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시]서지월 시-논 팔아놓고 장사합니까?
아 미 산 월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와
조선초기 대학자 서거정선생이 노래한
대구십경 중 하나인 <건들바위> 앞을
봄이 왔는데도 머플러를 걸치고
가방 하나 둘러매고 나 혼자서
어슬럴어슬렁 걸어가다가 내과병원 찾아 들어갔었지
감기몸살 약도 처방받고 주사도 한 대 맞고 해야겠기로
생각난 겸에 내 혈액형을 잊고 있어
피검사도 해 주느냐고 간호원한테 물어봤지
얼마 드느냐고 물으니 구체적인 답은 안하고
혈압 재어보자 하길래 혈압 재어보니
개판으로 살아왔는데도 고맙게도
내 몸이 나를 보존하여주는데 피의 순환이
아주 원활하다는 수치가 나왔었네
내 몸에 감사하고 감사한 일!
피검사 하는데 얼마 드느냐고 물은 건
병원 같은데 가 금액 미리 알아보지 않고
마구 이것저것 다 하다보면 지갑의 돈 모자라면 낭패이니
미리 물어보려 했던 것,
그런데 영 답을 안해 주더라니까
진찰실 들어가니 의사마저 피검사를 하신다고요?
예, 살다보니 혈액형 잊어버려 알아보려구요?
얼마 드는지요?
역시 답을 안하길래 그냥 해 줄수 없느냐고 말했지
수수년전 어느 병원 가니 그냥 피검사해 주는 것 같더라고 말이네
의사 왈,
논 팔아놓고 장사합니까?
하길래, 참으로 맞는 말씀입니다만
나는 논 팔아놓고 장사합니다 라고 해버렸다니까!
(그러고 나서 그 의사는 말이 좀 지나친 것 같다고 했고
나는 당연한 말씀이라고 못 박았다)
시 써 봤자 전혀 돈 안돼지, 시집 내봤자 수백 권
그냥 주어야 하니 몇 백만원 후딱 날아가지
절간에 3년 넘게 시해설 연재해 줘도 무일 푼,
대학교수 정년퇴임, 기관단체장 취임 축시 낭송,
등등 초청행사 불려가 시낭송 해도 공짜지
(차비 안 들면 다행, 하루 노가다 시간 다 뺏김)
내 시가 가곡으로 작곡 되어 공연장까지 왕복 차비들지
시집 한 권 분량 몇날 밤 세워 검토해 줘도
입 싹 닦아버리지, 돈 되는 게 없다니까 없어!
왜 가정에 망충망 교체하거나 TV, 컴퓨터, 보이라
수리받는 데 다 돈받고 부속품 교체비에 출장료까지
합산해 돈 받는데, 그런 건 떳떳이 주는데
시는 시인에게는 낱말이나 문장 교체비, 수정비,
출연료가 없단 말인가
웃기지 않는가 말이다
분명 고가의 수입 올리며 뷰티하게 살아가는 의사마저도
봐, 봐, 봐, 논 팔아놓고 장사합니까?
라고 하지 않는가?
시인은 팔 논도 없지만 논 팔아놓고 장사하는 격이니
이 시대의 중심에서 긁적여놓은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시인이 혈액형도 모른다면 말이 안되니
시인이 혈액형 알고 싶다면 의사가 공짜로 알아봐 줘도 되는 것 아니가?
내 말이 틀렸나?
으하하하하하ㅡ, 으하하하하하ㅡ, 으하하하하하ㅡ **
짜장면 공짜로 시켜 먹으라 그래,
튀김통닭 공짜로 시켜 먹으라 그래?!
(2009년 3월 19일 오전 8시 10분)
**이문열 풍자소설에 나오는 대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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