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창]조오현 시-'비슬산 가는 길'
비슬산 가는 길
조 오 현
비슬산 굽이 길을
스님 돌아 가는 걸까
나무들 세월 벗고
구름 비껴 섰는 골을
푸드득 하늘 가르며
까투리가 나는 걸까.
거문고 줄 아니어도
밟고 가면 운(韻) 들릴까
끊일 듯 이어진 길
이어질 듯 끊인 연(緣)을
싸락눈 매운 향기가
옷자락에 지는 걸까.
절은 또 먹물 입고
눈을 감고 앉았을까
만(萬)첩첩 두루 정적(寂寞)
비워 둬도 좋을 것을
지금쯤 멧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는 걸까.
*조오현: 승려시인.백담사 <만해마을> 회주.
<해설>
- 오현스님께서 언제 비슬산 언저리를 다녀갔을까. 스님이란 정처없는 떠돌이요 발길 머무는 곳이 안식처라 하지만, 그냥 지나친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보라, 지금 스님은 고행의 인간세상인 '비슬산 굽이 길'을 돌아 가고 있으며, '나무들 세월 벗고 구름 비껴 섰는' 골짜기로 '푸드득 하늘 가르며 / 까투리'가 날고 있는 인간세상이다. 이런 인간세상의 삶의 길은 '끊일 듯 이어진 길'이며 '이어질 듯 끊인 연(緣)'의 길인 것이다. 즉 인연없는 것이 없듯이 이 길을 가는 인생노정도 인연에 의한 것이다. 거기다가 '거문고 줄 아니어도 / 밟고 가면 운(韻) 들릴까'라고 했는데, 이는 살아있음의 증거, 바로 그 존재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고행의 인간세상의 '비슬산 굽이'진 산길인데 여기에 추운 겨울의 '싸락눈'까지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그 정황을 '싸락눈 매운 향기가 / 옷자락에'진다고 표현했는데 부질없는 목숨의 싸락눈은 옷자락에 닿자 이내 녹아버리는 것이다. 인간의 부질없는 집착이 '싸락눈'에 비유했다고 보면 옳을 것이다.
지금 스님께서 '비슬산 굽이 진' 길을 따라 산속으로 가고 있음을 알수 있는 구절이 나오는데 '절은 또 먹물 입고/ 눈을 감고 앉았을까'라는 유추적인 심상으로 읊은 구절이다. 이는 무얼 의미하는가. 번뇌의 인간세상의 험한 산길을 지나 먹기와 절간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스님께서 절간을 찾아가는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시에서는 스님의 행보를 읊었다기 보다 스님도 한 인간이기에 속세의 인간이 고행의 길을 넘어선 세계에로의 접입가경의 경지 그것이다.
또한 산길을 가는데 만난 것은 그냥 흰 눈발이 아니라 싸락눈인데 고요히 먹물 입고 앉았을 절간에 당도할 즈음엔 이미 인간세상 번뇌의 상징인 싸락눈도 그치고 딴 세상인 듯 정적(寂寞)이 감돈다. 그게 '비워 둬도 좋을 것'으로 읋고 있는데, 마지막 절창을 이루는 구절이 바로 '멧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는' 것이다. '멧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는' 것이란 가진 것 모두 내려놓는 무심무욕의 행위를 멧새에 비유했다고 보면 옳을 것이다.
비슬산 어느 절간까지 당도하기까지의 과정의 그 도중의 심사를 풀어내고 있는 방법으로 이 시의 모티브를 잡은 것이다. 이승의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육신의 산길이며 정신세계의 몰입인 먹기와 절간의 세계이며 멧새 한 마리 깃털 떨구고 날아가는 하늘, 즉 극락정토 다름아닌 것이다. 아직 거기까지 당도하지 못한 인간으로서의 이승의 삶을 자연풍정의 세계와 맞물리게 해 읊은 것이다. (서지월시인/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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