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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제43회 단종문화제 전국일반백일장(수필부문) 수상작 ■

아미산월 2009. 5. 7. 02:28

■2009' 제43회 단종문화제 전국일반백일장(수필부문) 수상작 ■

 

 

<제43회 단종문화제 전국일반백일장 수필 부문 차상> 

 

동 행(同行) 

 

고화숙(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갑작스런 바람에 한창이던 느티나무 작은 가지가 부러져 예쁘게 원을 그리며 한참을 걸려서야 바닥에 닿는다. 무심결에 잡으려 뛰었는데 닿을 듯한 위치에 가자마자 바람이란 놈이 더 멀리로 나뭇가지를 날려 버렸다. 

 그 모양을 보며 우리 인생처럼 느껴진다. 다른 이의 삶이 나를 움직일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요양원 입구 시아버님을 만나러 먼저 도착한 나는 다른 차로 출발한 가족들을 기다리며 바람에 부러져 이리저리 떠도는 나뭇가지를 보며 회상에 젖는다. 

 머리 좋기로 소문난 몇 대를 천주교 집안인 곳에서 외동딸로 자란 시어머니는 본인 자식만 귀하게 여기고 며느리는 하찮게 생각하는 집의 장남에게 시집을 오셨고, 그때부터 시부모 모시며 어린 시누이들을 키우셨다. 생계와 잡일 부엌일이 모두 본인 차지였다.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유람을 일삼던 시아버님은 한창인 나이에 작은댁을 두셨고 자식을 보셨다. 본처인 어머님은 시어머님과 본인 여섯 자녀를 모두 죽도록 일해서 봉양하고 키웠다 한다. 작은댁이 죽고 본처에게 오신 아버님은 지금 노인성 질환인 치매로 요양원에 계신다. 요즘은 어머님이 작은 부처님으로 보인다. 곱게 자라서 사랑받으며 살았어야 할 어머님의 인생이 남으로 인해 모질고 힘든 60년이 되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못하는 환자인 아버님께서 결혼 60주년이라고 자랑을 자랑을 하시고 다니시고, 작은댁 소생의 자녀가 떡을 한 말을 해 왔는데 본처 소생의 여섯 자녀인 우리가 빈손으로 왔다고 야단을 하신다. 나도 모르게 어머님 표정을 봤다. 화난 얼굴일 것이라 짐작했던 나는 내심 놀랐다. 눈물을 흘리며 측은해 하시는 것이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어머님께 묻는 철없는 막내 며느리의 질문에 빙그레 웃으며 마음을 함축하여 한말씀 만 하셨다. 

 “지금까지 같이 왔는데 얼나 남지 않은 길 끝까지 함께 가야 되지 않겠니?” 

 인생은 누군가와 끝까지 동행해야 하나 보다. 눈물이 난다. 얼른 눈물을 말리며 나도 이런 어머님과 동행 한다고 생각하니 두려울게 없다. 이미 어머님은 내게 부모요, 철학자요, 스승으로 느껴진다. 

 나는 집에 작은 부처님을 모셔두고 있다. 

 

 

<단종문화제 전국일반백일장 수필 차하 작품> 

 

동 행 

 

전미경(경북 영주시 휴천동) 

 

  거실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자유로움으로 넘쳐난다. 꽃망울 터지는 소리에 한가한 주말 오후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또 다른 세상을 만난 듯하다. 

  불혹의 나이테에 그려지는 세상은 지금껏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앞으로 걸어가야 할 시간 속으로 무한의 책임을 더해준다. 모난 돌 두 개가 만나 둥글게 닳아가며 몽돌이 되어가듯 남편과의 질기고도 긴 동행은 서로 품어 하나 되는 연리지였다. 

  육 년 전 그치지 않는 출혈로 인해 병원을 찾았을 때 나팔관이 파열 되었으니 수술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사의 말은 지금까지도 고막에서 떨림으로 남아있다. 

  나팔관 절제술을 받아야 하니 보호자를 급히 부르라는 말에 몸과 마음은 얼음덩이마냥 그 자리에 차갑게 굳어버렸다. 예고 없는 수술은 불안을 껴안고도 모자라 내 삶에 먹구름이 낀 것 같은 검은 하늘이었다. 

  수술에 앞선 각종 검사를 받던 중 연신 눈물이 샘을 이루어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진한 슬픔이었다. 두려움과 무서움을 감당하기엔 벅찬 무게감이 내 안에 자리했다. 수술실로 옮겨지면서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으려고 했으나 울먹이는 두 딸아이의 얼굴을 본 순간 눈물은 쉼 없는 펌프질을 해댔다. 나 보다 더한 슬픔은 아이들의 얼굴이 대신했다. 아이들 등 뒤로 아름다운 동행을 꿈꾸자던 남편의 표정에 진한 연민이 담겨 있었다. 

  거부하고 싶은 역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더니 이내 온몸으로 번져 나갔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마취가 되면서 스르르 눈이 감기었다. 눈을 뜨면서 시계부터 찾았다. 회복실 벽에 걸려있는 커다란 아날로그시계가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의식이 빨리 돌아오라는 듯 초침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원을 그리고 있었다. 

  열흘간의 병원 생활은 길고도 지루했다. 퇴원 후 심신이 지쳐있던 탓에 신경이 점점 예민해져갔다. 나팔관 하나를 잃었으나 장기 여러 개를 상실한 느낌이었다. 그 공허함은 남편에게 짜증과 투정이 담긴 언어로 전달되었다. 새된 목소리로 남편 가슴에 생채기를 남기고 말았다. 

  무수한 말들 중에서도 강도 높은 어휘만을 골라 날선 언어로 남편마음에 아픔을 꽂았다. 나 자신도 놀라울 만큼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던 단어가 제 갈 길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말의 씨앗을 살피지 못하고 내뱉은 말을 들으며 남편이 삭힌 상처는 다시 나의 가슴에 깊은 골을 패이게 했다. 우리의 동행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시들해지고 있었다. 

  한 번 내뱉은 말을 주워 담기엔 이미 때늦은 뒤였다. 나의 입을 통해 쏟아진 무수한 말씨가 땅에 떨어지더라도 사랑이라는 건실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미움과 증오라는 부실하고 보잘 것 없는 결실을 맺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쏟아진 언어를 다시 추수하고자 남편에게 맑은 마음보이며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그의 표정에 모든 것을 담고도 남을 아량이 배어있었다. 

  남편은 나의 마음에 진주를 품게 했다. 세차고 무서운 파도에 부서지면서도 아픔을 견뎌 조개의 살에 박힌 진주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두 나뭇가지가 맞닿아서 같이 살아가는 것을 연리지라 한다. 화목한 부부 또는 남녀 사이를 일컫는 말이다. 결혼은 환상 속에서 꿈의 날개 짓이 아닌 현실 속에서 융화와 조화를 이루는 행복한 동행이라고 생각한다. 

  난 지친 어깨를 서로 맞닿아 살기 보다는 혼자만 기대고 의지하려고 했지 남편이 기댈 어깨 하나 내어주지 않았다. 작고 여린 두 나무가 힘을 합하여 지탱한다면 모진 강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우람한 거목으로 자랄 수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미안하고 부끄러웠던 시간들 속으로 남편을 향한 동행의 씨앗을 정성스레 심기 시작했다. 그곳에 알맞은 온도와 햇빛, 적당량의 수분으로 최선을 다해 돌보고 있는 자신에게 만족의 기쁨이 들어섰다. 

  결혼을 구속과 압박으로 생각하지 않고 나눔과 보살핌으로 생각한다면 헤지고 깎이는 아픔일지라도 온 몸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남편은 나의 삶에 값진 의미를 부여해 주었으며 지금껏 잊고 지내왔던 내 삶 언저리에도 뜻과 보람을 찾게 해 주었다.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흡수되면서 풀 한 포기의 생명에도 감사의 눈길이 꽂히고 흘러가는 구름 속에서도 감사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아픔의 동행이 없었더라면 알지 못하는 산술이었기에 그 값은 더 값지고 존귀하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무한의 시간 속으로 부끄럽지 않은 아내가 되기 위해 동행의 집에 이해의 문양을 그려 넣을 것이다. 

  남편은 언제나 변함없는 곳에서 나를 지켜주는 하늘이다. 나의 손과 깍지 낀 그의 손에서 동행의 따스함이 전해지고 있다. 

 

 

<제43회 단종 문화제 전국일반백일장 장려(수필)> 

 

동  행 

 

김수정(경북 울산시 남구) 

 

새벽의 하늘은 푸른 잉크병을 천천히 쏟아 부었는지 시간의 틈을 거슬러 밝은 파랑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습관처럼 일어나 시계를 흘깃 쳐다보고는 정해진 순서처럼 익숙하게 부엌으로 향했다. 오래전부터 답습되어 온 관행처럼 식탁 위에 약병을 들어 몇알의 건강지킴이를 입에 털어 넣는데, 휴대전화의 둔탁한 진동이 정적을 흔들었다. 

 “여보세요.” 

이른 시간의 전화는 기쁜 소식보다 우울하고 슬픈 소식이 많은 것이 일상 다반사이기에 미음이 조심스러웠다. 

 “나야, 너 L씨 알지? 어젯밤에 갑자기 가슴이 아프다고 쓰러졌는데 그 길로 죽었다네. 안 믿기지?” 

순간 귓가에 쨍하는 비명이 바닥에 떨어지더니 조각조각 갈라졌다. 발끝을 타고 미세하게 흐르는 당혹감이 심장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어떻게 전화를 끊었는지 정신을 차려보니 멍하니 물병을 들고 서 있었다. 입에 넣은 약들이 침에 녹아 쓴물로 혓바닥 위를 떠다녔다. 어제 아침에 맑은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 이제 할 일이 생겨 너무 기쁘다는 대화를 했었는데...... 믿기지 않는 현실을 앞에 두고 황망함에 전신에 힘이 빠졌다. 

  L씨는 나와 같은 병을 가진 동병상련의 상대였다. 혈당이 높아 항상 입이 마르고, 피로를 많이 느끼고, 별거 아님 일에도 짜증이 생기는 당뇨병! 

 똑같은 증상을 가지고도 그는 살아 보려고 발버둥을 치고, 나는 있는 그대로 대충 살다가 죽으련다는 극과 극의 생활을 선택했었다. 

 당뇨에 좋다는 풀이며 약초를 찾아 전국의 산을 누비는 것으로도 모자라 수백 권을 책을 섭렵해 수십종의 약재로 조제한 약을 물처럼 가지고 다녔었다. 생에 대한 질기고 강한 애착은 아무리 밟아도 다시 고개를 드는 들판의 잡초보다 독하고 무서웠다. 

 “수정씨도 나차럼 건강 챙겨요 그러다가 큰일 나요. 당뇨는 합병증이 얼마나 무서운데요.” 

머리를 흔들며 가끔씩 술을 먹는 나에게 진심어린 걱정을 보내기도 했었다. 그런 날은 이상하게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기억의 추를 흔들었다. 

 평생을 인슐린과 동행함u 삶의 마지막을 설탕과 싸워야 했던 내 아버지. 새벽에 밤이 깨 화장실을 가려고 나갔던 거실에서 슬픈 뒷모습을 보고 말았던 안타까움이 코끝으로 몰려 알싸하다. 우울하고 짙은 유령의 그림자처럼 식탁 앞에 서서 설탕통을 부여잡고, 숟가락으로 설탕을 마구 퍼 먹던 모습이 아픔으로 시간을 붙잡는다. 자식들 앞에는 병에 대한 굳은 의지를 약속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본능의 허기를 끝내 뿌리치지 못했던 당신의 삶을 이제는 나에게서 본다. 마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아침이면 눈을 뜨기 무섭게 담배를 물면서 정작 자신은 담배를 피우는지도 모르는 일처럼, 아버지도 생활의 정해진 일과 속에 새벽시간 설탕 퍼 먹기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몸에 더 이상 주사 바늘을 찌를 자리가 없는 슬픔이 늘어갈수록 설탕통은 잔인하게 비워졌다. 지루하고 끈적한 장맛비가 내리는 속에 치룬 당신의 장례식은 불에 녹아가는 설탕처럼 처음엔 녹아서 슬프고 나중에는 새까맣게 타들어가 쓰라리고 따가웠다. 그리고 유대한 유산으로 나는 기꺼이 당신의 당뇨병을 고스란히 받았다. 

 서른을 갓 넘긴 나이에 390을 오르내리는 혈당을 평생 동행으로 살아야하는 아이 둘딸린 이혼녀의 삶! 함께 어깨동무를 하기에는 그리 좋은 친구는 아니지만 받아들이자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했다. 주변에서 오히려 더 걱정을 하고 염려했지만 인간은 누구나 평생을 동행할 몇가지 중에 질병이 있을 뿐이라고 큰소리를 쳤었다. 어차피 세상에 태어남 자체가 죽음과 걸어가는 길이라 제법 개똥철학을 주장하며 나만의 세상을 만드는 일도 기꺼이 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심장에는 혹시하는 불안감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가 같은 병을 앓는 이들의 죽음에는 칼날보다 날카로운 비수를 등에 꼽는다. 

 하얀이를 드러내고 해맑게 웃던 L씨의 미소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하다. 누구보다 당차고 씩씩하게 자신의 병과 동행을 했기에 더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다. 인간이기에 돌아 볼 자리가 더 부끄럽고, 인간이기에 남겨진 사람의 아픔이 더 눈물겹고, 인간이기에 생의 후회와 탄식이 더 애처롭고 서럽다. 마흔 셋의 나이와 맞바꾼 이승의 인연이 새볔 하늘을 밝히는 푸른 빛이여서 온몸이 저리다. 손에 든 물병을 입에 가져가 쓰디쓴 물로 변하는 약을 꿀꺽삼켰다. 알약 하나가 목구멍에 넘어가다 말고 강력 접착제처럼 달라 붙어 애를 먹인다. 숨이 점점 막혀 얼굴이 빨개진다. 서둘러 물병을 들어 물을 들이킨다. 용캐도 목을 타고 약이 넘어갔다. 휴우 살았다는 안도의 숨이 터져나오는 순간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얀색깔이다. 살기위한 생명의 몸부림은 미세한 깨달음을 안고 물과 함께 몸 안을 떠다닌다. 죽음을 연락받고 알게 된 생명의 호흡. 그렇다. 삶을 동행하는 마지막까지 우리네 인생은 죽음을 입으로 내뱉으면서 생명을 갈망하는 존재임을 느낀다. 살아야한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수필 심사평

 

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형상화 시켜 진술하는 문학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을 단순히 나열해 놓는다면 그것은 수필이라기보다 일기 또는 기록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수필을 쓰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한 주제의식과 어떻게 표현했는가에 대한 문학적 구조, 그리고 남다른 깊은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부담 없이 읽으면서도 큰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수필이다. 

영월 고화숙씨의 <동행>은 시어머니의 삶을 중심으로 한 가족의 생활체험으로 우리의 삶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바람에 부러지고, 또 바람에 멀리 날아가 버린 느티나무 작은 가지에 비유해 작품의 문을 열었다는 점이 매우 돋보였다.

다른 사람에 의해 우리의 삶도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평생 작은댁을 두고 젊은 시절을 보낸 남편으로 인해 모질고 험한 삶을 살았지만 그 모든 것마저도 인생의 동행으로 승화시킨 시어머니의 삶을 무리 없이 잘 묘사되어 차상을 선정하였다. 

경북 영주에서 오신 전미경씨의 <동행>은 역시 생활체험으로 부부간에 슬프고 어렵고 섭섭했던 시기를 지나면서 아내로서 남편에게 의지하려고만 했지 남편에게 기댈 어깨를 내어 준적이 없음을 깨닫고 부부로서 조화를 이루며 남은 삶을 살아가겠다는 내용이 진솔하고 담겨져 있고 역시 진행과정이 무리 없이 잘 묘사되어 차하로 선정하였다.

장려로 선정된 경북 울산에서 오신 김수정씨의 <동행>은 아침마다 약을 복용하는 내용으로부터 시작되는 생활 체험으로 지난날 아버지가 겪은 질병과의 싸움을 떠올리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질병을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함께 가야할 동행으로 편안하게 받아들이므로 써 살아가면서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닥쳐도 생각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매우 독특한 묘사로서, 특히 문학적 표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3작품 모두 앞으로 수필의 본령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씩 깨쳐 간다면 좋은 작품으로 수필문학에 참신한 깃발이 되리라 기대한다. 

 

<수필 심사위원 신혜영(수필가)> 

 

영월 동강문학회 홈페이지 http://cafe.daum.net/youngweoldong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