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남일보·연재/서지월시인의 만주이야기

서지월시인의 '만주이야기', 매주 금요일자 영남일보<위클리포유>에 연재

아미산월 2010. 3. 10. 03:39

 

**'서지월시인의 만주이야기',2010, 3월부터 매주 금요일자, 영남일보<위클리포유>에서 소개!

 [영남일보](기획시리즈)<연재>서지월시인의 만주이야기

 

[서지월 시인의 만추이야기]<1>연재를 시작하며..

  [영남일보] <연재>서지월시인의 '만주이야기'

 

◇ 민족서정시인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으며 한국시인으로는 유일하게 오천년 우리민족 시원의 땅이며 고대국가인 부여 고구려 발해 그리고 일제치하 독립운동 근거지로 우리민족의 웅혼한 기상이 스며있는 만주땅에 대한 많은 역사현장시를 써온 서지월시인이 그곳에 대한 역사뿐만 아니라 중국 조선족의 삶과 문화 대해 해박한 식견으로 2010년 3월부터 영남일보 지면을 통해 매주 금요일「서지월시인의 만주이야기」를 집필 연재한다.

 

◇ 서지월시인은 중국 전국시대 제후 맹상군, 고구려 시조 주몽, 대막리지 연개소문과 같은 생일인 음력 5월 5일 단오날 1955년 대구 달성군 가창에서 태어났으며. 1985년 문예지 『 심상 』및『 한국문학' 신인작품상에 각각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1999년 전업작가 대한민국정부 특별문예창작지원금 수혜시인에 선정되었다. 중국 서안-돈황 실크로드 아시아시인대회, 한국 정지용시인 연길국제세미나, 한중 국제토템세미나, 동아시아환테평양시인대회 참가 등 1999년부터 10년간 9차례에 걸쳐 만주땅 전역을 답사했으며 요녕신문, 흑룡강신문, 길림신문, 연변일보, 및「연변문학」,「압록강」,「장백산」,「아리랑」,「도라지」,「송화강」,연변시총서「시향만리」등에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다. 2002년 중국「장백산문학상」수상시집『 백도라지꽃의 노래(白桔梗花之歌)』(요녕민족출판사 간행)는 한국 최초로 중국에서 간행되었으며 현재, 대구문인협회 외국문학분과위원장. 한중공동 시전문지『두견화(杜鵑花)』한국측 주필.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상임시인으로 있다.

 

◆[사진1]서지월시인 만주기행 전역 노정을 말해주는 동북삼성(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 도표.

 

◇  내가 만주땅에 첫발을 디딘 것은 1999년 여름이었다. 그때 만주대장정이라 해서 한 바퀴 빙 돌았는데 가장 감명 깊었던 곳은 고주몽이 대고구려를 세운 첫 도읍지인 요녕성 환인현 오녀산(홀승골성 서성산) 정상이었다. 그때, '우리는 백두산은 알고 오녀산을 왜 모르고 지냈는가?' 하는 엄청난 회한이 일기도 했다. '백두산을 민족의 영산(靈山)이라 하면 오녀산은 민족의 성산(聖山)'이라고 내가 붙인 말이다. 앞서 밝힌 대로 고구려를 우리 민족의 가장 강성했던 고대국가라고 목소리만 높였지 그게 만주땅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살아왔으니 부끄러운 일이라 할 수 있고 보면 말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어곡전은 천혜의 땅으로 왼쪽으로 두만강을 끼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국사령(國師領), 뒤로는 선구(船口)산성, 앞에는 군산(群山)이 펼쳐져 있어 풍수지리학적으로 좌청룡 우백호 현무 주작이 골고루 갖춰진 지형인데 특히 어곡전 뒤쪽의 국사령은 거북이가 목을 길게 빼들고 두만강의 물을 마시려는 형국이라고 오정묵 소장은 손을 뻗어 가리키며 내게 일러주는 것이었다.

  사이섬 즉, 간도의 개념은 1860년대를 전후하여 두만강 가운데 있는 조그만한 사이섬에서 잉태되었지만 점차로 그 개념이 확대되어 만주를 대신하는 말이 되었으며 어느덧 우리민족의 옛땅인 만주땅 전체를 아우르는 북방영토개념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간도는 백두산을 기점으로 하여 두만강 북쪽 땅을 동간도 즉 간도라 부르며 압록강 북쪽 땅을 서간도라고 부르는데 지금도 두만강상의 섬으로 그 이름을 지키고 있다.

 

◆[사진2]만주땅을 펄럭인 한국 서지월시인 만주기행 깃발.

◆[사진3]두만강변 사이섬(間島)을 찾은 한국 서지월시인과 간도의 내력을 소개하고 있는중국 용정 오정묵 해란강여울소리 사장.

 

  ∵∵∵∵∵

 

[영남일보]<연재>서지월시인의 만주이야기

 

ㄱ.연재를 시작하며
ㄴ.동북삼성에 대하여

 

<1>두만강변 사이섬
<2>개산툰 조선족신앙
<3>일송정 노래비
<4>해란강에 얽힌 사영
<5>노래방 문화
<6>조선족 어투의 특색
<7>조선족 술문화
<8>장백산과 오녀산의 표기
<9>조선족 결혼식
<10>조선족 야유회 풍경
<11>두만강 상류 남경
<12>대조영과 동모산
<13>고주몽과 동단산
<14>중국 4대비경 송화강 운무꽃
<15>경박호와 금와왕
<16>비류수와 오녀산
<17>흑하시와 대흑하도
<18>흑룡강 최상류 막하
<19>흑룡강 최하류 삼걍평원
<20>송화강 뱃놀이
<21>광개토대왕과 대흥안령산맥
<22>중국 조선족 미술교사
<23>흑룡강 유람선 일화
<24>훈춘 조선족 가옥
<25>양수진의 조선족
<26>천년아리랑 공연
<27>조선족신문사의 역할
<28>조선족 문화예술관 정신사
<29>중국조선족의 교육열
<30>압록강과 장군총
<31>생돼지가 도망쳐 달아난 길
<32>조선족의 이중적 삶의 구조
<33>송화강의 피빛 노을
<34>중국 조선족 노래의 의미
<35>윤동주시인과 문익환목사
<36>한중 문화교류의 실태
<37>중국조선족 문단동태
<38>하얼빈 청석거리
<39>6.25사변에 참전했던 조선족문인
<40>중국 동북공정의 현장
<41>위만주국에 대하여
<42>안중근과 훈춘
<43>두만강변 북한의 실상
<44>만주땅 여관의 풍속도
<45>조선족의 찰떡문화
<46>어곡전과 어곡미
<47>중국조선족가정의 실태
<48>삼형제 강
<49>주몽과 유화부인
<50>광개토대왕비의 실체
<51>항아리춤과 도라지춤
<52>조선족 민속예술제
<53>조선족 영웅 김학철옹
<54>조선족과 아리랑
<55>아리랑 깃발의 의미
<56>정율성을 아는가
<57조선어신문과 잡지
<58>붕괴되는 조선족 가장
<59>김문학현상
<61>남영전토템사상의 쟁점
<62>훈춘과 안중근
<63>6.25전쟁과 중국조선족 의용군
<64>조선족과 아리랑
<65>아리랑 깃발의 의미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