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학](2010, 봄호)<시평>서지월-'만만치 않은 탄력성. 신선한 목소리
[대구문학](2010, 봄호)<시평>서지월-'만만치 않은 탄력성. 신선한 목소리의 詩'
만만치 않은 탄력성. 신선한 목소리의 詩
서 지 월(시인)
어느 여류시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대구에서 제대로 된 세계관을 돈독히 가지고 있는 시인은 다섯 손가락 안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가(一家)를 이루고 있다는 말인데 그만큼한 볼륨을 형성하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대구를 '시의 도시'라 한다. 이 말은 시인만 많다고 '시의 도시'라 지칭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활동하는 왕성함이나 질적수준을 동반하는 말로 인식되어도 좋을 것이다. 시인만 많아 우글거린다 해서 '시의 도시'라 이름 붙여진 것은 아닐 터이니 말이다. 그밖에 대구라는 분지도시가 타도시와는 달리 시를 문화의 토양으로 번성하고 있기에 '시의 도시'라 부른다는 것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약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시는 문학의 제1의 자리에 놓여있으며 문학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데 시적 감수성이나 재능이 없다면 타장르를 넘나드는 데도 쉽지 않으리라 본다. 시적 상상력이 모든 문학의 기저가 됨은 물론 시적 세련미를 갖춘 문장력이 타장르에도 영향을 미침은 두 말 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시인인구가 많은 대구에 휼륭한 시인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글을 시작해 본다. 대구시단 시인인구가 400명에 임박한 수효라 추측되는데 진정한 시인으로 활동하는 시인의 수효는 극소수라는데 동의할지 모르나 필자가 보기에 십여명 정도에 불과하지 않는가 여겨진다.
그럼 나머지 시인들은 무어란 말인가. 그냥 말로만 시인이란 말인가. 시인이면 되었지 그 이상 이하가 무어냐고 할지 몰라도, 시인은 시를 써야 시인이며 좋은 시를 계속 생산해 내야 진정한 시인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그냥 시인이어서는 안된다는 말이 성립될 것으로 안다.
물론 출발부터나 여러 덕목 및 구비조건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농부가 땅이 있어야 하고 농기구가 있어야 하고 경작기술이 있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으며 곡식을 수확하는 원리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두드러지던 여류시인들의 활동도 좀 주춤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데 지난 해 대구문학상을 수상한 고희림시인의 시 <지평선에서의 하룻밤>이 주목을 끌고 있다. 대구문단에서 이 시대의 마지막 서정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는 도광의시인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들은 텅 비었으나 경운기 소리로 꽉 차 있었다
냇물은 불었으나 갈길을 막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나를 붙드는 것일까 이런 생각 뿐이었을 때
들판에 꽉 찬 신기루가 말했다
나는 사람들보다 소리가 더 가까운, 외딴 풀밭이다
설계 명랑한 집, 비닐하우스다
개울이 커튼처럼 흘러내리는 농로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배역이다
제목은 '철새공화국' 이다
나는 물 아래 소리와 물 위 소리 사이에 누워 있다
나는 저 모든 지상의 것들을 위한 희생자다
대지의 자궁 속에 뼈처럼 산처럼 쌓여 있는 길고 예리한 뿌리들이다
나는 땅 밑에서 올라와 땅 위를 미친 듯 돌며
깊고 뜨거운 그 많은 길을 견뎌온 늙은 왕자의 달을 잉태 하였다
어쩌랴 어쩌랴
내일 아침이면 그 실루엣의 배가 지평선 위로 불룩 솟아 오를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도 생산일 것이다
생산이 끝난 벌판에 바람이 일듯
ㅡ고희림 시 「지평선에서의 하룻밤」전문.
사유의 목소리가 힘을 더하고 있는 작품으로 읽힌다. 평범하지 않은 시인의 내면의 소리가 자연과 융화되어 번져나온다. 시인이 보여주고 있는 평범하지 않은 문체는 '오히려 내가 나를 붙드는 것일까 이런 생각 뿐이었을 때', '나는 물 아래 소리와 물 위 소리 사이에 누워 있다', '실루엣의 배가 지평선 위로 불룩 솟아 오를 것이다' 등인데 지평선은 우리네 삶의 근원적인 토양으로 배경을 보면 청도 넓은 들쯤 될 것이다. 역시 스케일이 큰 시인은 한 편의 시를 소화해내는 데도 웅혼한 대자연의 생명력을 투영시켜 노래하고 있다고 보면 옳을 것이다. 미당 서정주의 시 '滿州에서'를 참조해 보면 금방 알 것이다.
서정주가 원시의 생명력을 황량한 만주벌판에서 밝은 안목으로 찾았다면, 고희림시인이 말하는 땅 혹은 대지, 지평선은 버려진 땅이 아니라 인간의 원초적 삶의 수단이라 할 수 있는 농경사회(인간 본래의 삶, 또는 자연친화, 환경보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게 파괴가 되지 않거나 회복이 되어야 함도 여기 있다. 이제와서 무슨 경운기 소리, 철새, 신기루, 풀밭, 농로냐고 할지 몰라도 환경이 파괴되면 인간이 살아갈 마지막 땅을 잃는 것이며 '내일 아침이면 그 실루엣의 배가 지평선 위로 불룩 솟아 오'르지 않을 것이다.
도시적인 감수성의 현대시들, 또는 누구나 써먹는 발랄한 제스츄어의 기교적 표현들이 난무한 시대에 고희림시인의 시는 이렇게 안온함과 넉넉함을 안겨주는 동시에 진정한 인간의 삶이 어디에 놓여있어야 하는가를 넌지시 제시해 주고 있다 하겠다. 또한 이러한 여러 자연군상들을 막연한 서정적 분위기로 널어놓는데 그치는게 아니라는데 있다. 이렇게 시인 특유의 문체로 잘 육화되어 놓여질 때 한 편의 시가 갖는 매력과 울림은 남다른 것이리라.
이밖에도 유인서, 서하, 이규리 등 몇몇 여류시인들의 시가 만만치 않은 탄력성을 가지고 있어 대구시단의 미래가 기대되는데 아마도 대구시단을 짊어지고 가야 할 주역으로 보인다.
이번에는 대구문단에서는 신인으로 보이는 신평시인의 작품이다.
이렇게 하염없이 비가 오는 날에는
친구와 함께
오래된 토막(土幕)집에 들어앉아
소주를 마시고 싶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지친 한숨 안주 삼아
목구멍 속으로 한 잔 두 잔 털어넣으면
세상은 갑자기 빛을 발하고
주위는 빵빵하게 힘을 얻으니
그 힘찬 공간에 쾌할하게 있고 싶어라
시간의 화살은 이미 세모로 향하고
하루는 기울어 어둑어둑해지는 때
비는 잠시도 쉬지 않고 추적추적 내리고
곁은 허전하기만 하여
내 마음은
길바닥에 뒹구는 질척한 낙엽
전해지는 오싹한 한기와 쓰라림
오직 체념의 입술을 굳게 다물고
무상한 세월을 넘으려 한다
ㅡ신평 시 「비 내리는 날」전문.
이 시는 누구나 느끼는 중년의 삶일 수 있는데, 비 오는 날 소주를 통해 힘을 얻는 붕우지정을 노래하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도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친구와 술상을 마주하며, 지나간 시절을 회고했는가 하면 모든 희노애락을 풀어버리곤 했는데 그런 여유를 읊은 시라 하겠다. 과거나 현재나 인간이 살아가는 한 다를 바 없는 인간본연의 세계가 그것이다. 술과 비와 낙엽의 조화가 삶의 무상감을 더욱 고조시키는가 하면 무상에 대한 극복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순수한 시인의 마음이 눈에 선히 비치는 풍경들이다.
이밖에도 신인으로 등단한 남성희씨의 <산길>, 신정애씨의 <외딴집>, 정정지씨의 <조각보 만들기> 등이 신선한 목소리로 다가왔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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