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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신문]북경 서비홍기념관을 찾아서

아미산월 2010. 1. 12. 05:17
ㅁ[길림신문]북경 서비홍기념관을 찾아서

북경 서비홍기념관을 찾아서

기자: [박광익 특약기자] 래원: [본사소식] 발표: [2009-12-02 오전 9:57:30] 클릭: [ 151] 나도 한마디: [ 0] 

지난 10월중순 필자는 북경 동직문역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적수담역에 내려 도보로 서성구 신가구북대가 53번지(西城区新街口北大街53号)에 자리잡고 있는 서비홍기념관을 찾았다.
 
서비홍기념관은 서비홍(1895년-1953년)옛집의 기초상에서 건립된 중국미술가중 제일 처음으로 되는 기념관으로서 1954년에 동성구 수록가 16번지에 자리잡았다가 1966년에 지하철을 건설하면서 페관되였고 1973년에 주은래총리의 지시에 따라 지금의 자리에 재건설을 시작하고 1983년 1월에 다시 참관자들을 접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은래총리의 친필제사

서비홍기념관은 회색나는 2층집인데 부지면적은 4000㎡이고 건축면적은 4600㎡이며 입구정면에 서비홍선생이 그림을 그리는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기념관은 대체로 서막청, 전시청, 생평전 등 부분으로 나누는데 제 1, 2, 7전시실에는 《우공이산》, 《배사공》, 《빈부》, 《군마》, 《목동과 소》, 《리강의 봄비》, 《대나무》 등 각 시기의 중국화 대표작이 있으며 제2전시실에는 《히말라야산림》, 《싱가포르 배사공》 등 이름난 소묘작품 100여점이 있다. 제3, 5전시실은 유화작품 전시실로서 《전횡5백사》, 《은행나무》, 《달밤》, 《피리소리》, 《소》, 《계림의 산수》 등 작품이 있으며 제4전시실에는 선생의 생전창작실과 진귀한 유물들 및 선생의 유고작이며 미완성작인 《로신과 구추백》을 전시했는데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 위대한 미술가의 조년타계를 애석케 하고있다. 그외에도 1층에는 《북경문지걸문화예술센터》가 있는데 그속에 조선족 화가의 유화작품 3점이 전시되여 있어 민족의 자부심을 뿌듯히 느끼기도 했다.

강소성 이흥 사람인 서비홍은 중국의 걸출한 화가이며 탁월한 미술교육가이며 위대한 애국주의자로서 생전에 중앙미술학원 원장직과 중국미술가협회의 주석직무를 담임했었다. 빈곤한 화가가정에서 태여난 선생은 어려서부터 부친에게서 전통적인 중국화, 유화를 배웠고 후에는 프랑스의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소묘, 유화 등을 배웠다.
 
30-40년대에 그는 《전횡5백사》, 《우공이산》 등 거폭의 작품을 창작하여 높은 애국주의 정신을 표현한 동시에 중국인민의 불요불굴의 위대한 정신을 구가하였고 《말》, 《웅사》, 《아침닭》 등 그림을 통해 민족의 존망에 대한 우려와 민족해방에 대한 갈망을 표현했다. 서비홍은 또한 수십년을 하루같이 미술교육사업에 종사하면서 대량의 청년들을 배양했는바 당대의 이름난 화가와 영향력있는 화가중 대부분이 선생의 제자들이라고 한다. 이 기념관에는 선생의 국화, 유화, 소묘, 수채화, 서법작품 1300여편이 전시되여 있는 외 선생이 수장한 당, 송, 원 시기의 서화작품 1130편이 전시되였으며 국내외의 미술서적, 화책, 도편도 만여건 전시되였는데 그중에는 당조의 《87신선권》 등 세계에서 희소한 정품들이 있다.

서비홍은 우리나라의 미술사업을 위해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부지런히 창작하여 많은 명작을 남겼으며 걸출한 성과로하여 전국 인민들의 애대와 존경을 받았다. 서비홍이 서거한후 그의 부인 료정문녀사는 그의 생가와 전부의 작품을 국가에 기증했다. 지금 이 기념관의 법인대표와 관장은 료녀사가 맡고있다.

서비홍선생의 조각상

이 기념관에서는 서비홍을 기리고 그의 예술풍격을 고양하고자 1985년부터 중앙미술학원과 공동으로 《서비홍화실》을 건립하고 지금까지 22기를 견지하여 전국각지에 많은 예술인재를 배양 및 수송했다. 서비홍기념관은 지난해 3월에 무료로 개방되였으며 해마다 수만명의 참관자들을 접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