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인학교 강의시](2010.4.29)서지월 문학강연 시선
[국제펜클럽한국본부대구지역위원회]서지월시인 문학강연
ㅡ'문학이 참 사람을 만든다'
▷날짜" 4월 27일(화요일) 오후 2시 ▷장소: 그루출판사 ▷강연: 서지월(시인)

◇ 민족서정시를 줄곧 써 오신 시인 서지월선생님의 「민족정서와 전통서정의 시세계」에 대한 문학강연이 열렸다. 서지월시인은 이 시대의 마지막 서정시인으로 불리우며 모국어로 쓰는지는 것이 문학작품인 만큼 한국 현대시가 민족의 숨결과 전통문화를 계승 동반할 때 그 민족의 영원한 씨줄과 날줄이 되는 혼과 얼로 거듭난다고 피력했다. 서지월시인의 시 <비는 와 오노?>,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자>, <바지랑대 옆에서>, <강물과 빨랫줄>, <빗방울>, <개밥그릇의 노래>
<비류수에 와서>, <서성산 홀승골승의 노래> 등이 소개되었다.
사단법인 국제펜클럽한국본부대구지역위원회 INTERNATIONAL P.E.N THE DAEGU COMMITTEE, KOREA
[국제팬대구지회](2010.4.27)<강연자료 & 낭송시자료>
서지월 시-'비가 와 오노?' 외
비가 와 오노?
서 지 월
비가 오네 와 오노? 누가 불렀나? 부른 사람 없는데 꽃망울에 눈물 맺혔네
새가 우네 와 우노? 누가 그를 슬프게 했나? 나는 모르겠는데 새가 자꾸 우네
밤이 깊네 와 깊노? 누가 꾸민 수작인가? 그럴 수도 있지 밤이 돌아보지 않고 깊어지네
ㅡ[시와 정신](2010. 봄호)에서.
빗방울
서 지 월
유리창에 빗방울 흘러내릴 때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하고 있었는지
유리창에 빗방울이 하나 둘도 아니고 여럿이 모여 건너다 보이는 풀밭이나 강이 얼룩져 보이던 때
하나 둘도 아닌 여러 빗방울이 안을 들여다 보며 들어오려고 안간힘 쓰던 때
그러다 힘없이 무너져내린 그 낱낱의 몸들 당신이 부재중이던 그때
江물과 빨랫줄
서 지 월
오늘도 어머니는 강물을 훔쳐 와 한 자락씩 줄에 너신다. 누런 호박오랭이 썰어 말리듯이
햇빛은 항시 정면으로 부딪쳐 오는 것이지만 얼굴 없는 바람은 부뚜막 위에서 불고 장독대를 넘어와 어머니의 허이여신 머리칼 위에도 분다.
하늘과 땅 그 크낙한 화해를 위해 세상의 이쪽과 저쪽의 분별(分別)을 위해 두 귀 바지랑대는 생명의 줄을 튼튼히 받치고 있다.
천년풍우 그 어느날에도 우리의 제기(祭器), 제기(祭器) 같은 것.
먼 산 그리메 숱한 메밀밭 위으로 낮달이 조을고 젖은 빨래의 그 휴식(休息)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파란 하늘은 아득히 멀고 나는 왠지 눈물이 핑 돈다.
바지랑대 옆에서
서 지 월
천년이란 세월을 바람으로 이고 선 굳굳한 나무가 있습니다
죽어 죽지 않고 나무꾼의 등짐같은 뜨거운 땀의 범벅이 있습니다
철없는 아이들이 민들레 꽃밭에서 해종일 뛰놀듯 파아란 도화지 한 장 같은 하늘 위 날으던 정령들이 여기 앉아 쉬곤 합니다
이승과 저승 두 갈림길의 끝이랴 싶은 두 가지 사이로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는 하늘을 받치고 있습니다
멸망할 듯 멸망하지 않는 사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상의 빨래들이 무수히 그 줄 위에 얹혔다 사라집니다
해와 달 비 구름 별들도 그 줄을 넘나듭니다 줄이 늘어지는 무게보다 당겨지는 침묵이 생명을 지탱합니다
아무래도 바지랑대 보다 높은 우리의 천국은 없을 겁니다 습기 묻은 바람이 한두 차례 지나가고 나면 온몸을 도사리고 빨래들도 걷힙니다
아득히 먼 하늘 누군가가 부르는 듯한 목청이 남새밭 너머 푸른 산이마에서 들릴 때면 어느새 산그늘이 내려와 이불처럼 우리의 일상을 덮습니다
별들도 내려와 뒷산 숲에서 지상의 아름다운 꿈을 깹니다 천년이란 세월을 흙먼지 풀풀 날리는 마당을 딛고 선 굳굳한 나무가 여기 있습니다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자
서 지 월
무거운 것은 땅으로 내려앉고 가벼운 것들 둥둥 떠서 간다 구름과 함께 간다 등뒤 엎힌 아기의 머리 쓰다듬어주던 둥근 해, 자신의 모습 닮아 신기한지 광주리 내려다 보며 싱글벙글 어쩔 줄 모른다 쉬임없이 걸어가는 저 아주머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광주리에 얹혀서 가고 있는 저것들은 좋은 시절 맞은 듯 낄낄대며 서로의 이마 쥐어박는데 살 속 비집고 나온 벌레 한 마리 광주리 가장자리에서 섬찟 동작 멈춘다 자신의 무게가 무거웠던 탓일까 아주머니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방울들 길위로 뛰어내린다 밀려난 길은 멍하니 아주머니의 뒷모습 바라보기만 하는데 아기가 대신 손 흔들어 준다
개밥그릇의 노래
서 지 월
나는 철저히, 철저히 유배당한 지상에서의 짝 잃은 고무신 누가 뭐래도 웃지 않고 울지 않는다 한낮의 해와 부엉이 우는 밤의 골짜기 둥근 달이 내 움푹 패인 겨드랑이 훑고 가도 퍼담을 수 있는 건 주인이 내어다 주는 음식찌꺼기 그것만으로도 흡족한 나는 이내 속이 비어져 늘 여유 있는 모습으로 당당히 낮과 밤의 시간을 함께 한다. 너희들의 식사시간을 은근히 습관처럼 기다리지만 너희들이 수저 놓고 자리 뜰 때 분주한 건 나 아무렇게나 마당가에 놓여져 나의 여윈 살과 뼈와 살까지 핥는 강아지들을 보라 얼마나 눈물겨운 만찬인가 철저히 유배 온 이 지상에서 때론 빗물도 고여 마당 가득 채워 주지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손길이라는 자부심에 넘쳐 흐르며 꽃송아리를 헤는 아이마냥 해와 달을 셈하며 살아간다
서성산 홀승골성의 노래
서 지 월
눈 덮인 만주벌판 환인땅에 우뚝 솟은 홀승골성에 올라 나는 보았다 머리 위로는 새벽별 얹고 그 이마의 눈썹 언저리쯤 까마귀 몇 마리 날리며 2천년 침묵의 잠에서 깨어나 어둠 밀어내고 있는 것을
발 아래 비류수 짙푸른 살결은 푸들거리고 있었는데 아아, 해모수가 오룡거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처음 당도했다는 홀승골성 그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山頂, 그 아들 주몽이 다시 올라 대고구려를 열어
2천년 지난 후 새해 첫날 신새벽 나 역시 홀승골성에 올라 만주벌판 휘저으며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았느니 해모수도 가고 주몽도 가고 없는 白衣의 눈 덮인 산정에서 새로 열리는 대고구려의 시대를 예감하며 어디선가 포대기속 아기 울음소리 쩌렁쩌렁 들려오고 있었네
**홀승골 성은 만주땅 환인현 시가지에 우뚝 솟은 절벽의 웅장한 산으로지금의 오녀산성이라 불리운다.일찍이 해모수가 하늘에서 오룡거를 타고내려와 첫발을 디뎠으며, 고주몽이 이 산정에 도읍을 정하고 고구려를 세웠다.
비류수에 와서
서 지 월
주몽이시여 그대 꿈결의 초승달 하나 그대 2천년 꿈의 머리맡 돌아 비춰오시니 어찌하오리까 벌써, 다 먹어버린 밥그릇처럼 이 땅은 남의 것이 되었으며 이 강 역시 우리의 말(馬)이 먹을 수 없는 물이 되었음을 아시오니까 2천년 잠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으시매 누가 이를 증명하며 부싯돌에 칼을 갈아 저 천공에 번쩍이오리까 주몽이시여, 머리부분 빼앗기고 허리마저 동강나 그 동강난 두 다리 이끌고 천만리 길 마다하지 않고 북으로 북으로 왔건만 조금만 쉬어가라며 이 땅의 새 주인은 비자만 한 장 달랑 손에 쥐어 주더이다 내일이면 떠나야 하니 흐르는 눈물 닦을만한 손수건도 없이 저 달이 차오르는 것마저 몇날 며칠 지켜보지 못한 채 어디로 저를 가라 하는지 아아, 주몽이시여, 어찌하오리까!
**비류수 : 광개토대왕비에 '옛날 시조 추모왕 주몽께서…비류곡 홀본 서쪽에서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세웠다' 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 비류곡이 곧 압록강의 지류인 혼강이다.
낙타풀의 노래
서 지 월
나는 너를 낙타풀이라 부른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 비 한 방울 입맞춤 하지 않는 수천년 세월동안 거기 뼈를 묻은 사람들 걸어서 五天竺國까지 간 스님들 헤진 발바닥 소리까지 귀 없는 귀로 듣고 가시 돋힌 네 몸뚱아리 사막의 낙타는 피 흘리면서까지 너를 뜯어먹으며 비단을 실어 날랐지 나는 네가 남아서 지키고 있는 그 길을 실크로드라 부른다 오늘의 내가 그 길따라 비단금침의 꿈 버리지 못하고 벋어가는 것은 낙타풀 네가 있기 때문이다
내 사랑
서 지 월
길을 가다가도 문득 하늘을 보다가도 문득
지금은 안 보이지만 생각나는 사람
이 하늘 아래 꽃잎 접고 우두커니 서 있는 꽃나무처럼
내 생각의 나뭇가지는 서(西)으로 뻗어 해지는 산 능선쯤에 와 있지만
밥을 먹다가도 문득 다른 길로 가다가도 문득
안 보면 그뿐이지만 생각나는 사람
**서울특별시「시가 흐르는 서울」선정시.
주소 : (우)711-862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78,「두문시산방」내, 徐芝月 시인 ¤ 전화 : (053) 767-5526 휴대폰 011-505-0095 ¤ 이메일: poemmoon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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