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영남일보 문학상으로 당선돼 본격 문단활동을 시작한 이은림 시인이 첫시집 '태양 중독자'(랜덤하우스)를 펴냈다. 등단 10년 만이다.
짧지 않은 세월 시집 하나를 위해 달려온 만큼, 처녀시집이 주는 신선함을 넘어서 차돌처럼 단단하면서도 여성 특유의 풍부한 감수성이 빛을 발하는 시 50편이 담겨 있다. 오래 곰삭여 묵힌 시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어 반갑다.
"태양을 섬기는 중이다 장엄한 빛들을 쏘아대며 돌고 도는 저것에게 환장하는 중이다 한 번도 나를 향한 적 없는 태양에게…데인 상처는 너무 쉽게 흉터가 된다 태양은 악착같이 이글거리고, 너는 또다시 증발되는 중이지만" (표제작 '태양 중독자' 중에서)
그는
인간 시간의 중심이 되는 태양에 주목한다. 지구 위에 존재하는 한 인간은 태양을 벗어날 수 없으며 태양없는 생활 또한 상상할 수 없다. 그렇기에 태양은 유일한 권능의 상징이다. 이 시인은 이런 태양의 존재를 바탕으로 고대사적인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표제작을 비롯해 '태양의 제국' '하오 네시의 대릉원'과 같은 시에서 잉카문명 등 고대문명의 발자취를 끌어와 독자들을 기이한 환각체험에 빠져들게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오래된 기원을 찾아나서고 거기서 현재 자신의 의미를 재발견한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이씨는 부산일보 여성문예상, 국제신문 여성문학상, 신라문학대상 등에서 시가 당선됐으며 현재 대구시인학교 사림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