을 이번 강연에서 샅샅이 밝혀줄 예정이다, 중국 동북공정에 의해 고주몽이 대고구려를 건국한 홀승골성 서성산이 광개토대왕비에도 새겨져 있는데 중국 역사현장 표기로 오녀산으로 바뀌었는가 하면, 오천년 우리 민족 젖줄의 강인 비류수마저도 중국표기로 혼강으로 바뀌어져 있는데 대한 통탄의 심사를 피력한다. 서시인이 무더운 여름날 저녁 고주몽이 대고구려를 세운 만주 환인땅 비류수에서 초승달을 바라보며 느낀 역사비극에 대한 감회라든가 광개토대왕비가 있는 집안땅 압록강에서 멱을 감았던 추억담 등을 들려준다.

또한, 서지월시인은, 시인의 사명이란 민족정신과 역사의식이 투철해야  올바른 그 나라의 모국어 시인이라는 것이다. 외래문화가 난무하고 고유한 것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시대 시인으로서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대목으로 읽힌다. 시인은 자신이 살아온 소신도 밝히고 읽는데 정직하게 살고 진실하게 살며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라 한다.

 

-서지월 시인 강연자료-

 

내가 대륜학교를 다닐 때가 지금부터 35년전인데 아직도 기억나는 게 몇 가지가 있다.
전교조례시간 교장선생님께서 오히려 다른 학교의 교훈을 소개하시면서 <순간적인 감정에 살지 말고 큰 흐름의 나를 찾아라>가 그것이었으며, 중학교 2학년때 영어시간이었는데 영어선생님께서 칠판에 미당 서정주 시 <동천>을 써놓으시고는 혼자 중얼거리시고는 지워버리시는 거였다. 그 당시는 그게 무슨 영문인지도 몰랐었다. 또 하나는 과거 대륜학교 한솔 이효상 교장선생님께서 국회의장이 되어 서울에 가 있으면서도 <그대 대륜아, 잘 있는가>라는 시를 남겼다는 것이었는데 시인이 되고자 갈망했던 나에겐 굉장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평생을 문학해 나가는 내게 지대한 정신적인 자양이 되었다.

내가 시인이 되고나서 안 일이지만 1930년대 시인 백석은 당시 평안북도 오산중학교를 다녔는데 오산중학 선배가 김소월이라는 시인이라는 걸 알고서 시인이 되고자 꿈꾸었다 한다. 김소월은 다 아는 바와 같이 가장 널리 시가 애송되는 한국시인이지만 백석은 뛰어난 작품성을 지닌 대표적인 북한시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일제치하 우리 민족의 북방 유랑정서를 가장 잘 살려낸 시로 <남신의주 유동박씨봉방>이 있는데 신의주로 가서 8.15 해방 이후 만주로 갔다 하나 행방불명이 되어 작고한 것으로 매김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북한에 남아있다가 아오지탄광으로 유배가서 수십년을 집단농장 생활을 하다가 1995년 83세에 작고했다는 신문보도가 나와서 문단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나는 대륜즁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오늘 이 자리는 내가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시단에서 시인이 되어 활동하다가 35년만에 서지월이라는 필명으로 모교로 돌아와 후배들 앞에 선 것인데 이 보다 더한 감개무량이 어딨겠는가. 반면. 나를 가르친 선생님들께서는 한 분도 아니 계시고 한두 분이 고령의 나이로 계실 뿐 거의 대부분 세상을 떠신 걸로 아는데 참으로 인생무상을 느낀다.

어쨌든 나도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35년이 되었으니 강산도 여러 번 변했고 나도 늙어가고 있다 하겠다. 나는 중학교 2학년때부터 시인이 되어야 겠다는 꿈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는데 방과후면 도서관에 가서 많은 시집을 읽곤했으며 고등학교 들어와서는 더욱 열심히 문학에 열성을 가지되었는데 바로 그때 김소월같은 시인이 되겠다고 열망했던 것이다.

내 본명이 서석행인데 그래서 필명도 김소월(金素月) 비슷한 서지월(徐芝月)로 하게 되었던 것이다. 성이야 바꿀 수 없잖은가 말이다. 그 이후 시인이 되고 나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내 필명 서지월에 대해 이러러한 말을 화제로 많이 퍼내기도 했는데 내가 바라는게 민족서정시인이 되는 꿈이었던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김소월의 영향을 많이 받아 사랑시를 주로 썼는데 그러한 대표적인 사랑시를 소개 하면 다음과 같다.


내 사랑

서 지 월


길을 가다가도 문득
하늘을 보다가도 문득

지금은 안 보이지만
생각나는 사람

이 하늘 아래 꽃잎 접고
우두커니 서 있는 꽃나무처럼

내 생각의 나뭇가지는
서(西)으로 뻗어 해지는
산능선쯤에 와 있지만

밥을 먹다가도 문득
다른 길로 가다가도 문득

안 보면 그뿐이지만
생각나는 사람


이 시는 서울특별시가 주관한 <시가 흐르는 서울>에 선정되어 서울 신림역 지하철에 붙여져 있다 한다. 길손들에게 음미해 보라는 듯 말이다.

특히, 나는 어릴적부터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라는 조그만 시골에서 태어나 성장하며 대륜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통학을 했는데 자연이나 토속정서를 주로한 서정시가 내 시의 기반이 되었다. 지금까지 많은 토속서정시를 주로 써왔는데 이제와서 사람들은 이런 한국적인 토속정서 내지는 전통정서를 노래하는 시인이 잘 없고 보면 나를 한국시단에서는 마지막 서정시인이라고들 부르기도 한다.

2001년 4월 4일 중앙일보에 소개 된 시가 한 편 있는데 그게 한국시인협회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을 노래한 시인으로 나를 선정했는데 달성군 비슬산자연휴양림에는 그 시 <비슬산 참꽃>이 시비로 세워져 있기도 하다.

더 나아가면 어느날인가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이 있듯이, 어릴적부터 늘 흠모하고 그리던 압록강 위 만주땅을 밟게 되었는데 감회가 깊었던 것은 두말 할 나위없다. 만주땅을 9차례 다녀왔는데 맨 처음 친구따라 강남 간 것이 1999년의 일이었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신의주 맞은 편 중국 항구도시 단동에 내렸는데 그때 나는 압록강을 처음 만났으며 고려말 이성계가 말발굽을 돌려 조선을 건국한 계기가 되었다는 압록강상 위 위화도를 보고 왠지 가슴이 마구 뛰었다. 역사의 현장을 살아있는 듯 목격했으니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만 더 말한다면, 단동에서 허룻밤 자고 이튿날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무려 6시간 10분에 걸쳐 압록강을 거스르며 산 넘고 물 건너 당도한 곳이 바로 환인이라는 도시였다. 난생 처음 꿈속을 찾아온 듯 했는데 싱싱한 고등어등어리 같은 짙푸른 강물이 도시를 휘감고 흐르고 있었다. 알고보니 그게 우리민족 고대사에 자주 등장하는 비류수였다. 무더운 여름날이라 그 강가에에서 해지도록 앉아있었는데 초승달이 하나 떠오는 것이다. 이 초승달은 한국에서 본 것과 전혀 다를 바 없었는데 나는 그 초승달을 보는 순간 대고구려의 혼이 내가 왔다고 반기는 것 같음을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쓴 시가 바로 첫 만주기행시로 <비류수에 와서>이다.


비류수에 와서

서 지 월


주몽이시여
그대 꿈결의 초승달 하나
그대 2천년 꿈의 머리맡 돌아
비춰오시니 어찌하오리까
벌써, 다 먹어버린 밥그릇처럼
이 땅은 남의 것이 되었으며
이 강 역시 우리의 말(馬)이
먹을 수 없는 물이
되었음을 아시오니까
2천년 잠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으시매
누가 이를 증명하며 부싯돌에
칼을 갈아 저 천공에
번쩍이오리까
주몽이시여,
머리부분 빼앗기고
허리마저 동강나 그 동강난 두 다리
이끌고 천만리 길 마다하지 않고
북으로 북으로 왔건만
조금만 쉬어가라며
이 땅의 새 주인은
비자만 한 장 달랑
손에 쥐어 주더이다
내일이면 떠나야 하니
흐르는 눈물 닦을만한
손수건도 없이
저 달이 차오르는 것마저
몇날 며칠 지켜보지 못한 채
어디로 저를 가라 하는지
아아, 주몽이시여,
어찌하오리까!


바로 그 강가에 병풍처럼 두른 우똑 솟은 산이 하나 있었는데 우람하기 그지없고 장엄하기가 천하일품이었다. 말하자면 바로 고주몽이 대구려를 건국한 산정 오녀산성이었던 것이다. 나는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올랐는데 고주몽이 대고구려를 건국한 곳이 이곳에 있을 줄 몰랐던 것이다. 오녀산 정상을 오르 남아있는 것이라곤 맷돌 하나밖에 없고 소나무와 풀들이 돋아 아우치고 있을 뿐이었다.  

오녀산마저도 중국역사의 유래에 대한 표기로 바뀌었다는 것을 뒤에 알게 되었는데. 집안땅의 광개토대왕비에는 엄연히 우리민족의 강으로 홀승골성 서성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니 말이다. 이 어처구니 없는 중국 역사왜곡에는 분통이 터진다. 위의 5천년 우리 민족의 젖줄의 강인 비류수도 중국표기로 혼강으로 바뀌어져 있다.

나는 1955년 은5월 5일 단오날 태어났는데 시를 열심히 써 오다 보니 대고려를 건국한 고주몽도 연개소문도 다 나하고 같은 날 태어난 것을 알게됐다. 그래서 내가 문학뿐만 아니라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온 것이로구나 하는 확신을 얻게 되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민족과 역사 앞에 문학이 존재하며 시인의 사명은 민족정신과 역사의식이 투철해야  올바른 그 나라의 모국어 시인이라는 것이다. 일제시대 대륜학교(교남학교)를 다녔다는 이육사의 시 <광야>나, 대륜학교(교남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는 이상화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보라. 우리 대륜의 자랑이며 우리 민족의 긍지가 아닌가.

나는 전업시인의 운명으로 살아왔는데 참으로 많은 시를 써왔으며 수많은 만주기행시를 남겼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숨결 그리고 벋어나아가는 대한민국의 역사 앞에 시인이 남길 것이라곤 웅혼한 민족기상과 전통의 뿌리를 시로 승화시켜내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민족정신과 전통사상은 불변의 진리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뜨거운 피의 순환으로 늘 휘돌고있으니 말이다.  

끝으로, 즉 우리민족이 살아온 삶을 노래한 그러면서도 내가 가장 아끼는 <한국의 달빛>이라는 시를 한 편 소개한다.


한국의 달빛

서 지 월


쟁반 위에 놓여져
床을 받치고
더러는 바람부는 청솔가지 솔잎 사이로
물소리 흩뿌리는 수작을 걸면서
억겹 산을 넘어
지름길로 오는구나.

玉돌이야 갈고 닦아 서슬이 푸른 밤
싸늘한 바위 속 어둠 밝히며
쟁쟁쟁 울려오는 은쟁반 소리
은쟁반 위의 거문고, 바람이 흉내내는
나의 파도소리…….

옛날엔 이런 밤 홀로 걸었노라.
걸어서 거뜬히 몇 십리도 갔노라
짚세기 신고 돌담길 세 번쯤 돌아
모시적삼 남끝동 임을 만나고
수줍어 돌아서는 강물도 보고
손 포개고 눈 포개고 달빛 또한 포갰노라.

창망히 멀어져 간 수틀 위 꽃밭과
애달피 구슬꿰는 피리소리가
시렁 위에 얹혀서 돌아올 때면
쑥국쑥국 쑥국새는 숲에서 울고
칭얼칭얼 어린것은 엄마품에 잠든다.


이 시는 과거 우리 어머니들이 밤이 깊어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어린 아기를 등에 업고 대청마루에 나와 달빛이 난무한 속에서 밖을 내다보는 기다림의 정서를 읊은 작품이다.

덧붙이자면 나의 생활신조는 정직하게 살고 진실하게 살며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다. 가훈으로 삼고 있기도 하다.



[서지월시인 약력]

 

• 제3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제1회「한하운문학상」본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문경지부 주관「正文文學賞」수상. 중국「長白山文學賞」수상.

• 2007년, 달성군 주관, 한국시인협회 MBC KBS 등 후원으로 詩碑「비슬산 참꽃」이 비슬산 자연휴양림에 세워짐 .
•한국시인협회 회원(중앙위원)·.대구문인협회(외국문학 분과위원장) 및 대구시인협회 회원. 
• 현재, 한중공동 시전문지『해란강』한국측 편집 주필. 만주사랑문화인협회 상임고문. 한중문예대학 및 대구시인학교 지도시인.


■시집■

¤『꽃이 되었나 별이 되었나』(1988) ¤『팔조령에서의 별보기』(1996)  ¤『백도라지꽃의 노렌¤『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2003) 등 8부 시집 출간  

 

 

2009년 08월 25일
[편집]본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