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보]중국 조선족시인들, 한국시단 진출
ㅡ고 박목월(朴木月)시인이 창간한 한국 시전문지「심상(心像)」2009년 4월호에 중국 조선족시인 김창영(심양), 윤청남(도문), 한일송(연길) 시 <신작시 특집>으로 수록!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으로 1940년대초 정지용시인에 의해 「문장(文章)」誌로 등단한 청록파(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고 박목월(朴木月)시인이 창간한 시전문지「심상(心像)」2009년 4월호에 중국 조선족시인 김창영(심양), 윤청남(도문), 한일송(연길)씨의 시가 <신작시 특집>으로 수록됐다.
요녕성 심양 조선족시인인 김창영씨는 '민들레 꽃씨' 외2편, 길림성 도문 조선족시인인 윤청남씨는 시-'비는 잔잔한 비' 외2편, 연길 조선족시인인 한일송씨는 시-'오랑캐령아리랑-1' 외2편과 각각 <시작 노트>가 함께 소개됐다.
한국에는 많은 시잡지가 있으나 '한국시의 아버지'로 일컫는 스승인 정지용시인이 일찌기'北에는 소월(素月) 南에는 목월(木月)이 나왔다' 고 했듯이 시전문지「심상(心像)」은 故 박목월(朴木月)시인에 의해 1973년에 창간되어 지금까지 한 호도 그르지 않고 발간되고 있는 유명한 시전문지로 알려져 있다. 현재 고 박목월(朴木月)시인의 장남인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가 편집고문을 맡고 있으며, 한국 서지월시인이 1985년 황금찬 박재삼시인의 심사에 의해「심상(心像)」신인상에 시 '겨울信號燈' 외3편이 당선된 바 있다.
**1973년 7월 13일 | 등록 제 라-1969 2009년 | 4월 30일 | 제 37권 4호 통권 426호 | 값6,000원
◇출처/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http://cafe.daum.net/manjuloveme
[심상](2009년 4월호)조선족 김창영 윤청남 한일송시인 신작시 특집 및 시작노트
[심상](2009년 4월호)김창영 시-'민들레 꽃씨' 외2편
민들레 꽃씨
김 창 영
끝끝내 피여난 이 가벼움
바람결 따라 하늘 속을 떠서 흐르다가
때에 따라 어딘가로 내려앉으면
또 다시 가볍기 위한 너의 몸부림
가슴을 땅바닥에 대고
김창영
등을 땅바닥에 대고 하늘을 본다 저 높은 하늘 아래 내 이제 한 치도 떨어질 공간이 없음을 직감한다
귀를 땅바닥에 대고 눈을 감는다 이 세상 온갖 소리 소리들이 나를 감싼다
가슴을 땅바닥에 대고 두 팔을 벌린다 아, 아, 내가 이 땅의 주인인 것을!
꽃을 두고
김 창 영
사람들은 꽃을 두고 때에 따라 곱다고 한다. 밉다고 한다.
나비들은 꽃이 고운 줄 모른다 미운 줄도 모른다 그저 꽃 자체를 좋아하고 따를 뿐이다
꿀벌들도 . 꽃이 고운 줄 모른다 미운 줄도 모른다 그저 꽃이 피면 꽃을 떠나지 못할 뿐이다.
꽃들은 사람들로부터 곱다 밉다 험담을 들어도 늘 그대 눈빛 속에 피여있다가 그대 마음에 열매로 남는다
<시작노트>
벽 없는 시의 감옥이
김 창 영
한권의 시집이 나를 이처럼 무자비하게 잡아가두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벽 없는 시의 감옥이 이처럼 가혹하게 내 정신을 난도질할 줄은 더더욱 생각지 못했다. 2008년 8월 8일 한국 대구 달성군 아미산방에서 시인 서지월선생님과 함께 했던 하룻밤의 시의 여행은 "박재삼시전집"으로 옮겨져 지금 이 순간도 나를 무아경의 경지로 유인하고 있다. 미치지 않고는 도저히 헤여나오지 못할 것 같은 아득한 그 공간에 자신을 아무 미련도 없이 내동댕이치고 무수한 밤, 피 말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다시 태어나는 순간 비로소 벽없는 그 시의 감방에서 풀려나올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내 영혼이 시로 태어나는 거리를 내 생애에 자로 잴 수는 있을까? 그러지 못할 바엔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약력>
▲1967년 집안 태생
▲연변작가협회 이사
▲료녕성작가협회 회원
▲심양시조선족문학회 회장
▲료녕조선문보 기자
[심상](2009년 4월호)윤청남 시-''비는 잔잔한 비' 외2편
비는 잔잔한 비
윤 청 남
물 우에 내리는 비가 곱다 마당에 들어서는 비가 달다 숲을 헤치고 와자작 지나간 비보다 모르게 풀잎에 이슬로 잠간 머물다 갔어도 비는 잔잔한 비 잔잔한 비가 재미있다 잔잔한 비가 씹을 맛난다 잔잔한 비가 이쁘게 맵다 구름 아닌 담담한 색상의 하늘빛 그림으로 순한 사토길 우에 사운사운 내리는 추억이 되기에는 언제도 충족한 남자를 울리기에는 지금도 넘치는 비는 잔잔한 비 어디에서 만나도 싫지 않는 옷은 잔잔한 비에 젖고 싶다 꽃은 잔잔한 비에 졸고 싶다 작은 바람에 휘기를 거부하지 않는 대나무처럼 비는 잔잔한 비 낮추고 싶다 굽히고 싶다 버리고 싶다 잊어도 무방한 모든 것을 잊고 남자는 남자를 져주고 싶다 살가운 순종만으로도 행복을 알 것 같은 비는 잔잔한 비
들꽃을 보며
윤청남
피는 날은 슬푸다 하리 어떻게 왔는데 이렇게 지려니 피는 날은 아푸다 하리 만송이 이름 거쳐간 뿌리에서 순간의 빛깔로 태여나 아아. 피는 날은 애답다 하리 피는 날은 웃겹다 하리.
꽃(25)
윤 청 남
내 좋아하는 녀자보담 네가 좋아하는 남자로 늙고싶다 꽃병에 꽃이 외로와지면 꽃병이 아파하는 눈빛에 행복해지리라 나를 순하게 져줄 줄 아는 기술로 남자란 무기를 놓으려니 내가 좋아하는 녀자보담 네가 좋아하는 남아로 삶을 목말라 하리 진정 가진 마음 드놀지 않는다면 길은 평화로우려니 믿지 못할 불해은 없으리 나는 작은 기침소리에도 크게 놀랄 줄 아는 촛불의 맑은 음악으로 아름다우리니.
<시작 노트>
詩의 길
윤 청 남
저의 시가 거의 독자를 염두에 둔 시들이지요.
될 수 있으면 재미있게 부드럽게 가깝게 독자와 멀어질까 근심하며 시를 썼지요.
그러니 발표도 잘 되고 호감도도 좀 있고 그 멋에 길을 너무 멀리 온 것 같습니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썼던 글에 대한 얘기는 얼마 전 저이와 했던 얘기지요.
그런데 한 달전 한국 서지월선생님의 얘기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 좋은 얘기지요. 도움이 크게 될 줄 압니다.

<약력>
▲1959년 흑룡강성 오상현 출생
▲2000년 연변문학 시부문 신인상
▲2002년 연변문학 시부문 본상
▲2003년 연변정지용문학상 수상
▲2005년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 시부문 본상 당선.
▲시집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있음.
▲현재, 길림성 도문시 체육장 재직 |
[심상](2009년 4월호)한일송 시-'오랑캐령아리랑-1' 외2편
오랑캐령아리랑-1
한일송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오랑캐령에 아리랑 노래가 흐르오 두만강 건너 쪽박차고 넘던 고개 배고파 쓰러지며 울던 아흔아홉 고개길 한겨울 눈 비벼먹다 죽은 원한의 고개길
월강죄 무시하고 오랑캐령에서 부르던 아리랑 시내물따라 두만강에 흘러들어 동해로 간다오 죽은 넋이라도 파도소리 자장가 삼아 월강민 피맥힌 한 담아 고향 간다오
낭자야, 낭낭 18세 불쌍한 낭자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오래캐령에 울리던 눈물겨운 노래 굽이굽이 천리길 감도는 두만강 5선보에 실리여 백년 한 담아 동해로 간다오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소리
구슬픈 오랑캐령 아리랑 오랑캐령 사라진대도 오랑캐령 아리랑은 동해의 노래로
다시 태여날거요
침향
ㅡ그대여
한일송
침향, 그대여! 그대의 향이 풍기는 데는 천년이 걸린다지요 잘 자란 참나무 바닷가 개벌에 파묻혀 천년세월 흐르며 소금꽃 핀 파도가 손풍금치듯 밀려오고 밀려가며 너를 쓰다듬어 주며 천년세월을 죽이고나서야 침향의 향기가 피여난다지요
향기로운 그대 몸과 마음 꺼내면서 사람들은 또다시 천년후에 꺼낼 참나무 산에서 날라다 정성껏 지하궁전 보내주는 잔치를 한다지요
천년후 누가 꺼내 누가 향수할 것 생각지도 않고 사람들의 마음은 천년을 살아 래일 지구가 멸한다 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마음같이
그대, 침향이여! 내 너와 한몸 되여 천년세월 떠올리며
백년도 못사는 인생이지만 천년사랑을 노래한다오
안해
ㅡ 한국 고시원 조선족 화재사건 소식에 부쳐
한일송
산너머 바다 건너 인천항구 내려 서울가리봉 순이네식당에 내 반쪽이 있었다오 너무나 보고 싶어 날마다 함께 찍은 사진 보며 속 타는 술로 하루 해 보내며 애탄 맘 달래는데 머지 않아 석 달후면 돈벌어 온다던 내 반쪽 고시원서 불사당했다오
산이 멀어 못 오나 바다에 파도가 세차 못 오나 오매불망 자나깨나 그리웠는데 너무나 기막힌 소식 하늘이 무너졌소 땅이 꺼졌소 머리를 싸쥐고 통곡해도 소용없소 하늘도 무심하오
<시작노트>
시는 영원한 그리움
한 일 송
시는 나에게 있어서 사랑의 그리움이였고 아픔의 한이였습니다.
시는 기나긴 내 인생길을 함께 한 그림자와 같습니다.
때론 보이고 때론 보이지 않아도 항상 내 마음과 함께 한 연인이였습니다.
대학시험제도가 없는 때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촌에서 일하며
많이 방황했습니다. 그때 시는 내 삶의 등불이였습니다.
그래서 처녀작품으로 시를 연변문학에 발표하면서 자신을 달래보기도 했습니다.
시인이 되려고 국문학을 선택했지만 생각과 달리 언론인으로 보내면서
사건의 현장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중국 조선족문단에 처녀작을 발표하여 33년만에 한국의 유명한 시전문지 「심상」에
선보인다니 심장이 활어처럼 뛰고 마음이 설레입니다.
어쩜 나에게 있어서 시는 영원한 그리움이며 한을 풀어감는 물레와 같은 존재입니다.

<약력>
▲1956년 화룡 출생. 본명 한태익.
▲연변사범전과대학 졸업.
▲1976년 「연변문학」에 첫 시를 발표한 이래 시 <모아산>, <나의 봄 너의 봄> ▲수필<까마귀에도 밥을 베풀어라>, <돌과 나무의 백년사랑>등 수십 편의 문학작품 발표.
▲연변라지오텔레비신문사 편집국장, 생활안내신문사 사장 역임
▲연변작가협회 회원, 연변시조시사 회원, 연변사이버시조협회 회장.
▲한민족사랑문화인협협회 상임위원장.
▲현재, 중국 연변방송 <이 밤을 함께 합니다> 프로 '외로운 그대에게' 담당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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