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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서지월시인의 만주대장정-7.집안을 가다

아미산월 2008. 8. 10. 23:21

■제1편 서지월시인의 만주대장정-7.집안을 가다

 

7. 집안을 가다

◇혼강을 따라서

 

우리 일행은 하루에 한 번밖에 없는 낮 12시30분발 집안행 버스시간을 맞추기 위해 새벽부
터 서둘러 '오녀산성'까지 올랐다가 다시 환인시가지 그 중화요리집 앞에 도착한 시간이 낮
12시를 조금 지나고 있었다. 급히 정류장으로 가서 그 시외버스를 타고 가느냐, 아니면 너
무 숨가쁘게 움직였고 온몸에 땀범벅이 되었고 하니, 좀 쉬었다가 숨을 돌려서 택시를 잡아
타고 여유있게 이곳을 떠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 되었다.

마침 나누어 승차하지 않아도 되는 8인승 택시를 박태근씨가 교섭해 와 요금차이도 별로 나
지않고 해서 우리 일행은 점심도 챙겨먹고 좀 있다가 떠나기로 했다. 이곳 역시 마찬가지였
다. 환인조선족중학교 김안영 박태근 리영숙 교사의 환대로 1박2일을 함께 했는데 이제 그
들과 작별하려니까 오래 알고 지낸 사이같이 느껴져 발걸음이 잘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한
번을 만나도 같은 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기에 가능한 것임을 피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다. 나라의 제사에 쓸 생돼지를 잡아 쓰려다가 그 생돼지가 도망쳐
달아나 멈췄다는 집안까지, 2000년전 그 길을 따라 가야 하는 것이다.

출발시각은 정확히 오후1시, 우리일행 6명이 끼어탈 수 있는 조그만 승용차였지만 빨간 색
깔을 띤게 단단해 보였으며 새 차였다. 중국인 운전기사는 20대 나이로 송(宋)씨의 성을 가
진 총각이었는데 나중가서도 이름을 알아놓지 못했던게 여간 아쉬움으로 남지 않았다.


◀환인에서 집안까지 5시간에 걸쳐 달려온 승합차와 중국인 운전기사 송씨와의 기념촬영(왼쪽부터 정이랑,이별리,이채운,서지월,송씨,박월 리,이상월씨)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 젊은 총각이 차를 얼마나 마음대로 부리는지 기분이 나쁘지 않을 정도로 덜컹거렸다. 2000년전 그 생돼지도 집안땅으로 도망쳐가며 비포장도로를 이처럼 덜 컹거리며 뛰어 갔을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말이다.

우리들에게는 만주땅에 와서 두번째로 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단동에서 환인까지 버스로
6시간30분을 달렸으며, 지금은 환인에서 집안으로 가는데 5시간 걸리니까(버스로 가면 6시
간 정도 걸림) 역시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아직 벌판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산등성이라
옥수수밭으로 즐비해 있었으며 산을 돌고 넘기를 여러 번, 다리를 건너고 건너기를 서너번,
그러니까 끝없는 산골짜기 길을 뚫고 뚫으며 가는 먼지나는 흙길,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잊지못할 풍경을 만나게 되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시퍼런 강줄기가 하염없이 우
리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절창이 아니라 절경이었다. 절창은 누가 노래를 잘 부를
때 하는 말이지만 절경이란 빼어난 경치를 두고 내뱉는 말이 아닌가. 우리 한국으로 말하면
강도 있지만 냇물을 끼고 이어진 도로가 드라이브코스로 일품이지만 이곳은 달랐다. 역시
큰 땅에서는 강줄기도 크고 우람하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으며 이는 천연의 비경이
었다. 어느 누가 자연을 훼손한 흔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깊이 들어앉은 시골풍경 그대로였
다.

가다가 보니 목욕을 하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으며, 나룻배가 한 두 척씩 떠있는 풍경은 중
국 고전의 동양화같았다. 도대체 이 강이 무슨 강이기에 이리도 짙푸르고 끝없는 비경을 계
속 연출하고 있는가 싶어 젊은 운전기사 총각에게 지도까지 내보이며 물어본 즉 '혼강'이라
는 거였다. '혼강'이라면 환인시가지를 빙 돌아 흐르는 그 강이 아닌가. 그 강이 여기까지
따라 붙다니! 이렇게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었다. 안 가본 사람은 전혀 느
껴볼 수 없는 가슴 찡함 말이다.

지금은 모두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고 우리보다 먼저 세상에 나와 살았던 선조들도 한줌 흙
이 되어 돌아간게 몇 천년을 거듭했고 보면, 남아있는 것은 오직 강산(江山), 이것뿐인 것을.
그리고 이 땅마저 중국땅이 되어버린지 오래 되었으니까 찾을 길도 막연하고 이렇게 잠시
스쳐지나가 볼 뿐인 것이다.

나는 환인에서 집안으로 가는 이 시퍼런 등줄기의 강이 끝없이 펼쳐져 내 겨드랑이 사이를
끼고 흐르는 것을 잊을 수가 없다. 압록강을 보아도 이처럼 싱싱하게 굽이치는 것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물론 이 강은 나중에 가서 압록강과 합해지는데 그 지류라 한다. 지류치고는 크
고 웅장한 그런 강이었다. 그래서 또 시 한 수가 생겨났으니 여기 소개한다.

'생돼지가 도망쳐 달아난 길을
오늘의 내가 가고 있다
제사상에 쓸 생돼지 한마리의 운명이
고구려 도읍을 바꿔놓게 했던 것!
그 생돼지가 도망쳐 달아난 집안까지의 길을
유리왕이 지나갔고 오늘의 내가
뒤따라 가고 있으니
하늘이여
오늘의 내게는 무엇을 내려주려 하시는지
비류수만 너혼자 갈 수 없으니
함께 가자고 애인처럼 곁에서
팔장을 끼더이다

 

(서지월 시 '환인 가는 길' 전문)

 

나는 '혼강'이 내 앉아있는 오른쪽 차창밖으로 계속 팔짱을 낀듯 따라오기에 애인같이 느껴
져 황홀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서 비포장길을 덜커덩거리며 몇 시간씩을 가는데
따르겠느냐는 말이다. 진정한 애인이란 좀 고생이 되어도 상대방을 위해 동행해 주는 고매
하신 분으로 알고 있기에!

◇집안의 압록강

집안시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였다. 집안시가지를 접어드는 다리를 하나 건너 차는 멈춰
섰다. 역시 도시답게 시끌벅적한 건물과 차량들로 붐볐다.

이때 마침 짐수레를 끄는 당나귀 한마리가 지나갔다. 건너편 시멘트 벽이 서 있었는데 그
벽에 돌로 새겨붙인 '국내성(國內城)'이라는 한자로 표기된 글씨가 눈에 들어와서 가서 살
펴보니 고구려시대의 국내성이 이곳이라는 것이어서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많이 들어왔던 그 국내성에 드디어 발을 딛게 되었으니까 이건 순전히 우리의 역사
였다.

아직 어두워지지는 않았지만 집안땅에서 만나기로 돼 있는 사람을 못만나고 있는 형편이어
서 좀 기다려야 했다. 가이드가 동행해 주는 성격이 전혀 아니기에 다시 또 찾아온 난관이
었다. 겨우 수소문해 집안에 거주하는 조선족 한인이 마중나오기로 되어있었는데, 우리 일행
의 선두주자인 소설가 박월리씨가 전화 걸고 온 말에 의하면 복잡했다. 갑자기 바쁜일이 생
겨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는데, 그 사람 또한 갑자기 집안에 초상이 나서 또 다른 사람에게
인계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 다리를 건넌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집안시 들어오는 길목의 차 수리점과 국 수집(성옥국수집) 그리고 개고기와 냉면집 간판이 이색적이다.

 

다시 어떻게 연락이 닿았는지 세워둔 차를 타고 집안시내로 흘러 들어갔다. '부산식당'이라 는 간판이 붙어있는 그 앞에 조선족 사람이 나왔는데, 바로 우리 일행을 안내하기로 한 사람이었다.

최창길(41세)씨로 록강촌 경영관리직을 맡고 있으며 전주 최씨로 조부때 부산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온 한인 3세라한다

우리 일행은 호텔 숙박을 거부하고 최창길씨 아파트에 묵기로 했다. 이곳은 22만 인구에 조
선족은 2만5000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우리 일행이 묵기로 한 아파트는 10층
정도되는 규모로 서너동이 밀집해 있는데, 이곳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조선족이라
한다. 그러니까 조선족끼리 거주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처럼 깨끗하거나 잘 지은 고급 아
파트는 물론 아니었다. 아파트벽이 채색이 안되어 있을 뿐만아니라 솔직히 말해 지저분하고
침침한 외경이었다. 오래 되어서 그런것만이 아니었다. 미관에 전혀 신경쓰지 않은 것 같았
다. 어디서 내놓았는지 아파트에는 들어가지 않으니까 커다란 장독이 모두 쓸모없이 바깥에
나와 있었다.

이런 풍경을 뒤로 하고 최씨가 이끄는 대로 우리 일행은 조그만 오토바이 인력거에 나누어
타고 압록강으로 나갔다. 중국땅에 와서 단동에 이어 두번째로 만나본 압록강이었다. 땀과
먼지에 젖은 몸을 씻기위해 압록강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모처럼 멱을 감았
다. 그리 깊지는 않았지만 물살은 세었다. 더운 여름날이라 많은 사람들이 나와 멱을 감고
있었다.

바로 이 강저쪽이 북한땅인데, 이곳에서도 너무 대조적이었다. 차차 어둠이 찾아와 깜깜해졌
는데 북한땅에는 마을이 산기슭마다 자리하고 있었으나 희미한 불빛만 새어 나오고 있었다.
간혹 트럭이 불을 밝히며 산길을 지나가는 모습이 역역할 뿐 고요한 풍경 그 자체였다.
이곳 환인땅은 어떤가. 압록강을 앞에두고 번쩍이는 네온 불빛과 가요방 노래소리, 그리고
유람선 부두는 모두 야간 주점으로 시끌벅적했다. 사람이 사는 곳과 그렇지 않음의 차이 같
았다. 개방화 물결이 현실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한참 멱을 감고 있는데 환인시에 처음 도착한 날 저녁 혼강 풀밭에서 바라보이던 눈썹
달이 하룻밤이 지난 사이 이곳 집안의 압록강에까지 따라와서 비추는게 아닌가. 나는 미
칠 일 하나로 한참을 바라보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고 현현히 나타난 초승들은
이제는 유리왕의 넋으로 비추이는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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