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서지월시인의 만주대장정-23.목단강시의 풍경
23.목단강시의 풍경
◇목단강 가는 길
인천에서 배를 타고 신의주와 마주 바라보이는 압록강 너머 중국땅 단동에서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 드디어 만난 처음 본 두만강의 혼탁한 물을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돌아섰을때의 허탈한 심정 어디 비길 데가 없었다. 숨가쁘게 빠져나와 다시 도문역으로와 목단강시로 오르는 열차에 몸을 실었을 때는 또 다른 세계로 향해 가는 가뿐한 마음이었다. 만주땅에 와서 타본 열차 가운데 가장 깨끗하고 푹신푹신한 의자가 마음을 더욱 안락하게 했으며 5시간 장거리로 이어지는 창밖풍경은 절경이었다. 산과 나무와 강, 옥수수밭 풍경들이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탁트인 듯한 풍경이 처음 느껴보는 긴 열차여행 그것이었다. 그리고 「목단강」 이라는 처음 들어본 꽃이름의 강이라는 곳에 대한 매력의 기대까지 함께 하면서, 실려가는 만주땅 여행의 운치가 더하면 더할수록 뿌듯한 마음이었다. 거기다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북진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고구려가 영토를 넓혀가듯 진취적인 기상같이 느껴졌다. 북진이 따로 없는 윗쪽으로 윗쪽으로만 솟구친다는것, 어찌보면 그게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기도 했다. 한반도는 둘로 나누어져 서로 물로 뜯는 개싸움 같은데 잃어버린 만주땅은 버려진 자식이 아니라 이미 등기등본까지 남의 손에 넘겨진지 오래 그 길을 가고 있으니 반겨주는 주인은 없어도 반겨주는 손님은 있어 다행히 내가 가고 있으니 오래 몸 뉘일 곳 없어도 잠시잠깐 쉴 곳 있으니 강과 산은 내 마음을 알아 따라오고 따라 오더이다 늘 따라붙는 마음이지만 「우리는 왜 이래야만 되는가 하는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같은 민족비극이 지울 수 없는 상처의 현실로 존재하고 있으니까 착찹한 심정은 지울 길 없었다.
◇흑룡강 조선 민족출판사를 찾아서
목단강시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2시경이었다. 목단강시역에 마중나온 김성우시인과 먼저 간 곳은 김시인이 근무하는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였다. 화려한 도심내 거리에서 좀 들어간 곳에 위치한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는 오래된 건물 4층에 위치해 있었다. 김성우시인은 먼저 1층 문밖에 붙어있는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라고 한글과 한자로 따로 씌어진 세로간판을 가르키며 그 글씨에 대해 말해주었다. 중국에서 최고가는 서예가인 서동(庶同)이라는 분의 글씨라며 의미있는 말을 해 주었다. 거기다가 내게 반가웠던 것은 김성우시인이 대뜸 하는 말이었다. 『서선생님도 달성서씨지요. 중국에서 최고가는 서예가로 정평나 있는 서동이라는 분도 한국의 달성서씨입니다』는 거였다. 계단을 밟으며 4층까지 올라갔을 때 그곳에는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와 그 출판사 산하에 아동문예잡지 「꽃동산」 편집실과 「은하수」 문예잡지 편집실이 함께 하고 있엇다. 역시 문학의 열로 이 땅을 지켜가는 파수꾼들이 거기 있음이 확인되었다고 할까.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는 옛 건물의 옛분위기를 자아내는 조용한 공간으로 그야말로 수수한 차림의 옷과 같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리고 이 출판사가 만주땅인 동북삼성에서는 유일무이하게 「조선민족」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출판사로 민족문화 및 민족정신을 대변해 주는 출판사로 일익을 담당해 온 것이 사람으로 말하자면 장한 느낌이 들었다.
◇목단강을 가다
목단강은 시가지인 「목단강공원」 을 흐르고 있었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팔녀투강상(八女投江像)」으로 항일투쟁을 상징하는 기념비로 세워졌다 한다. 즉, 1938년 10월 하순경의 일로 항일연군 제5군 제1사의 백여명 전사들이 우스훈하서안의 로도구에서 숙영하다가 일위군에게 포위되었는데, 이 위급한 때에 랭운을 비롯한 8명의 여전사들은 포위를 뚫고나가는 부대를 엄호하기 위해 저격임무를 띠고 뒤에 남아서 우스훈하에 뛰어들어 적의 집중사격을 받고 장렬히 희생되었던 것. 그 8녀용사 중에 조선민족 여성이 2명이 포함되어 있는데 바로 그들이 항일련군 제5군 제1사 피복창 창장인 안순복과 전사 리봉선으로 이 땅의 해방과 건설을 위해 소중한 생명을 아낌없이 바친 인물로 추앙받고 있었다. 윌 일행은 「팔녀투강상」에 대한 깁성우시인의 소개를 대충 듣고 목단강으로 계단을 내려가 보았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잔잔자하게 흐르는 강이었다. 어쨌든 「목단강」이라는 매력의 이름은 지울 수가 없었다. 이 강에도 우리 선조들의 숨결이 묻어있었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일찍이 목단강시도 우리 민족과 더불어 숨결을 함께해 온 도시로 이곳에서도 우리의 선조들은 삶의 터전을 마련했으며 또 이곳을 거쳐 동북삼성과 내몽골지역으로 뻗어나갔던 것이다. 바로 수난의 길에 오른 우리민족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벌인 고장중 의 하나로 김좌진장군을 비롯한 항일운동가는 물론 「애수의 소야곡」을 부른 가수 남인수, 「눈물젖은 두만강」을 부른 가수 김정구 등고 활동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목단강시에는 옛 발해국의 유적지로 알려져 있는 용두산성새, 남성자성새가 자리잡고 있으며 현재 조선족 3만명이 살고 있는 이곳은 조선족소학교.중학교.조선민족상점, 조선민족예술관, 조선민족도서관, 조선민족출판사 등이 골고루 있어 말 그대로 「북방의 코리아타운」 을 형성하고 있는 도시로 불리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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