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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인연]<연재>(2008.3-4월호)-길림을 가다

아미산월 2008. 8. 10. 12:12

[아름다운인연]<연재>(2008.3-4월호)-길림을 가다

 

서 지 월

 

  길림은 알에서 태어났다는 고주몽이 어머니 유화부인과 함께 22세까지 살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공업도시로 송화강을 가로질러 공장의 검은 굴뚝연기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풍경을 목격하기도 하는데, 2000년 전의 해부루와 금와왕 그리고 대소왕자, 활 잘 소는 주몽이 풍미했던 고대역사의 정취는 물론 간데 없다.

 

  유명한 역사유적으로는 용담산성과 동단산성이 그 옛날을 말하듯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버티어 있는 것 보면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문제는 길림땅의 영토뿐만 아니라  용담산성, 동단산성이 옛 고구려의 역사현장이라는 것이다.

 

  용담산성과 동단산성은 그리 멀리 않는 길림시가지 도심에 자리하고 있는데 용담산성은 일명 고구려산성이라 불리기도 한다. 광개토대왕이 북진하여 쌓은 성이라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인 시조왕 동명성왕의 고향이라는 점에서도 광개토대왕은 이 땅을 회복하려 이곳까지 북진했다고 한다. 용담산성 위에서 내려다 보면 송화강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굽이쳐 흐르고 있으며 손을 뻗치면 닿일 듯한 동단산성의 봉우리가 눈앞에 들어온다.

 

  동단산성은 고주몽의 고향마을이라 할까, 송화강을 옆에 끼고 훤히 트인 벌판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주위에는 옥수수밭 등 잡곡들을 재배하는 밭들과 약용에 쓴다는 노란 원추리꽃을 재배하는 원추리꽃밭이 즐비해 있었으며 기차가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을 가로질러 송화강 철교를 건너 저 남쪽인 연길, 도문 쪽으로 남하하는 모습을 수시로 발견하게 되는데 세월의 무상이 뒷모습 보이며 무작정 떠나가는 저 기차의 행렬같이 느껴졌었다.

 

  주몽은 이곳 동단산 아래에서 성장하여 22세에 어머니 유화부인을 두고 송화강, 즉 엄리대수를 따라 남하했는데 송화강은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길림을 거쳐 하얼빈을 또 돌아 만주땅 최동북단인 삼강구에서 흑룡강과 만나 동해로 흘러드는 만주땅의 긴 젖줄이다.

  주몽은 이곳 길림 송화강에서 백두산 쪽으로 남하다가 비류수를 만나 정착하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환인땅이다. 비류수 즉 지금의 혼강인데 이 강은 환인땅을 돌아 고구려 제2의 수도인 압록강변 집안땅을 거쳐 압록강과 합류해 신의주를 만나 서해로 흘러든다.

 

  나는 나와 함께 한 한국의 시인 윤미전 강가애 신표균 장준향 등과 함께 동단산성에 올랐는데 길림시 조선민족문화예술관 관장이며 <도라지> 문예잡지사 사장인 전경업선생과 함께 올랐다.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것은 잡초들이 우거지고 돌멩이들도 그 자리 멎어 깨어날 줄 모르는 것이었다.

 

  중국이 대대적인 동북공정을 감행해 고구려의 역사를 자신들의 속국으로 삼는 일에 혈안이 되어서 그런지 몇 년만에 오른 동단산성에서 나는 이상한 기미를 느낄 수 있었다. 유적발굴 조사를 하고 있었는데 '입산금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동단산 남쪽 끄트머리에서 정상쪽으로 올랐는데 큰 바위에 예전에는 없었던 ‘동단산’이라는 대형글씨로 붉게 써 새겨놓은 것을 발견했다.

 

  우리나라는 한반도마저 두 쪽으로 나뉘어져 서로 맘대로 오고가지도 못하는 슬프디 슬픈 운명에 처해 있는가 하면, 중국 만주땅도 오래전부터 중국에 넘어갔기로 고구려의 땅이었으나 우리 조상의 문화유적임에도 손 하나 댈 수 없는 이 처절함을 어디에 호소해야 될지, 호소해 봤자 들어주고 알아줄 데 없으니 조상신들은 뭣하시는지 무심하기만 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단지 동단산성 아래에는 길림시인민정부에서 고대 문화유적임을 말해주는 낡은 옛 비석 두 개와 새롭게 각인해 세운 같은 뜻의 비석 두 개를 정교하게 세워 놓았는데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이라는 한자표기도 확인이 되었다. 문제는 고구려 발해가 한민족의 고대국가가 아니라 중국의 고대 속국으로 얼굴이 바꾸어지면 어떻하나 하는 것이었다. 

 

  송화강은 시퍼렇게 흐르고 있었으며 하늘은 맑아 흰구름도 어디론가 흘러가는데 남아있는 산과 벌판은 묵묵부답이었다. 다시 마을길을 들어서는데 마을 집 길가 대문 앞에는 노인들이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풍경이 눈에 띄었는데 거기 짙은 초록 저고리같은 웃옷에 붉은 바지를 압은 중년여인이 오도마니 앉아있었다. 알고 보니 만주족 옷차림을 한 만주족 여인이었는데 이 세상을 초월해 사는 여인이었다.

 

  우리 일행은 의상이 아주 독특하고 눈에 띄어 기념촬영도 하고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눈짓 손짓 몸짓으로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그 얌전하던 여인이 벌떡 일어나 춤을 추어 보이는 것이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저렇게 시대와 세상을 초월해 고독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이곳 동단산 아래에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참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송화강철교를 건너려 하는데 내친 겸 우리 일행은 택시 두 대에 나누어 타고 향한 곳은 송화호였다. 송화강 상류로 유람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람선에 배 띄워놓고 각기 시낭송을 했는데 그나마 머나먼 한국땅에서 이곳 동부여땅까지 와서 시 한 수로 목청을 틔울 수 있다는 것도 복이라면 복이었다. 수천 명이나 되는 어느 한국시인들이 이렇게 이국만리에 와서 해가 서산을 넘어갈 때까지 옛 역사의 회한이 서려있는 강물결과 마파람에 옷자락 날리며 누에가 실을 뽑듯 시 한 수 풀어낼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번 길림행에서는 리옥금이라는, 단아하게 머리를 뒤로 빗어 넘겨 비녀까지 뒷머리채에 꽂은 중년 여류시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나에겐 찡한 감동으로 와 닿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조선어가 되겠지만 한글로 써서 펴낸 시집을 가지고 나와 선물로 주었는데 이게 바로 조선족들의 살아있는 정신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국가는 달라도 오천년 흘러온 동족의 피의 순환을 우리는 문학작품을 통해서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서지월/시인. 만주사랑문화인협의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