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2010.여름호)<미당 서정주 10주기 특집>서지월-'천의무봉 그 아스라한 정신사의 웃음'
천의무봉 그 아스라한 정신사의 웃음
서 지 월
누군들 그렇지 않으리요마는 미당과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은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 못한 말이 많다기 보다 다른 시인에게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 말이다. 이는 미당의 시세계를 파악하는 문학적 역량을 넘어서서 인간적 언저리에서 한 시대를 낭만적으로 걸어간 미당만한 시인도 없으리라.

여기서 낭만이라함은 천의무봉의 범주에 들어가는 천진무구가 그것일 것이다. 시인은 정치가도 독랍운동가도 지사도 아니기에 때론 가냘프기 짝이 없는 감성의 소유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로 미당을 기억하는 것 중의 하나가 그분의 웃음소리다. 특유의 '낄낄낄낄~'이 둔탁하게 받히는 소리가 아닌 매끄럽고 정겹게 들리는 천진난만 다름 아니라 느껴졌던 것이다.
미당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은 참 많다. 미당은 웃기는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자신도 도취되어 즐거워하신다. 이런 걸 보더라도 천진무구 그 자체인 것이다.'미당댁에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1996년 3월 어느 날, 저녁때였다. 해가 지고 미당댁 1층 오른쪽 방 형광등이 켜져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데도 대구로 돌아올 생각도 잊은 채 미당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중국을 다녀온 누군가가 선물해 받았다는 청룡알 주작알 한 쌍을 꺼내시더니 귀에 대고 흔들어대는 것이었다. 찰랑찰랑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지는데 미당은 또 한바탕 웃음판을 만드시는 것이었는데 곁에 앉아계시는 사모님은 뭐든 미당이 말씀 하시는 것에는 함박웃음 지으시는 모습 또한 평화로워 보였다. 그때 상황을 내가 시로 쓴 것이 있다.
◆미당을 처음 만났을 때의 서지월시인(37세)의 모습.
어느 봄날 저녁이었습니다. 불이 켜진 未堂선생님댁에서 좌우 양측으로 예닐곱 명 빙 둘러앉은 자리에서 중국 다녀온 어느 여인의 선물꾸러미 포장을 열어젖혀 보니 거기에는 희한하게도 청룡알 주작알이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노리개감으로 83세의 未堂선생님께서 먼저 하나를 쥐어들고 귀에 갖다대어 흔들어 보셨습니다. 그랬더니 찰랑찰랑 거기다가 당당당 울려퍼지는 소리...... 그 하나는 내가 귀에 바싹 갖다대어 따라 흔들어 보았더니 역시 찰랑찰랑 무슨 잘 익은 쇳소리가 당당당 울려나왔습니다. 그걸 未堂선생님과 나는 계속해서 하염없이 흔들어대었던 것입니다. 당당당...... 온 좌중이 신기한 듯 웃음판이 되어 피다만 꽃잎도 온전히 벙글어버린 결과였습니다. '너도 흔들어 봐' ,'너도 흔들어 봐', 흔드는 것도 돌아가며 노나흔들 듯 未堂선생님께서도 좌중을 훑어보시며 자꾸 흔들어 보라 하셨거니와 억수로 재미있는 일이라 자꾸 흔들어 보아도 그 알 속에서는 당당당, 당당당...... '애라, 자네 하나 가져라. 나는 우리 마누라 하고 이걸 가지고 놀고, 자네는 자네 마누라하고 그걸 가지고 놀게.' 그게 바로 파란 청룡알과 붉은 빛을 띤 주작알이었습니다.
ㅡ서지월 시「未堂 徐廷柱선생님과 노나가진 청룡알 주작알」 전문.

해마다 4,5월 무렵 미당생신 때가 되면 거의 빼먹지 않고 찾아뵈었는데 내 제자들과 함께 찾아뵈면 모란꽃의 화안한 웃음으로 '왔구나, 왔어!' 하며 반겨주시는 미당 특유의 가락이었다. 어느 해는『 작가세계 』로 등단한 제자 이은림시인이 있는데 등단 전 여성신문사에서 주최한 여성문학상에 시 「담쟁이 넝쿨」로 당당하게 당선해 상을 받고 인사 차 미당께 문안 갔었을 때 내가 쓴 담시 부분이다. '너, 또 왔구나 왔어! 하시며 / 미당선생님께서도 아주 이뻐해 주시는 / 李恩林 양 / 양산에서 왔지? 통도사 있는 양산 말이야 / 이제는 확실히 기억하고 계시는 미당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 네 / 하고 그저 얌전하게만 대답하던 李恩林 양'이었다.
◆미당생신날 서울 남현동 미당댁을 찾은 서지월시인과 대구시인학교 제자시인들.(미당의 웃은과 사모님의 함박웃음이 인상적이다)
그런가 하면, 모여사와 함께 대구에서 서울 남현동 미당댁으로 찾아뵙기로 했던 적이 있었다. 급작히 어머니께서 세상을 뜨시어 가지 못했다. 윗분과의 약속이기도 해서 사전에 사정을 말하고 다음에 뵈러 가겠다는 전갈을 했더니 미당이 육필시를 하나 써서 인편으로 보내셨는데 「사경(四更)」이라는 시였다."이 고요에 묻은 / 나의 손때를 / 누군가 / 소리 없이 / 씻어 헤우고 / 그 씻긴 자리 / 새로 벙그는 / 새벽 지샐녘 / 난초 한 송이"가 그것이다.

또 한번은 남현동 미당댁에서 장시간 담소 나누며 신나게 떠들고 웃고 있었는데 미당께서 '자네 말이야 내가 시를 하나 써주지, 뭐가 좋겠어?' 하시는 거였다. 나는 당연히 최고의 시라는 <동천(冬天)>을 말씀 드렸더니 2층에 올라가시더니 30분 정도 좀 지나서 화선지에다가 「동천(冬天)」을 세로로 길게 써서 1층 방으로 내려오셨다. 그걸 증표로 삼기 위하여 기념사진도 남겼는데 이처럼 미당은 잔정도 흘러넘쳤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어느 날 어느 때는 미당을 뵙고 나오려 하는데 시집을 언제 내느냐 하시며 시 제목 5개 정도 적어놓고 가면 시집 제목을 정해주시겠다는 것이였다. 나는 한 술 더 떠서 집에 가서 시를 20편 정도 뽑아 보여드리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시집 제목을 정해주신 게 아니라 시집 서문을 써주셨던 것이다.
이런저런 일을 알고 여러 문인들이 부러워하여서 함께 미당댁에 간 적도 있었으나 끝내 자신의 육필시는 써주시지 않으시고 화선지에 호같은 걸 한문 문장과 섞어 주시는 걸 곁에서 보기도 했다. 이런 경우 미당은 호락호락 함부로 청한다 해서 날룸 써주지 않는 매우 깐깐한 성격도 읽을 수 있었다.

◆미당이 서지월시인에게 써 준 육필시 「동천(冬天)」전문.
어느 해에는 추운 12월이었는데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날이었다. 나는 별 것 아니지만 집에서 딴 홍시를 보자기에 싸서 갖다드려야겠다 싶어 그걸 안고 동대구역에서 열차를 타고 서울로 가서 갖다드린 적이 있었다. 도심에서는 귀하리라 여겨졌으며 또한 미당의 모습이 꼭 호를 일계(逸溪)라 칭하는 서현규(徐賢奎) 내 아버지 모습과 유사했으며 마른 얼굴상도 그러했으며 내 아버지가 홍시를 아주 좋아해서 '과실 중에는 으뜸이니라'까지 말씀 하셨으니 말이다.
◆서울 남현동 미당댁 2층 서재에서 미당 서정주시인과 서지월시인, 그리고 대구시인학교 제자시인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한 달이 지났을까, 한국일보 1면 「한국일보 시단」에 내가 갖다드린 홍시에 대한 감흥을 시로 써서 발표하신 것이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교수가 일찌기 '미당의 머리에 들어가면 시가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했던 것처럼 참말이지 그러했다.
나중의 일이었지만 내가 미당께 홍시를 갖다드려 시가 되어 발표된 걸 보고 비아냥거리는 이들이 더러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나는 '니들은 조상도 부모도 어른도 없고 공경심도 없냐?' 하고 되받아치고 싶을 정도로 매우 화가 났었다. 중앙일보에서는 이 시가 아주 좋다고 당시 문화부 문학담당기자인 이경철씨가 미당의 생전 마지막 시집 『 80 소년 떠돌이의 시』(1997, 시와시학사 刊)에 수록된 걸 보고 미당의 시 「당명왕과 양귀비와 모란꽃이...」라는 시와 함께 놓치지 않고 신문 한 판 전체지면에서 대서특필한 적이 있다. 또 예리한 이경철씨는 「한국일보 시단」에 발표했을 때는 「홍시」였는데 시집에 수록할 때는 더 구체적으로 「서지월이의 홍시」라 한 것은 그만큼한 애정이 아니겠느냐고 내게 귀뜸해 주기도 했었다.
大邱의 詩人 徐芝月이가 "자셔 보이소" 하며 저희 집에서 딴 감을 가져왔기에 보니 거기엔 山까치가 그 부리로 쪼아먹은 흔적이 있는 것도 보여서 나는 그걸 골라 먹으며 이런 논아 먹음이 너무나 좋아 웃어 자치고 있었다.
ㅡ 서정주 시 「徐芝月이의 紅枾」전문.

내가 미당께 갖다드린 홍시에는 까치가 파먹은 것이 있어서 그걸 모티브로 해서 홍시를 인간만 먹는 게 아니라 산까치도 먹으니 서로 노나먹음이 기특하다고 웃어자쳤다는 내용이다. 바로 여기에도 미당 특유의 웃음소리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경철기자는 신문에서 "시 '서지월이의 홍시' 를 보면 제자 시인 서지월씨가 보낸 홍시를 고맙고 맛있게 먹는 풍경이 우선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러나 그대로 읽어버리면 안될, 그 어느 종교. 사상도 풀 수 없는 우주관이 들어있다. 산까치와 내가 함께 '논아먹음' .이 나누어 먹음으로써 까치는 내가 되고 나는 다시 홍시가 되어 '웃어자칠 수' 있는 삼라만상의 조응. 그 세계에는 나와 대상, 순간과 영원, 삶과 죽음의 구분이 없다. "(중앙일보 1997년 11월 04일 42면) 고 했고 보면 말이다. ◆미당 서정주시인의 선산인 질마재에서 서지월시인과 함께.
그후 이경철기자를 만났는데 내게 "서선생님께는 무어라 해도 미당의 <徐芝月이의 紅枾>라는 시가 중요하니 미당께 말씀 드려 그걸 하나 육필시로 받아 놓으라구요" 하는 거였다. 미당이 84세 되던 해였던가 본데 말씀드리니 '응, 알았어. 써 놓으께. 다음에 오면 주께' 하시고는 그 다음에 뵈러 갔을 때 말씀이 없으시기에 고령이기도 하여 누가 될까 봐 함구했는데 영영 받지 못하고 말았던 일이기도 하다.
이듬해인 85세 되던 해 12월, 미당은 온천지가 흰눈이 내리는낭만적 분위기 속에서 세상을 떴는데 다시 뵈올 수도 없는 미당 영전에 다음과 같은 시를 바쳤던 것이다.
한 세상이 고달퍼서 누워서 가시옵니까? 지금은 노오란 菊花꽃도 다 져버리고 하늘나라에서는 흰눈을 내리시어 萬古江山이 왼통 흰 홑이불을 포근히 덮은 듯 그렇게 눈 감으시고서 꾀꼬리와 꾀꼬리 어린것들의 지저귀는 소리, 저 언덕 너머 달밤의 소쩍새 피 뜯는 소리, 天地間 갈라지던 학두루미떼들의 진동소리, 이 모든 것들 이제는 접어시고서 우리가 모르는 나라로 가시오니 아, 세상은 왜 이리 재미없고 山은 山대로 들은 들대로 소복 입은 채 말없을 뿐이옵니다 아직도 살아있는 이들은 大詩人을 꿈꾸고 보다 나은 구름을 잡으려고 분주히들 뛰어갑니다 「한국시의 완성」이라는 대의명분 이룩하셨으니 국경을 넘어 폴 발레리, 보들레르, 이백, 두보 그런 분들도 자유롭게 만나보시고 친구 되시옵소서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녘 삼만리……」 問安 가서 대신 읊어드린 시 <귀촉도> 들으시고 빙긋이 웃으시며 기뻐하시던 모습 그게 마지막 될 줄 몰랐으며 꽃상여 타시고 누워서 질마재 山언덕 오르실 때 그 앞을 치달아 가는 제게, 「芝月이, 자네가 여기까지 따라왔구나!」 하시는 말씀 하늘로부터 받아 들었습니다 한 세상 고달퍼서 누워서 가시는 걸 저는 걸어서 가 한줌 이 땅의 흙 얹어드리며 비로소 그 무게 가벼운 것 그때 알았습니다 강이 휘어잡는 물굽이도 鶴이 날으는 드센 바람의 향연도 이젠 풀어놓으시고 오천년 하늘 속을 편히 쉬옵소서
ㅡ서지월 시「누워서 가시옵니까」전문.

◆미당 서정주시인 장지의 꽃상여와 긴 행렬의 풍경(2000년 12월 28일)
사실이지 인간사 덧없다는 말은 동서고금을 통해서도 익히 들어온 말이고 보면, 짐을 실은 수레가 어느 날 길을 가다 멈추어 실었던 짐 다 내려놓고 더 이상 구르지 못하고 영영 멈춰서버리는 것과 같은 게 인간의 수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참, 마지막으로 이 기회에 미당이 내게 직접 하신 말을 꼭 밝혀두고자 한다, 노벨문학상 두 번째 후보로 올랐을 때인 어느 가을로 기억되는데 노벨문학상에 대한 굉장한 자부심을 가졌었는데 그건 내게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비쳐졌다. 한평생을 눈부신 시세계를 펼쳐온 건 자타가 공인하는 일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때 내게 두 가지 말씀을 하셨다. 그 하나는 한민족 오천년 역사상 신라시대 최고의 문인은 최치원, 고려시대에는 이규보, 조선시대에는 서거정, 그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미당 자신이 아니겠냐고. 역시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피력하셨던 기억이 난다. ‘대시인다운 기질과 당당함이 여기 있구나’ 하고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스스로 자처하기 이전 역사와 시대의 평가를 아우런 말이 되겠지만, 큰 산은 큰 그늘을 드리운다는 말이 있듯이 한 시대를 길게 풍미한 미당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서군, 나는 사가정 서거정선생 형님 후손이고 자네는 서거정선생 후손이지. 내가 태어나기는 전북 고창이지만 본은 대구달성이야. 달성서가(達城徐家)라는 말이야, 알아들어? ' 그 뿐만 아니었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캐오라고 선남선녀 300명인가 500명인가를 보냈을 때 총감독을 맡았던 분도 서불(徐佛)이라는 먼 조상 말씀까지 해 주셨다. 미당 특유의 말씀이 있는데 끝마디에 '알아들어?, '알아들어?'를 반복하시는 것도 잊혀지지 않는다. (서지월시인 집필) ◆
• 약력 (등단연도 및 등단지와 대표 작품집 1권 및 권수)
<약력>
• 1955년, 고주몽 연개소문과 같은 생일인 음력 5월 5일 단오날 대구 달성 출생. • 1985년『심상』및『한국문학』신인작품상에 각각 시가 당선 되어 등단. • 2002년 중국「장백산문학상」등 수상. • 시집, 『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천년의 시작,서정시<1>)등 있음. • 한중공동시전문지『두견화 』편집주필. 대구시인학교 지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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