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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하얼삔 가는길

아미산월 2008. 8. 10. 23:49

■제1편 서지월시인의 만주대장정-26.하얼삔 가는길

 

26.하얼삔 가는길

◇고속버스를 타고

끝까지 수고해 주신 분은 김성우시인이었다.

저녁만찬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도 김성우시인과 리영옥여사는 함께와 이밤이 지나고 내일 아침이면 또 무작정 떠나야 하는 우리 일행과 함께 밤늦게까지 담소를 나누고 돌아갔다.

그리고 이 모든 대장정이 처음 있는 일이기에 아무것도 모르고 가기만 하는 우리들 아닌가. 하얼삔으로 가는 노선과 시간도 김성우시인이 알아 주었기에 내일 아침 8시30분까지 목단강역 고속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다.

늘 그러하듯 기나긴 일정이라 하루 지나면 그 다음날 아침에서 또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하는 어쩌면 숙명적 노선같았다.

이튿날이었다. 우리 일행은 서둘러 목단강 역사 옆에 붙어 있는 고속터미널로 갔다. 오전 9시에 떠나는 하얼삔행 고속버스가 대기해 있었다.

나중 알고보니 우리 일행이 선택을 잘못했던 것이었지만 처음부터 6명 각자가 짐이 많아서 갈수록 등에 지고 손에 드는 짐의 부피가 늘어나서 고통스러운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건 사는게 문제가 아니라 모두 문학하는 이들이라 얻고 받은 책의 부피만 해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벌판에 띄엄띄엄 보이는 몽고족 집들

그래서 열차를 이용할 시 기차역을 들어가고 나오는 그 통로만 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역시 만주땅을 밟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일이지만 각 열차역이라는게 대형이라는 것이다.

우리 한국 실정, 특히 좁은 땅덩어리에서 보면 서울역 동대구역 부산역이라 하면 굉장히 큰 규모의 역이다. 2층까지 올라야 하는 번거러움도 있을 뿐만 아니라 통과하는 길도 만만찮이 길며 한참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대표적인 도시인 서울 부산 대구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리고 대전역이나 구미역 김천역 이런 역은 간이역으로 단층건물로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그 규모마저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 이 만주땅 하면 사실 중국본토에서도 변방에 있는 밀쳐진 땅이며 뭐 그리 경제발전이 이룩되어 복잡한가 안 가보고는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거쳐온 각 역사를 보더라도 대부분이 서울역이나 부산역 동대구역 보다 규모가 크면 컸지 작은 역은 잘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만큼 만주땅이 교통문화가 많이 발달했다기 보다 어디를 가든 워낙 집단이 모이는 자리는 인구가 많으니까 우리가 봐서 별 큰 도시같이 않은 만주땅의 각 도시 역청사들이 한국의 최대의 큰 역사들 보다 맞먹거나 오히려 더 큰게 태반이었다. 특히 하얼삔역이나 흑하역의 경우는 아마 서울역 2배 규모가 넘을 뿐만 아니라 열차를 이용하는 인구가 넘쳐서 이는 우리 한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설이나 추석명절 사람 붐비는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들에게는 늘 일어나는 일이니까 말이다.

이렇다면 베이징이나 중국본토 큰 도시는 어떻겠는가. 아마 상상의 배가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그래서엄두가 안나서 우리 일행은 목단강역의 기차를 이용하는 걸 포기하고 짐 싣기 쉽고 타고 내리기 편한 고속버스를 택했던 것이다. 물론 열차로 이곳 목단강시에서 하얼삔시로 가려면 6시간 정도 걸리며 고속버스는 4시간 남짓 걸리고 장거리에 시달림을 줄이려고 했던 것도 있었다.

요금도 비쌌지만 우리말로 하면 우등고속 같은 것이었다. 첫째 밀폐된 공간속에 가만히 앉아서 가야된다는 꼼짝마라 라는 고통과 한국과는 달리 중간에 있는 승강문 앞에 화장실이 부착되어 있는게 특징이었다.
◀목단강시에서 하얼삔으로 가는 차창밖. 지평선이 안보이는 끝없는 만주벌판

지금부터 대만주벌판이 펼쳐지는구나 싶었는데 과연 그러했다. 끝없이 넓은 벌판, 아니 지평선 끝에 안보인다는 말을 사전에 듣고 왔는데 사실이었다. 수평선 끝이 안보이는 건 한국에서도 동해나 서해 남해 바다에 가서 많이 보아왔는데 「지평선 끝이 안 보인다?」 그 처음에는 의아하게 들었지만 실지였다. 하얼삔 가는 것만 해도 그러한데 하얼삔에서 흑룡강이 있는 흑하시까지 열차로 12시간 소요되는 거기에는 더욱 그러하다니 안보고는 상상으로 실감을 자아내기만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일행은 밀폐된 창밖을 내다보며 과연 만주땅이 이리도 넓구나 도대체 지평선 끝이 안 보인다니 이런 땅이 있었던가 싶었다. 즉 자연 그대로 놓아둔 평화로운 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4시간을 창문도 열 수 없고 꼼짝없이 붙들여 가는 것만 같았으니 하는 수 없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나오느라 아침밥도 못 챙겨먹어 넓적한 보름달같이 구운 누런 밀가루빵과 요쿠르트 같은 음료를 목단강시역 앞에서 샀는데 있잖은가 맛 없는거 전혀 맛이 없어 목에 넘어가질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잘도 먹는가 보다. 소금이라도 조금 넣어 약간의 간이 처져야 하는데 전혀 밋밋한 밀가루 그대로 구웠으니 먹을 수가 없었다. 우리로 말하면 순토종 밀가루빵이 될지 모르겠으나.

◇하얼삔에 발을 딛다

우리 일행이 「1만리 만주대장정」 길에 올라 하얼삔시에 도착한 것은 정확히 말하면 8월24일 오후 1시였다.
◀하얼삔역 앞에서 기념촬영. 정이랑 이상월 이채운 박월리 한춘 서지월 림국현 이별리씨

하얼삔역과 하얼삔 고속버스 터미널이 붙어 있어서 목단강시역에서 4시간에 걸쳐 고속버스를 타고 도착했을 때 하열삔역이라는 건물 위에 높다랗게 붙여 놓은 간판을 만날 수 있어 그 감회는 새로웠다. 왜냐하면 안중근 의사가 원흉 이토오히로부미를 저격한 현장이 하얼삔 역이고 보면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감개무량함도 함께 했으느까 말이다.

내가 이곳 하얼삔까지 온 경로는 다음과 같다. 압록강 하류에 위치한 단동에서 출발하여 고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첫 도읍지인 환인과 광개토대왕까지 집정한 고구려 두번째 도읍지인 집안을 지나 통화, 통화에서 다시 송강하, 송강하에서 장백, 장백에서 다시 돌아나와 이도백하, 이도백하에서 백두산, 백두산에서 연길, 연길에서 용정.화룡을 거쳐 다시 연길에서 도문으로, 도문에서 목단강시로 목단강시에서 하얼삔으로 이렇게 거쳐 오는데는 11일이 걸렸다.

우리 일행이 하얼삔역 앞에 도착했을 때 시인 한춘선생 그리고 림국현 부장께서 미리 마중나와 계셨다. 이곳도 여름 한낮이라 더웠다. 50대 중반은 넘어보이는 두 어르신들이 마중나와 주셔서 나 개인적으로는 몸둘 바를 몰랐다. 곧바로 우리 일행이 간 곳은 「흑룡강 신문사」건물을 끼고 돌아가는 시장통이었다. 그곳에 「흑룡강신문사 초대소」가 있었다. 그러니까 외부인 숙소로 마련된 것이었다. 한국으로 말하면 여관이 되겠는데 이런 초대소라는 이름으로 되어있는 것도 만주땅에 와서 처음 알았다.

시장의 아파트상가 한 켠에 마련된 초대소의 출입구는 협소했으며 1층과 지하에 숙소가 여러개 마련되어 있었는데 우리 일행은 1층의 방 두 개를 쓰기로 했다. 오래된 건물임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옛 정취가 풍기는 골방같은 숙소였다.

방으로 짐을 내려놓고 잠시 앉아 한춘선생과 통성명을 하게 되었는데 한춘선생은 「서지월」이라는 내 이름을 『이름이 좋으네요』 하셨다. 한춘선생의 경우는 본명이 팀국웅인데 필명이 「한춘」이라 하셨다. 풀이해 보면 「한국의 봄」으로 조국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차 있었으며 이는 실향민보다 더한 이국땅에서의 삶의 몸부림이 정신적으로 표출된 필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춘선생은 방에 앉질 못하시고 의자 같은데 의지해 앉으셨다. 이유인 즉 서양식으로 늘 의자에 앉아있는 그곳 생활에 익숙하다 보니 우리와 같이 방바닥에는 다리가 불편해 못 앉으신다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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