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시인협회]<시향만리>(창간호)신지혜 시-'밑줄'외2편
밑줄
신 지 혜
바지랑대 높이
굵은 밑줄 한 줄 그렸습니다
얹힌 게 아무것도 없는 밑줄이 제 혼자 춤춥니다
이따금씩 휘휘 구름의 말씀뿐인데,
우르르 천둥번개 호통뿐인데,
웬걸?
소중한 말씀들은 다 어딜 가고
밑줄만 달랑 남아
본시부터 비여 있는 말씀이 진짜라는 말씀,
조용하고 엄숙한 말씀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인지요
잘 삭힌 고요,
空의 말씀이 형용할 수 없이 깊어,
밑줄 가늘게 한번 더 파르르 빛납니다
푸른 칼날
신 지 혜
새벽 뒷뜰에서 보았습니다
이슬 한방울 제 등짝에 짊어지고
온몸에 잔뜩 힘을 모은
풀잎 한 가닥 보았습니다
어찌나 안간힘을 쓰던지
이파리 온몸이 풀먹인 듯 빳빳합니다
저 이슬 한방울이 대체 무엇이길래
제몸 휘는 것도 모자라
온 아침을 팽팽하게 다 휘게 하는 걸까요
나 가만히 짐작해보았습니다. 언제나
날 떠받치고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그의 마음도 그렇겠지요
나 오늘은
저 조용한 이슬속에 들어
둥글고 편안한 그의 등짝에 납작 엎드려
그의 숨막히는 긴장을 가늠해야겠습니다.
물방울 하나가 매달려 있다
신 지 혜
무색의 둥그런 선 안에 갇힌
물의 무게를 나는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작은 살 속에도 피가 흐르고 뼈가 있어
세상으로 닿는 길목, 씨 하나를 심는다
겹겹의 눈빛 사이로 만상이 스러지고
찬바람의 손바닥에 얻어맞아도 해체되지 않는
그 팽팽한 표면장력,
서릿발 치는 하늘 몇 장이 젖은 몸 안으로 들고
둥글게 부풀어오른 정적이 잠시 숨이 멎는다
그 어느 날,
쩍쩍 입 마른 벌판의 살갗 속으로
지분지분 스며들면서 천지간
푸르러지는 여름 江,
마침내 실로폰 소리처럼 튕겨오르는
경쾌한 웃음소리가
꼬깃꼬깃한 시간의 주름살을 팽팽히 다려놓는다
나도 그렇게 작은 물방울 하나로
기스락 끝에 매달려 있다
투명한 씨방 속, 무수한 뿌리를 늘인다
둥그런 씨앗 하나가 시방 탱탱히 영글고 있다
<약력>
▲서울 출생.
▲2000년 미주 <중앙일보>신춘문예 및 2002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제3회 ‘재외동포문학상’ 시부문 대상 수상
▲Famous Poets Society (2001 시인) 선정.
▲「시와 뉴욕」편집위원. 뉴욕중앙일보 컬럼니스트.
▲한.영 대역시집'New York Poetry' (미동부한국문인협회 간)
▲시집,『 밑줄 』(2007, 천년의 시작) 출간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미동부한국문인협회원. 재미시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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