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산](2008년 6기)<시특집>김창영 시-'서탑' 10편
서탑. 1
어제밤 꿈속에서 부르던
할아버지가 그리워
이른 새벽 서탑을 찾는다
탑아래서 탑의 언어에 귀 기울이다
현풍할매곰탕집에서 꼬리곰탕 한그릇 비우고
묘향산 모란봉을 거쳐 한라산에 이른다
태여나 얼굴조차 보지 못한 할아버지가
앞에서 손짓하는듯 뒤에서 따라오는듯
나는 되돌아서서 다시 탑아래에 선다
하늘너머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할아버지 목소리
"너 이놈, 서탑을 가슴에 심거라!"
서탑. 2
연수사(延壽寺)라면 아는 이 별로 없는
이제는 연수사로만 남아있지 않았다.
비내리면 비방울에 목탁소리 스며들고
해뜨면 해볕에 중들의 독경소리 찰랑이던
연수사는 서탑이라 다시 불리우며
햐얀 도라지꽃을 가슴에 피웠다.
스님들 떠난 연수사는
하얀 옷의 혼이 스며
행인들의 가슴속에 탑으로 우뚝 솟았다가
이제는 더는 탑이 아닌
거리로 드러누웠다.
서탑이 드러누운 길거리엔
향불대신
하얀 도라지꽃 웃음이 환하다
서탑. 3
--량세봉장군 동상에 부쳐
잘리운 한 생애가
지나간 력사를 이야기한다.
어지러운 말발굽소리에
빼앗긴 들, 잃어버린 산이
어깨를 달싹이며 흐느낀다.
어둠속에서 서광을 찾아 헤매던
불굴의 넋은 소나무로 청청하다.
멈추어선 시간속에
잘리운 한 생애가
오늘을 깨운다.
서탑. 4
---논밭을 바라보며
궁지에 몰린 무리들이
한사람 두사람 모여온
거친 바람 머물던 이곳
해빛 별빛 가릴것 없이
그네들의 발길 손길 분주했다.
끝간데 보이지 않는 벌판
한자락 한자락 그네들의 소망이 스며
뿌려진 씨앗 움 돋아
마침내 태여난 논밭
바람마저 마음 변했는가
벌판이 더는 황량하지 않다
살길 찾던 그네들의 피땀과
해볕을 한껏 마셔 통통 익은 벼들이
어쩌구려 쌀밥되여 밥상에 오르면
서려오르는 밥김속엔
그네들의 미소 넉넉하고
방안엔 그제날 벌판의 풀내음이 가득하다.
서탑. 5
--새끼골목
옛모습은 아니여도
이름은 남아
새끼골목이네
한 백년전
압록강 건너
새끼꼬며 빛나던 生
새끼골목에 드러누웠네
그렇게 드러누운 한 력사
누군가의 가슴에 고이고이 잉태되다가
때가 되여 다시 깨여나는
옛말 한 컬레
옛모습은 아니여도
지금도 밤이면
한때의 삶이 비벼지던 소리
스르륵 스르륵 들려오네
서탑. 6
어느날 여기 서기까지
나는 외로운 바람이였다.
나비의 몸짓따라
새소리따라
떠나고싶지 않은 나는
정든 고향땅 눈물 뿌리며
하루살이떼보다 못한 하루 하루를
둥둥 떠다녀야 했다.
어느날 여기 서서
해빛따라 누웠다가 일어서고
누웠다가 또 일어서며
뜨는해 지는해사이 이야기들 묵새기다
어둠이 깔리면 몸 감추고
할아버지 부름따라
고향 다녀오는 꿈을 꾼다.
서탑. 7
정오의 폭염에 더위먹은 탑이
몸살을 앓는다
아침해가 얼굴을 내밀기전에는
조깅하는 사람들이 모여
인간사 이렇쿵 저렇쿵 말소리도 들렸는데
이제 좀 지나 해가 서산마루를 넘어가면
그 누가 탑의 정오를
기억이나 할가
탑의 불면이
이 밤을 앓는다.
서탑. 8
--흑구산성*
부얼강을 옆에 끼고
말없이 누워있는 강산너머
천년의 혼이 깃든 흑구산성
할아버지 할아버지적 발자욱따라
나는 왜 험한 숲길 오르는가
예서 태여나 봉천벌판과 자금성을 누비던
누르하치의 위용이 눈앞에 방불한데
산성안 옛터는
수풀로 우거져 누굴 원망하는가
뜻하지 않은 나의 침입에
깨여진 천년 고요가
해살에 몸 비비는 소리
내 귀전에 메아리치는것은 어이하여
누르하치의 말발굽소리뿐인가
산성의 비운은 부얼강되여 오늘로 흐르네.
주: 흑구산성은 료녕성신변현경내에 있는 고구려산성임.
서탑. 9
탑아래서
탑의 누운 모습을 보며
나는 내 몸을 눕힌다.
탑의 누운 몸체와
나의 누운 몸체가 하나로 되는 순간
나는
탑으로 선다.
서탑. 10
지개군의 힘으로 서서
도고한 탑으로
지개군의 혼으로 다시 태여나
영영 무너지지 않는 탑으로
집떠난 지개군의 애환이 스며들어
내 가슴에 소중한 탑으로
<김창영 약력>
1967년 2월 25일 생
료녕성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이사
심양시조선족문학회 회장
《심양조선족》잡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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