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朝鮮의 눈발

서 지 월
나는 지금 세계의 가장 평안한 우차牛車에
실려가고 있다
아침 상 받으면
풋풋한 생채나물
그 미각을 더불어
어린 날의 서당골 물푸레나무
결 고운 길을 따라
잠 덜 깬 포대기 속 아이의
꿈결같이 굴러가고 있다
우리가 닿아야 할 예지의 나라
순은純銀의 밀알들,
바다와 강江이 놋요강처럼 놓이고
능陵은 풀잎처럼 잠든다
문경 새재에 눈이 내리면
청솔가지 꺾어들고 오는
하얀 버선코,
사슴의 무리가 눈을 뜬다
지붕밑 동박새가 살을 부빈다
마을에서도 숲에서도
눈은 내리고
누군가 흰 고무신 눈발속을
조심조심
미끄러져 가고 있다
아침 신문 유액 위 '조선통사朝鮮通史'가 빛나고
한 술의 배고픔보다 천 근의 무게로 울려 올
우리의 풍악소리.....
몇 백년쯤의 뒷날을 다시 생각노니,
지금 나는
세계의 가장 평안한 우차牛車에 실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잘도 넘어간다
<작가 노트>
-나의 대표작을 말하라면 1986년「한국문학」신인작품상 당선작인 <조선朝鮮의 눈발>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는 경북 북부지방인 문경 새재의 눈 내리는 겨을풍정을 나름대로 역사의식을 가미해 쓴 것인데, 조선시대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관문이기도 한게 문경 새재였던 것이다. 과거 역사현장 시간대를 현재의 시간으로 노래해 보았는데 그게 '문경 새재에 눈이 내리면 / 청솔가지 꺾어들고 오는 / 하얀 버선코'인 것이다.
이 시가 「한국문학」신인작품상에 당선되었을 때 많은 찬사를 받았는데 아마 그건 내가 30세라는 늦깎기로 시가 당선이 되어 문단에 등단하게 된 초석의 계기라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어느 시인은 그 당시 이 시를 보고 내게 마지막 연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를 잘도 넘어간다' 구절을 예로 들면서 절창이라 했다. 왜냐하면 우리들에게 너무나 친숙한 민요 아리랑 구절을 그대로 인용했는 데도 전혀 인용한 것 같지 않게 잘 융화되어 이 시를 쓴 시인만이 갖는 음색과 톤으로 울려온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를 잘도 넘어간다' 를 쓸려고 쓴게 아니고 많이 고심을 했던 것이다. 이 시는 내가 아마 26~27세에 쓴 것으로 아는데 문제는 마지막 연의 마지막 결구였다. '지금 나는 / 세계의 가장 평안한 우차牛車에 실려'까지는 괜찮은 것 같은데 '~장롱처럼' 이라는 구절이 자꾸 읽어보니 걸렸었다. 그러니까 진부해 보여 그대로 쓸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진부할 뿐만 아니라 너무 도식적인 즉 빤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고심고심하던 끝에 절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를 잘도 넘어간다' 라는 아리랑 구절이 나도 모르게 떠올랐던 것이지 작위적으로 이것저것 대입을 해 보면서 선택한게 아니라는 데 있다. 이렁 경우 신神의 계시라 하는지 미당의 시들이 그렇게 쓰여졌다고들 한다.
당시 '믿음직한 능력'이라 제목을 단 심사평에서 박재삼선생님은, '많은 응모작 중에서 서지월徐芝月씨의「조선朝鮮의 눈발」을 뽑는다. 차분하면서 프렛시한 정감을 담은 말이 제자리 잘 얹혀 훌륭하고 멋진 톤으로 이어져 있다. 역사를 보는 눈이 케케묵지 않고 새로운 시각을 가미하여 따뜻하게 울려온다. 이만한 안목이나 가락이라면 능히 새로 문단에 소개하여 제 몫을 단단히 해낼 것으로 믿는다. 든든한 신인을 얻었음을 기뻐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또한 김승희시인은 어느 글에서, '몇년 전 서지월의 작품을 처음 대했을 때 나는 내 나름대로 그가 초로에 접어든 중년시인일 거라는 상상을 했었다. 芝月이라는 이름이 한국문학사 속의 찬란한 옛 거장들인 지용芝鎔과 소월素月을 연상시켜 주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능숙한 글재주와 전통적인 서정감각이 민족의 혈육 가운데 오래 섞여서 동화되어온 그런 <유구한> <중후한?> 느낌을 담고 있어서였을까. 내가 처음 읽었던 그의 데뷰작인 <조선의 눈발>은 바로 그런 소월적素月的인 향토정서와 지용적芝鎔的인 깨끗한 회화성을 갖춘 수작이었다.'고 평했다.
1982년과 198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이 각각 번갈아 당선 되어 화려하게 등단한 문형렬시인도 '그 당시 한국문단 3대 종합문예지의 하나로 명성을 떨치던『한국문학』'신인작품상'에 당당하게 당선되어 선 보인 시로 시 <조선朝鮮의 눈발>의 경우, 역대 문예잡지로 나온 당선작 가운데 이만한 큰 울림의 시가 어디 또 있을까 하고 나름대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라고 피력했다.
광주의 젊은 시인 강경호씨는 '시 <조선朝鮮의 눈발>은 우리의 전통적 정서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시의 스케일도 크거니와 전혀 오염되지 않은 우리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아침 신문 유액 위‘조선통사朝鮮通史가 빛나고/ 한 술의 배고픔보다 천근의 무게로 울려올/ 우리의 풍악소리…/ 몇 백년쯤의 뒷날을 다시 생각노니,”에서는 유장한 역사의 흐름을 바라보는 통 큰 선비의 여유가 보인다. 그 여유는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지는데 청빈하지만 비굴하지 않은 조선민족의 큰 골격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서지월시인은 단 한 편의 시를 통해 본래 우리 민족이 지녔던 웅모를 여실히 보여주고도 남음이 있다.'고 피력했고 보면, 나는 그 길을 유구하다 할까 그대로 이으며 걸어왔던 것이다.
모든 것이 서구지향적인 걸 넘어서서 이제는 서구문화에 물들어 어쩌지 못하는 판국에 이르렀다고 보는데, 나는 등단작 가운데 한 편인 <조선朝鮮의 눈발>의 이러한 기운을 조금도 외면하거나 비껴가지 않고 그대로 민족적 기상이 몸에 밴 채 유지해 오고 있다고 보면 옳을 것이다.
서지월
1955년 연개소문과 같은 생일인 음 5월 5일, 단오날 대구 달성 출생.
1985년『 심상』및『 한국문학』신인상 시당선으로 등단.
1999년, 전업작가 정부특별문예창작지원금 수혜시인에 선정됨.
2002년, 중국「長白山文學賞」수상.
시집『 강물과 빨랫줄』,『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등.
현재, 대구시인학교 지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