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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왕사보]<서지월시인과 함께 하는 시-31>윤미전 시-'수선화'

아미산월 2008. 2. 19. 23:19

[법왕사보](2008년 3월호)

 

<서지월시인과 함께 하는 시-31>윤미전 시-'수선화'

 

수선화

 

 

윤 미 전

 

연초록 알 속에 엎드린 조그만 그녀,
언제 부화할까 가늠하고 있을 때
그 속내 궁금해진 햇빛이 콕콕 쪼아대자
엉겁결에 노랑나비 날개같은 꽃잎 활짝 펼쳤다
순간, 느긋하게 꽃봉오리 품고 있던 허공이
놀라 주춤 물러선다

 

아득한 줄기 위로 꽃 한 송이 살림 내어놓고
가 볼 수 없는 뿌리는 마음이 안 놓였는지
곧은 잎들 자꾸 밀어올린다
여백 지우며 모여든 그들은
그녀 한 생의 싱그러운 배경이 된다

 

여린 꽃잎에 내려앉은 하늘이 너무 무거웠던가
팽팽한 고요 튕겨내며 휘청, 무너져 내린다
교만인 듯 기품인 듯 꼿꼿히 설 줄밖에
모르던 작은 그녀,
마지막 기울어지는 자태마저도 꼿꼿하다
새봄 오면 버려진 듯 흙 속을 꿈틀대는
저 뿌리 박차고 굳센 그녀 다시 일어설 것이다

 

-이 시는 작곡가 김정길 계명대 교수에 의해 가곡으로 작곡 되어 널리 불리워지고 있음.

**윤미전 : 시인. 대구한의대 교수.


<시해설>

 

풍요로운 배경 속의 자아

 

 

서 지 월

 

-봄이 오고 있다. 사람은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 하나 꽃은 그 뿌리를 잘 갈무리 해 봄이 오면 어김없이 싹을 띄우고 꽃을 피운다. 이런게 자연의 이치라 하는지 섭리라 하는지,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이다.

한국 최고의 시인으로 칭송받고 있는 미당 서정주시인은 일찌기 <풀리는 한강 가에서>라는 시에서 '강물이 풀리다니 / 강물이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 강물은 또 풀리는가' 라 읊었는데 어김없는 자연의 섭리에 대한 인간의 삶을 한번쯤 되돌아 보게 하는 의미심장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저 봄이 오는 것이러니 하기 쉽지만 그러나 만물이 뜻이 있어 저나름 대로 형상을 갖추고 있듯이 봄은 새 생명의 탄생을 뜻하기도 하지만 거부할래야 거부할 수 없는 피의 순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꽃집에 가면 봄을 알리는 가장 신선한 자태로 뽐내고 있는 노란 수선화를 만날 수 있는데 윤미전시인은 <수선화>라는 시에서 놀라운 상상력을 불러와 '느긋하게 꽃봉오리 품고 있던 허공이 / 놀라 주춤 물러선다'라고 표현했다.

시의 주체가 되는 이런 서정적 감성에 머무르지 않고 '마지막 기울어지는 자태마저도 꼿꼿하다 / 새봄 오면 버려진 듯 흙 속을 꿈틀대는 / 저 뿌리 박차고 굳센 그녀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굳굳한 여성에 비유해 존재론적으로 접근하고 있는게 일품이다. '아득한 줄기 위로 꽃 한 송이 살림 내어놓'은 '가 볼 수 없는 뿌리의  마음'이라든지  '여린 꽃잎에 내려앉은 하늘이 너무 무거웠던가 / 팽팽한 고요 튕겨내며 휘청, 무너져 내린다'는 의미, 또는 '교만인 듯 기품인 듯 꼿꼿히 설 줄밖에 모르던' 비록 '작은 그녀'로 수선화라는 한 생명에 불과하나 자신의 존재를 때가 되어 당당히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바로, 의미있는 삶이란 자신을 잘 갈고닦고 가꾸어 나가는 것이라면 이 보다 더 빛나고 값진 삶이 어디 있으리요.  수선화가 당당하고 의엿하게 꽃을 피우는 것은 남의 힘을 빌리는 것이 아니다. 뿌리가 튼튼하고 그 뿌리가 줄기와 잎을 형성해줌으로써 더욱 기품있는 것은 당연하다. 허공 즉, 하늘이 놀라 주춤 물러선다는 표현도 사실은 하늘이 놀라 주춤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한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이런 조화 속에서 하나의 생명은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되는데 우리 인간들도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뒷걸음질 치거나 게으르게 누워서 발가락만 까딱까딱 하면서 천하를 꿈꾸거나 너무 이해득실을 따져서 움직이며 안주하려 들면  어느 하늘이  그만큼한 공간을 제공해 주겠는가 말이다.

말로만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하지 말고 세상의 그릇됨은 비판하되 남의 일에 소곤소곤대며 말의 씨를 만드는 그런 행위는 삼가야 하리라. 자신의 뿌리를 잘 다독이면서 튼튼한 줄기와 잎을 달면서 풍요로운 배경 속의 자아가 있어야 할 줄로 안다. (서지월시인/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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