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서지월시인의 만주대장정-29.하얼삔을 가다
29.하얼삔을 가다
◇하얼삔 문화의 거리
하얼삔 시가지로 돌아오는데 한춘선생은 말했다. 송화강이 내려다 보이는 「스탈린공원」까지 뻗어있는 이 거리가 하얼삔에서는 유명한 「문화의 거리」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 대구로 말하면 동성로쯤 되는데 중앙대로 길바닥이 모두 청석돌로 짜맞춰져 있으니까 촉감이 다를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은것 같이 느껴졌다.
◀하얼삔 '문화의 거리'에서 박월리 이별리 이채운 한춘 서지월 이상월씨와 함께
또 하나는 어느 도시이건 마찬가지이겠지만 붐비는 인파는 막을 수 없다. 이곳 하얼삔도 저역무렵이 되는 인파는 감당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도로의 네거리 한쪽에서는 무대를 설치해 놓고 밴드음악에 맞추어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래소리가 시가지를 방방 울리고 있었다.
노래자랑대회를 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날마다 저녁이면 하얼삔시의 각 구역, 즉 우리말로 하면 각 동네에서 돌아가며 노래 잘하는 주민들이 스스로 나와서 대중가요쇼를 연다는 것이었다. 특별히 가수들이 출연해 갖는 쇼도 아니며 저녁시간을 통해 노래로서 시민정서를 고취시키는 것이었다. 노래부르기를 굉장히 좋아하는 나도 한참을 서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정말 자유분방하고 신나보였다.
우리와 같이 경제성장을 급속도로 이룩해 문화혜택을 더욱 만끽하고 살기마저 자유롭다는 민주주주의 즉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이렇게 지역민들이 나와 밴드음악에 맞춰 노래하는 것을 한국땅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는데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어 또 깜짝 놀랐다. 사회주의 국가라 해서 가두어져 구속받고 사는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실지로 가서 두 눈으로 보았으느까.
어찌보면 중국의 노래라는 것도 우리의 가요와 엇비슷한 데가 있는것 같이 느껴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꾸 들으면 친숙감이 가더라는 것이다. 하얼삔 주민들이 남녀 할 것 없이 교대로 나와 부르는 노래도 어쩐지 이국정서 같으면서 거기 젖어드는 것 같아 기분이 들뜨기도 했다.
출연자가 바뀔때마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수는 없었지만 사회자가 나와 「진땅에는 자화(장화), 마른땅에는 운도화(운동화)」이런 말인지는 몰라도 재미있게 사회보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느낀 것은 역시 중국땅이란 술과 노래 즉 가무를 빼놓을 수 없는 나라구나 하는 것을 직감했다. 왜 있잖은가. 고조선 이래로 오천년 역사를 이어오며 만주땅을 무대로 우리 민족은 가무를 즐겼다고. 문헌에도 기록되어 전해지지만 술은 예나 지금이나 필수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고 보면 인생이란 신나게 사는 것이라 볼 때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얼삔 시내 우뚝 솟아있는 모택동 동상
TV에서도 보면 만주땅 조선족들의 삶을 보면 그들은 가내에 무슨 좋은 일이 있으면 온 가족 뿐만 아니라 친척들까지 모여 방안에서 두둥실 춤을 추며 아주 자유분방하게 남녀 노소 할 것없이 흥을 돋우는 것 말인데 우리 한국문화권은 그렇지가 않으니 말이다. 장유유서가 구분되며 남여지간도 엄격해 어떻게 그들처럼 섞일수가 있겠는가.
내가 결혼을 해서 신혼여행을 마치고 처가집에 갔었을 대 그날밤 처가댁 친척들이 모두 모여서 신나는 음악 틀어놓고 방안에서 두둥실 춤추며 뛰고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강원도 강릉의 풍속도와 같다고 할까. 북으로 올라갈수록 가무가 더욱 발달된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조선족 식당으로
비가 조금씩 뿌리기 시작했으나 조금의 미동도 없이 상점 앞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은 그대로 계속 술을 마시고 오뎅이나 빵 쥬스를 시켜먹은 사람은 그대로 지나가는 인파는 계속 지나가고 그들의 노래소리는 어두워도 그칠 줄 모르고 더욱 시가지를 축제분위기같이 만들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시가지를 빠져나와 이날 하룻동안의 피로도 가라앉힐 겸 또 저녁도 먹어야 하니까 한춘선생이 이끄는데로 갔다. 조선족이 경영하는 식당이었는데 한국말을 하는 것을 들이니 반가울 수 밖에. 의사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은 언어문화권이 다른 곳에 가보면 절실히 느끼게 되니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우리 일행도 한춘선생이 이끌어 주니 다행이지 이 조선족이라 해야 소수민족으로 듬성듬성 살고 있을 뿐 어딜가나 중국문화권 속이라 어디가서 누구와 의사소통 할 수 있겠는가. 담배 한 갑을 사도 길을 물어야 택시를 잡아타고 감기가 걸려 약을 사러가도 의사소통이 안되니 참으로 무서운 건 국가와 민족이 다르다 보면 오래동안 형성되어온 문화권이 있기 마련이어서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는 힘이드는 것이다.
저녁식사후 숙소인 초대소에 들어왔을 때는 자정가까운 시간이었다. 내일의 일정은 오전에 흑룡강 신문사 초청으로 브리핑을 듣는 것. 그리고 한두군데 관람했다가 점심식사는 흑룡강신문사 문화부팀에서 베풀어 주겠다는 것, 그리고는 바로 또 오후 1시13분발 열차로 길림쪽을 향해 하행을 감행해야 한다는 걸 남겨놓고 피로한 몸을 눕혀 잠가리에 들어야 했다.
◇하얼삔의 이색풍정
◀하얼삔 시가지의 러시아 건물
미인이 많다는 하얼삔, 겨울에는 평균기온이 영하 20도, 강추위땐 40도까지 내려간다는 것. 그리고 겨울이면 세계적인 얼음축제인 「빙설제」 즉 빙등제가 이곳 하얼삔에서 열린다는 것. 그 얼음 2㎝ 두깨로 얼어붙는 송화강의 얼음을 떼어다가 조각작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여기에 나무에 서리꽃이 피는 「눈꽃축제」는 중국 4대 비경 중의 하나로 꼽힌다는 모두 신기하고 신비한 것들로 가득 채워진 느낌이었다.
흑룡강성의 대표적인 신흥도시로 발전을 거듭해 온 하얼삔은 중국과 러시아풍이 한데 어울린 이색적인 정서를 자아내는 도시라는 것도 흥미를 더해주었다. <계속>
|
TOP
Copyright ©2000,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