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의 팡세/⊙서지월시인 팡세

[서울대 박동규교수님 정년퇴임 기념산문집/원고]

아미산월 2008. 11. 12. 03:23

 

[서울대 박동규교수님 정년퇴임 기념산문집/원고]

------------------------
 해변시인학교의 추억 
------------------------

  오, 자랑스러운 나의 해변시인학교여!

 

 

  서 지 월

 

  나에겐 해변시인학교를 잊을 수 없다. <심상>잡지와의 추억도 추억이지만 내 문학과 삶의 방대한 숨결이 해변시인학교였다. 해변시인학교가 없었더라면 나의 문학적 삶은 얼마나 삭막했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보다 좋은 인연들이 어디 있었을까? 하고 늘 가슴 깊숙이 들앉아 있는 것이다.

  특히, 일부러 바다를 잘 찾아가지 못했던 내 닫힌 생각의 확장이 해마다 해변시인학교를 통한 바다의 숨결을 만끽하는 좋은 기회들이었다. 그래서 1986년부터 해변시인학교를 참여해 내가 목숨 끝나는 날까지 해변시인학교는 빠트리지 않아야겠다는 굳은 신념이 그것이다.

  2002년 한국시인협회의 아시아시인대회 중국 실크로드기행 일정이 먼저 잡히고, 해변시인학교 일정마저 종전과는 달리 그 일정이 당겨짐으로 해서 꼭 한번 빠지게 된 아쉬움이 크게 자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평북 정주 곽산 골짜기의 소월과 같이 대구에서도 깊숙한 산골에서 태어나 살아오고 있는 나로선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다가, 좀 폐쇄적이라면 폐쇄적인 성격이었는데 확 바뀐 경우도 해변시인학교를 통한 넓은 대자연 세계가 나를 큰 가슴으로 열리게 한 경우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동해를 아울러 서해까지 뻗친 해변시인학교를 통해 귀와 입이 모두 열렸었다. 거기서 만난 인연들도 참 많은데, 거기서 만난 여인과 결혼을 했으며, 거기서 만난 인연의 사람 가운데는 나의 문하가 되어 한국시단에 진출한 경우도 열 손가락이 넘는 것 같은데 모두 나하고는 좋은 인연의 소유자들이다. 이은림 양지예시인 등 나에겐 피붙이와도 같은 현생의 인연들이었다.

  <심상>하면 고 박목월선생님이 떠오르듯이, 내가 등단했을 땐 이미 선생님은 이 땅에 계시지 않았는데 나하고는 인연이 닿지 않은 그게 늘 애석하게 생각해 왔으며, 내가 시인이 되어서 박목월선생님과 인연이 닿았다면 내 시도 남달리 윤기를 더했으리라는 생각도 참 많이 해보았던 것이다.

  나는 <달빛>이라는 시에서 이미 노래하기도 했다.

 

    우리집 정원의
    배꽃가지 사이로 내리는 달빛 속에는
    잘 빗질해진 머릿결
    경상도 처녀의 분냄새와
    방물장수의 웃녘 사투리
    대광주리장수의 아랫녘 사투리
    겹겹이 들어 있어
    소매를 적시나니

    밤마다 스스러워 뜰에 서면
    둥두렷한 懷心의 달
    임은 가고,
    달아 달아 밝은 달아
    혼백만 남은
    설운 달아
    빈 항아리 눈물을 채우고

    어이하리야
    지난 날 가랑잎 밟던 소리를,

    우리집 정원의 배꽃가지 사이로 내리는
    그 달빛 속에는
    누이의 하얀 모시옷 자락도 보이지만
    南道를 날아 와 앉은 두견이가
    쓴 목청 돋구어
    꽃지는 온 밤을
    온 밤을
    울어 지새우노니.

 

 ‘ㅡ목월선생님 추도’라는 부재가 붙여져 있는 작품으로 평소 목월선생님에 대해 떠지질 않는 생각을 반영해 본 것이다.

  박동규교수님의 경우 내겐 목월선생님의 비운 자리를 메꾸어 온 분으로 항시 내 곁에 계시는데 내가 늘 그렇게 생각해 오고 있는 터인데,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증흑적 언변과 명석한 재간은 나의 흠모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니까 둔한 내 삶의 한 부분을 깨우쳐 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특별히 내게 애정을 많이 베푸시는 걸로 기억하는데, 나를 제일로 만만하게 대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닌가 싶고 나도 덩달아 박교수님과 농담을 나누기도 하는데 내겐 성화를 낸 적이 잘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내 성격이 윗분에 대해서 절대적이어서 조심하면서 대하는 주도면밀한 성격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내게 ‘젊은 오빠!’라는 별명을 붙여주신 유안진 신달자 선배시인도 알고 보면, 해변시인학교에서 묻어난 인연으로 오늘에 이르렀고 보면 그만큼 문단의 대인관계 확장도 해변시인학교에서 출발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나는 늘 ‘오, 자랑스러운 나의 해변시인학교여!’  하고 혼자 외쳐본다. <해변시인학교 서시>까지 쓸 수 있었던 것도 해변시인학교가 나에게 안겨준 무한한 정서였다. 청탁원고의 페이지가 넘치건 말건 계속 써내려간다면, 책 두서너 권 분량도 적을 정도로 내겐 해변시인학교에 대한 추억과 사연이 밀물 빠져나간 갯펄처럼 질펀하다.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애인이여 너가 생각나고
    네 손톱에 물묻은 하늘이 있다

    억겹 방파제를 돌아와
    사룬 절망과 꽃같은 심장
    홀로 타오르는 장미꽃을 보았다

    한 하늘 아래서
    한 바다 위에서
    우리가 떼지어 몰려드는 물새 발자국
    맑은 꽃무늬 닮을 수 있으리
    너가 만일 뱃고동 울린다면!

    어디서 우리는 만나
    조개껍질 성을 쌓고
    바라보는가, 이 바다를
    눈여겨 보는가, 애인이여

    꽃게같은 잔등을 내리어
    바다로 묻혀있는 우리들의 꿈
    일어서고 있었다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애인이여, 또 한번 너의 눈썹에서
    해말간 물보라 피고
    젖어서 빛나는 하늘이 있다

 

  말하자면, KBS-TV <이계진의 아침마당>에 방영되었던 시이기도 한데, 해변시인학교의 페이지를 뒤적이면 다시금 생각나는 내 젊은 날의 편린들이었던 것이다.

내 나이 50! 아, 30세에 등단한 내가 50세가 되었으니 나도 내 머리 희끗희끗함 알아차리겠고 쓸쓸한 중년의 겉잡을 수 없는 내리막길을 인식하고 있고 보면, 고목도 지난날에는 푸르렀으리라 연상되는 것이다. (徐芝月詩人)

 

 
 *서지월시인 연락처*

 

 ▶주소:우 <711-860>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78, 두문산방 徐芝月(시인)
 ▶전화:(053)767-5526
 ▶이메일
poemmoon55@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