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월 詩人의 詩 다섯편 감상하세요| ◈글벗 詩문학 사랑방
<1>-저 흰 꽃잎/서지월-
저 흰 꽃잎 좀 봐! 무겁게 내려앉는 붉은 꽃잎이 아니라 스민 것은 모두 버리고 가볍게 흩날리는 저 무명적삼같이 바람에 날리는……
나는 보았지 봄날의 연두빛 잎과 노랑나비를 그리고 철쭉꽃같은 분홍의 꽃잎을……
아니면 숨가쁘게 울어대는 여름날의 매미소리와 짙은 녹음의 무장을……
그러나 살아 있다는 것이 때론 즐겁고 쓸쓸키만 하듯 손내미는 단풍들의 잡히지 않는 하늘속에 기러기처럼 가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더란 말인가
아, 저 흰 꽃잎! 세상걱정 모두 잊은 듯 멀어져 가는 발걸음 앞에 두 손 모으듯 쌓여서 조금도 아플 것 없는 저 몸뚱아리들!
좀 봐!……
**2000년 12월 24일 밤, 내리는 흰눈 속에 세상을 뜨신 미당 서정주시인 영혼을 노래한 시임.
달아 달아 반쪽도 되지 않는 달아 내 손톱 떨어져나가 달이 된 것아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금간 물바가지 같이 달아 달아 초승달아 네 님은 지붕 위 새하얀 박꽃이랬지
지금은 그 박꽃마저 온대간데 없는데 내 어머니 비녀 끝에 어려오던 것아 대형마트에 밀려난 시골장날 헐렁한 바지처럼 구겨진 풍경이지만 연신 악기를 연주하듯 국화빵 찍어내는 저 아주머니 손놀림이 마치 활을 켜대는 연주자 같다 밀가루 멀건 반죽이 찌그러지고 빛 바랜 주전자 입을 통해 한 칸씩 정해진 제자리 차지하면 한꺼번에 수십 개씩 찍혀나오는 저 국화빵들 뜨거움도 한순간이라 견뎌내는데 팡파레도 박수갈채도 없는 시장 한 귀퉁이 아주머니 혼자 쓸쓸한 앉아 국화빵 굽어낸다 꽃무늬 양산같은 국화빵이 강보에 싸인 아기처럼 동그란 얼굴을 하고 웃고 있지만 봉지에 넣어 사가는 이 없는 이 무료함 국화빵 굽어내는 손길은 바빠 흘러간 노래처럼 국화꽃무늬 피어나지만 아, 데러갈 이 없는 핏기없는 고아들 같다 머언 절간 뒷마당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각시붓꽃이 湖水로 내려와 무얼 그리려 하는지 바람머슴애를 기둥서방처럼 불러세워 연못 위에 붓을 들어 획을 긋는다 세상에 나온 겸에 그냥은 견딜 수 없다는 듯 초록치맛단 단정하게 걷어올린 채 수목화를 그리는데 알고 보니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었다 하늘이 내려와 팽팽하게 수면을 잡아주는가 하면 물속 고기떼는 조심조심 水草 사이를 거닐고 있었다 각시붓꽃은 자신이 가장 우아해 보일 때 이렇게 붓을 들어 헹굼필법으로 자화상을 그려내는 것이다 비가 오네 와 오노? 누가 불렀나? 부른 사람 없는데 꽃망울에 눈물 맺혔네
새가 우네 와 우노? 누가 그를 슬프게 했나? 나는 모르겠는데 새가 자꾸 우네 밤이 깊네 와 깊노? 누가 꾸민 수작인가? 그럴 수도 있지 밤이 돌아보지 않고 깊어지네 <<서지월 시인 약력>> *1955년 대구 달성에서 출생. *1985년 《심상》,《한국문학》신인작품상에 시가 당선 되어 등단. *시집으로 『江물과 빨랫줄』,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 『백도라지꽃의 노래』, 『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등이 있음. *현재 대구시인학교, 한중문예창작대학 지도시인. *2002년 중국 장백산문학상 등을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