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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서지월시인의 만주기행/연재><1>동부여를 가다-길림

아미산월 2008. 2. 25. 06:37

[매일신문]<서지월시인의 만주기행/연재>

⊙⊙⊙⊙⊙

 

국가의 개념을 넘어서서 민족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한 세기를 맞아
세계 각 민족은 자신들의 고유한 얼과 문화를 발전 계승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한국의 경우 세계에게 드물게
자랑스런 5천년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은근과 끈기로 이어온
배달민족이고 보면 자랑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한국인으로서도 초유의 일이며 한국문단에서도 유일무일하게
우리의 5천년 역사가 고스람히 스려있는 만주땅을 개척해 온
시인이 있다. 만주땅 전역을 7차례에 걸쳐 답사했을 뿐만 아니라
현장 곳곳의 문화 역사 풍정 등을 소상이 기록해 온
대구의 민족서정시인인 서지월시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만주땅 곳곳의 조선민족들과도 교류하며 그곳 언론 신문 잡지를 통해서도
많은 글을 발표해 와 명실공히 중국 조선족 문단에서는 가장 널리
알려진 한국시인으로 자리매김 되기도 했다.
서지월시인 특유의 서정적 감성과 치밀한 사유가 담긴
만주기행 연재를 본지에서 시작한다

특히, 체험현장 학습이 붐을 일으키고 있는 이때에
우리민족 역사의 생생한 현장을 익히며 또한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며
보전해 나가야 할 사명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민족성이며
미래를 향해 줄기와 잎을 무성히 틔우는 뿌리정신일 것이다

 

=편집자 주=

 

<1>동부여를 가다-길림
<2>주몽의 나라를 가다-환인
<3>광개토대왕의 나라를 가다-집안
<4>대조영의 나라를 가다-돈화
<5>금와왕의 나라를 가다-목단강시 경박호
<6>북간도를 가다-연길,용정
<7>눈물 젖은 두만강을 가다-도문 훈춘
<8>안중근의사 저격현장을 가다-하얼빈
<9>만주제국을 가다-장춘
<10>청나라 수도를 가다-심양
<11>흑룡강 최상류(대흥안령산맥)를 가다-막하,북극촌
<12>삼강평원을 가다-동강시, 삼강구

 

 

 <약력>

• 1955년, 고주몽과 같은 생일인 음력 5월 5일 단오날 대구 달성 출생.
• 1985년 10월, 제2회 '전국교원학예술상' 문예부문에 시「 꽃잎이여 」로 大賞에 당선, 문교부장관상 수상.
• 1985년『심상』 신인상 시 당선.
• 1986년『아동문예』 신인문학상 동시 당선.
• 1985년『한국문학』신인작품상 수상.
• 1999년, 전업작가 정부특별문예창작지원금 수혜시인에 선정됨.
• 1993년 제3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 2002년, 중국 '장백산문학상(長白山文學賞)' 수상.
•시집으로 『 강물과 빨랫줄』,『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 』,『백도라지꽃의 노래(白桔梗花之歌) 』,『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 』등 있음.
• 2006년, 한국전원생활운동본부 주관, 시비(詩碑)「신 귀거래사」가 영천 보현산자연수련원에 세워짐.
• 2007년 대구광역시 달성군 주관, 한국시인협회  MBC  KBS 등 후원으로 시비(詩碑)「비슬산 참꽃」이 대구광역시 달성군 비슬산 자연휴양림에 세워짐.
• 현재, 한중공동 시전문지『해란강』한국측 편집 주필. 대구시인학교 지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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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동부여를 가다-길림/서지월(시인)

 

◆중국 길림시 동단산에 오른 한국 서지월시인, 뒤로는 송화강과 길림 시가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만주대륙을 중국 행정구역상 동북삼성이라 일컫는다.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인데 동북쪽에 위치해 있는 행정구역이라는 것이다. 압록강 윗쪽이 요녕성이라면 두만강 윗쪽의 만주대륙 중간부분이 길림성이며, 흑룡강성은 만주대륙 맨 윗쪽에 해당되는데 러시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흑룡강 아랫부분에 해당한다. 길림성의 성도는 장춘인데 길림은 장춘에서 좀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흘러가는 세 강이 있는데 요녕성과 북한땅이 경계를 이루며 서해로 흘러드는 강이 압록강이며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도문 훈춘을 거쳐 북태평양으로 흘러가는 강이 두만강이다. 역시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만주대륙 한복판을 관통하며 길림을 거쳐 하얼빈, 동강시 삼강구에서 흑룡강 우수리강과 합류하는데 이 강이 송화강으로 오천년 우리 민족 역사 시원의 땅인 만주대륙을 변합없이 적시며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송화강을 끼고 이름난 곳이 길림의 송화강과 하얼빈의 송화강이다. 길림의 송화강은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영하 20~30도에도 얼지 않으니 강물이 흘러가며 피워내는 안개로 인해 송화강변 뿐만 아니라 길림시가지 전역의 가로수가 햇빛 쨍쨍한 대낮에도 눈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절경을 이루는데 무송(霧淞)이라 부른다. 일종의 성에꽃이다.

 

흑룡강성의 수도 하얼빈의 송화강은 영하 20~30도가 되는 겨울이면 1~2미터 두께로 얼어붙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서 하얼빈에서는 해마다 겨울이면 세계빙등제를 대대적으로 개최하는데 1미터가 넘는 두께의 송화강 얼음을 떼내어 거대한 얼음조각 형상들을 만들어  형광불을 밝히는 빙등제를 개최하고 있다. 듣기로는 길림의 송화강은 물살이 세어 얼지 않는다고 한다. 어쨌든 길림 송화강의 아름다운 무송(霧淞) 경치와 하얼빈의 환상적인 빙등축제는 자연이 연출해낸 중국 4대 비경에 속한다고 한다.

 

바로, 길림의 송화강변에 동단산이 솟아 있다. 그 아래 판자촌 같은 집들이 조그만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 마을 한가운데 종일 굉음을 지르며 열차가 지나가는 행렬을 심심하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세월의 덧없음을 느끼게 한다. 2천년 전 알에서 태어났다는 고주몽이 22세까지 어머니 유화부인과 살았던 동부여땅으로 이곳 동단산 자락이 고주몽의 고향마을인 셈이다.

 

생각해 보라, 활을 남달리 잘 쏘았다는 주몽이 어머니 슬하에서 아버지 없는 쓸쓸함 달래며 이붓아버지인 금와왕 아래 외롭게 성장하면서 저 흘러가는 송화강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 2천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고주몽과 같은 5월 5일 단오날 태어난 한국의 시인인 필자가 수만리 만주대장정 멀다 않고 찾아와 굽이쳐 흘러가는 송화강을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고주몽은 임인년생 호랑이띠이고 나는 을미년생 양띠인데 세월의 간격은 2천년 남짓된다.

 

이곳 동단산에서 바라보면 북쪽에 치솟아 있는 산성이 눈앞에 다가보이는데 그 유명한 용담산성이다.  용담산산성은 중국명칭이며 일명 고구려산성이라 부르기도 하며 고구려 당시 명칭으로는 부여성이라 한다. 광개토대왕이 고구려 시조왕이며 광개토대왕에게는 18대 할아버지가 되는 주몽왕(추모왕)이 어린시절을 보낸 18대 할아버지의 고향땅을 회복하러 이곳까지 북진해 쌓은 성이라 한다.

 

용담산성 산꼭대기에서 내려다 보면 성안은 물론 송화강과 길림시가 한 눈에 보이고 동단산도 바로 내려다 보인다.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이 고구려 제2의 도읍인 압록강변 집안땅에서 여기까지 북진정벌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산성에 대해서는 그 기록을 자세히 적어놓은 입간판이 눈에 띄게 세워놓았었다. 즉, 고구려 왕국 제19대왕 호태왕때의 산성으로 산성안에 군사들의 식량과 말에게 먹이는 물 등을 보관하는 곳까지를 상세히 기술해 놓고 있는 군사요새임을 소개하고 있다. 고구려왕국이라 표기하면서 공원전(公元前) 37년~공원(公元)668년까지라는 고구려 건국과 멸망연도 사직까지 적어놓았다. 그러니까 확실한 건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역사현장임엔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용담산성 입구에  2004년 1월‘고구려 사람은 결코 조선인이 아니다’(高句麗人幷非朝鮮人)라는 제목의 문화재 안내판을 세우고 '고구려는 중국 고대 국가인 상나라(은나라)에서 기원한, 한족이 세운 국가'라고 써서 웃지 못할 논란을 불러일켰는데 그 안내판은 뒤에 철거되었다 한다. 고구려 역사 전반과 고구려 산성 건축의 특징 등을 적은 그 안내판들 역시 지금은 모두 철거된 상태라 한다.

 

근대사에서 보면, 북한의 김일성이 1925년 길림으로 와 학교를 다니던 소년이였다.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3.1운동이 일어나던 때 만주로 망명해 임강 팔도구 등 압록강 건너편에 살았는데 김형직은 의원노릇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다가 1926년 6월에 급사하고 김형직의 친구 오동진이 친구의 아들 김성주(김일성)를 만주 민족주의 단체인 정의부산하인 화성의숙에 입학시켰으나 김성주는 다시 길림의 육문중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이렇게 김일성은 정확하게 1927년 1월부터 1930년 5월까지 이곳 길림에서 머물렀는데 15세에서 18세까지가 된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것이다.

 

지금도 이곳 길림의 육문중학교 새 건물 안쪽에 구 교사가 보존되어 있는데 김일성이 공부했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우리에게는 씻을 수 없는 남북분단이라는 역사적 상처를 민족의 가슴에 남겨준 장본인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역사는 앞으로만 앞으로만 치닫는 속성을 지닌 뱃머리 같아 지금은 잃어버린 땅이 되었지만 주몽이 22세가 되던 해 대소왕자의 위협을 이겨내지 못하여 어머니 유화부인을 홀로 남겨두고 이곳 송화강을 거슬러 남하하여 비류수(지금의 혼강)에 이르러 도읍을 정한 곳이 환인땅 오녀산으로 고구려 제1 도읍을 정한 곳이다. <계속>

 

**다음은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2>주몽의 나라를 가다-환인 편이 소개됩니다.

 

 

 

 

◆중국 4대 자연비경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길림 송화강 겨울 무송(霧淞)의 풍경.나뭇가지 마다 눈이 쌓인 것처럼 장관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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