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詩壇](韓)서지월 시-'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
서 지 월
내가 생각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과 항시
그늘을 지어 보이면서 형체는 없지만
뒤켠의 생각하지 않는 것까지 불러온다
생각해 보라 나무가 그림자를 만들고
흙이 사람을 만들고 물방울이 모여
구름을 만들 듯, 나는 항시
내가 서 있는 곳이나 앉아 있는 곳에서
떨어져 있는 거리의 존재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은 것까지 생각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보면
남들이 나를 생각하는 그 뒤켠의
엉뚱한 것들까지 불러들임을
나는 전혀 생각지 못하는 것 같으니
<이 시를 말한다>
-가장 서지월시인답지 않은 시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로 선정된
서지월시집 「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2003, 천년의 시작)에 수록 되어 있다.
역사의식이나 전통정서 또는 토속정서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바로 이런 스타일의 시가 한국 현대시라는 명목으로 조명받고 있다.
주지시 계통으로 관념시라고도 하는데 현대적인 기법의 한 예라 할 것이다.
김춘수의 무의미시처럼 어쩌면 국적 없는 시라 할 수도 있다.
탈민족정서 탈서정으로 쓰여지는 이런 사유적인 목소리는 서구화에 걸맞는
모던한 시의 유형인지 모른다.
그러나, 시를 쓰는 사람들은 이런 스타일의 시도 놓치지 않고 숙지해 놓아야 하리라.
언어나 문장구사에 능숙한 표현들을 놓치지 말 일이다.
전통시나 서정시 등에서 표방하는 누구나 다 아는 생각이나 정서를 넘어서서
깊은 사유의 내면의식을 구가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여느 시와는 다른 신선함을 불어넣어준다.
무얼 어떻게 읊고 있는 시인지 보자.
내가 생각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과 항시
그늘을 지어 보이면서 형체는 없지만
뒤켠의 생각하지 않는 것까지 불러온다
인간은 누구나 생각을 가지고 사는데 생각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생각하지 않거나 생각 못하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뒤켠의 생각하지 않는 것'
즉, 잠재되어 있는 것까지 자신의 생각 안으로 끌여들인다는 말이다.
다음을 또 보자.
흙이 사람을 만들고 물방울이 모여
구름을 만들 듯, 나는 항시
내가 서 있는 곳이나 앉아 있는 곳에서
떨어져 있는 거리의 존재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은 것까지 생각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보면
인데, 내 생각밖의 사물이나 다른 사람을 보고 느끼며 생각하는 것이다.
그 생각들이 나대로의 느낌과 판단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길가에서 서성이고 있는가 또는
바람이 불어 낙엽이 일제히 떨어져내리는 것을 보고 느끼는 삶에 대한 무상이라든지 말이다.
절로 느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리라.
문제는 다음의 구절에 있다
남들이 나를 생각하는 그 뒤켠의
엉뚱한 것들까지 불러들임을
나는 전혀 생각지 못하는 것 같으니
라 했는데, 나 자신만 그러한게 아니라 인간은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느낌이나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게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하는 것'까지 상대방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저마다 생각이 다 다르고 상대방은 생각지도 않은데
달리 판단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그렇듯이 상대방도 나에 대해 그러하다는 담론이다.
이렇게 인간내면의 의식을 다루고 있는 시가 현대적인 기법으로 통하는데
지은이는 이런 시 즐겨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다. 우연히 떠올라 쓰여졌다 한다.
남의 시를 많이 탐독한다는 뜻에서 좋은 본보기가 될 줄로 안다.
이 시 <내가 생각하는 것>은 몇년전 한국의 어느 계간 문예지에 발표되었는데
발표된 당시 그 문예지 편집주간인 문학평론가는 그 계간문예지 사상
가장 뛰어난 시를 만났다고 극찬했다 한다. 참고 하시기 바란다.
**「한국 현대시의 이해」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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