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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목단강시의 밤

아미산월 2008. 8. 10. 23:48

■제1편 서지월시인의 만주대장정-25. 목단강시의 밤

 

25. 목단강시의 밤


 

◇김성우시인의 시

 

내가 흑룡강조선민족 출판사의 김성우시인을 만났을때 반가웠던 것은 몇달전에 한국에 다녀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경남 하동포구 일대인 쌍계사도 둘러보고 했다는 말을 듣고 매우 반가웠었다. 남도정서가 물씬 풍기는 그곳에 시간나면 나도 바람 쏘이러 갔었고 인상깊은 경관들이 늘 내마음속에 지워지지 않고 있었으니까.

마침 김성우시인이 내민 육필시 3편이 한국 다녀와서 쓴 시라는데 더욱 애정이 가 여기 소개하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려 한다.

산은 푸르게 깊어 어두워 가고
하늘은 쪽빛을 수줍히며
하나 둘 별자리 구멍을 메운다
새벽이 싱그러운 쌍계사
길은 휘어져 있고
잠자리 날개가 이슬에 노곤한데
이름모를 산새가 포르릉 길에 내려
수수께끼 몇 점을 쫓다가 간다
어릴적 성가시게만 들렸던
할매의 식전제촉같은 옛말이
주얼주얼 물소리로 들려온다
별스레 따스한 후념이다
쌍계사 계곡은 두 줄기 맑은 이야기
속이 빈 내 몰골에
아미타불을 들씌우고
이슬을 눈꼽에 맺혀놓게 하고서는
쌍계사 길을 오르게 한다


- 김성우 시 「지리산 쌍계사로 가는길」 전문.


 

내가 「목단장 목단강/내 아버지 살았을 적 뜨락의/목단꽃 그 꽃이 좋아/아버지는 목단꽃을 가꾸시며/내게 일러주셨지/빛깔이 곱기는/이불에 수놓인 목단꽃 같지/그 목단의 강에/아들이 찾아와서/아버지의 음성을 찾고 있네」(서지월 시 「목단강」전문) 라고 만주땅 가서 목단강을 보며 노래했듯이, 김성우시인은 지리산 쌍계사 가는 아름다운 자연경관 속에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걸어 올라간다.

그러니까 서로 국경을 달리하고 있지만 같은 피의 종족이라는 데는 문학작품 속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천년역사를 거듭해 오며 화두가 되어온 것이 있다면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하는 물음일진데 이는 종교적, 철학적 개념을 들먹일 필요없이 역사속에서 존재해 왔음을 부언 못 하리라. 그것이 둘로 셋으로 넷으로 나누어져 호적(국적)을 달리하고 있기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려는 모성적 몸부림이 일어나는 것이고보면, 하나였던 우리 민족이 외풍에 의하여 민들레꽃씨처럼, 흩어져 뿌리내리게 된게 오늘의 현실로 읽혀지고 있는 것이다.

여하튼, 만주땅 목단강이나 지리산이나 다같은 동족의 산하로 도래 있어왔고 보면 낯설지 않다는 공통점이 그것일 것이다.

나는 김성우시인을 처음 대하여 그날 우리가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차를 타고 함께 걸었던 시간들을 돌이켜 보는 것이다.


 

◇저녁만찬의 정서


 

저녁 만찬자리는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문학팀에서 대거 나와 마련해 주었는데 시.소설.아동문학.평론을 하는 분들로 활기를 띠었다. 김성우시인은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 출판을 담당하고 있으며 부인인 아동문학가 리영옥여사는 이출판사에 함께 근무하며 어린이잡지 「꽃동산」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림영만씨가 주필로 있는 「은하수」는 종합잡지로 이곳 출판사에서 발간되고 있다고 한다.


◀목단강시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 펴내고 있는 '꽃동산' '은하수'잡지

 

김성우시인과 리영옥여사가 특히 환대해 준 이 만찬자리는 조선족불고기식당이었다. 소설가 림승환씨 그리고 젊은 시인 김승용씨 등 여러명이 함께 했는데 특히 시와 평론을 겸해 활동하고 있는 젊은 세대인 김승용씨는 중국 한족을 밀어내고 조선족이 중국어문으로 시를 써서 중국전체에서 가장권위있는 문학상을 「노신문학상」까지 받은 장본인이라고한다. 이또한 조선족의 긍지가 아닐 수 없었다.

술잔을 부딪히는 곤혹감은 어딜가나 마찬가지였다. 이곳 목단강시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잔을 부딪힐 때는 손님을 예우할 때 아래로 갖다대는 것이었다. 그것은 좋은 우리 한국 술문화와 다른 것은 한잔을 가지고 한번 부딪히면 되는데 이곳 만주땅에서 누구든 술잔을 들때마다 부딪혀야 하니 결국은 술을 계속 마셔야 한다는 건데 그게 익숙하지 못한 우리들에게는 곤혹의 배가가 되었던 것이다. 반갑다고 마시자는 잔부딪힘을 어떻게 계속해야 하는지 시간가는줄 몰랐다.

그리고, 나는 겉보기와는 달리 술을 전혀 못마시는게 탈인데 이곳에서는 첨잔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이색적이 었다. 황량하고 추운 나라에 사는 이들과 우리와 다른 점이 술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 한국사회는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는게 상례이며 술 마시는건 2차라 하여 식당에서 나오 술집을 따로 찾아가지 않는가.

물론 식당이나 술집에 바로 가서 술마시는 걸로 식사를 대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은 술을 마실만큼 마셔대고 그후에야 식사를 들어오고 하는 풍습인것 같았다.


◀만찬자리에서 리영옥, 김승용, 김성우, 림승환씨 등 조선족 문인들과 함께.

 

또 하나의 음식문화라 볼 수 있는데 우리의 경우, 식사를 하든 술을 마시던 중요한 메뉴 한둘을 시키면 그 특별메뉴값만 지불하면 되는데 이곳 만주땅에서는 어딜 가나 만주 하나하나의 값을 접시 갯수로 계산되는 것이어서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찬이라 할수 있는 김치나 나물같은 경우도 주문해야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물컵 이외에는 모두 계산되는 것인데 어느 경우가 싼지 비싼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게 서양식 같은지 모르겠다.

역시 이곳에서도 들은 얘긴데 조선족이 그 자리 지키지 못하면 한족세상이 되어버린다는 우려다. 그렇게 큰 도시나 한국으로 자꾸 빠져나가다 보면 민족(조선족)의 흔적마저 없어져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한다. 87만의 목단강시 인구가운데 조선족인구가 3만7000명에 불과한데 제땅을 좌사아대대로 지켜나가지 못한다면 조선족집단은 희석되어버린다는 것이다.

한국식당같이 오랫만에 냉동된 돼지고기 오리고기를 솥뚜껑철판에 구워 상추와 된장으로 싸서 먹는 저녁식사는 이곳에서 느껴보는 친근감같은 느낌이다.

거리로 나왔을 때는 나외에는 취한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술을 마신 상태였다. 이미 어둠은 기약한 것처럼 깔려있었고 여기저기 레온싸인 불빛들이 여느도심과 다름없이 빛나고 있었다. 언제다시 만날지 모르는 그들은 귀가하고 남은건 우리 일행과 김성우 리영옥 두 분이었는데, 호텔까지 찾아와 주었다. 그리고 한참을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보내고 내일 아침 하얼빈으로 떠나야 하는 우리 일행을 다시 마중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목단강시의 밤은 깊어갔던 것이다.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와 대구시인학교가 해마다 공동시집 「목단강」을 펴내기로 김성우시인과 합의해 놓은 상태이기도 해, 민종정서를 잃지않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재인식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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