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참꽃
서 지 월
비슬산 참꽃 속에는 조그만 초가집 한 채 들어있어 툇마루 다듬잇돌 다듬이소리 쿵쿵쿵쿵 가슴 두들겨 옵니다
기름진 땅 착한 백성 무슨 잘못 있어서 얼굴 붉히고 큰일난 듯 큰일난 듯 발병이 나 버선발 딛고 아리랑고개 넘어 왔나요
꽃이야 오천년을 흘러 피었겠지만 한떨기 꽃속에 초가집 한 채씩 이태백 달 밝은 밤 지어내어서 대낮이면 들려오는 다듬이소리
어머니 누나들 그런 날의 산천초목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쿵쿵쿵쿵 물방아 돌리며 달을 보고 흰 적삼에 한껏 붉은 참꽃물 들었었지요
귀뚜라미 보일러 수리공과 골목 채소장수
서 지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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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째 내 세 들어 사는 전셋집 오래된 귀뚜라미 보일러에 자주 귀뚜라미가 울어 아내가 전화 걸어 서비스 부탁한 일도 두서너 번 이번에는 귀뚜라미 보일러 고참수리공이 조수수리공과 함께 왔었는데 그놈의 귀뚜라미 보일러 귀뚜라미 소리가 안 나게 하기 위하여 둘이서 열심히 손 보고 있었는데 -이 집이 어떤 집인지 알어? 고참소리공의 말에 조수수리공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그러는 잠깐 사이, 고참수리공은 -시인의 집이야 시인의 집…… 둘이서 이마 맞대며 귀뚜라미 보일러 귀뚜라미 소리 안 나게 열심히 손 보면서 역시 신기한 듯 이마 맞대고 -이 집이 시인의 집이야 시인의 집…… 소근거리는 것을 내 아내가 부엌에서 일하며 들었다고 나중에 내한테 전해주길래 시인이 위대한 건지 아니면 시레기 보다 못한건지 간에 살다가 참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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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귀뚜라미 보일러 수리공들도 이제는 영 발길이 뜸해졌는데 골목에서 채소장수의 채소 사려! 소리가 들려, 이날 집보고 있던 내가 냉큼 달려나가 뭐 살 것 없을까 하고 골목을 나가서 채소 감자 두부 펼쳐놓은 것들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그 채소장수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만 역시 채소 사러 나온 옆집 아주머니한테 무어라 중얼중얼 -저분이 시인 맞죠 서지월시인…… 그러고는 -아이구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 건네길래 다른 말 할게 없어 나는 그저 -아, 예예 했을 뿐이었다 남들은 직장 다니느라고 매일 출근하는데 어디 나갈 데마저 잘 없는 내가 이날 따라 골목 나갔다가 직접 들은 얘기다 햇빛도 눈이 부신 여름 한낮 살다가 보니 밥 안 먹어도 배부를 때가 이때구나 하고 생각했다 역시 시인이 위대한 건지 시레기 보다 못한건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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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내 돈 못 벌어준다고 아내와 말 안 하고 얼굴 안 보고 사는지도 수년이 더 되었지만 이젠 아예 그 귀뚜라미 보일러 녹슬어 귀뚜라미 소리도 뚝 멈춰 못 쓰게 되었으니 그 귀뚜라미 보일러 수리공들도 올 리 없는데 그 옆에 지키고 섰는 감나무 한 그루 무슨 생각에선지 감나무잎만 스레트 지붕 위로 말없이 흘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냥 가지고 가셔요!
ㅡ전업시인인 나에게
서 지 월
대구 봉덕시장 옷수선집에 옷 맡겨놨다가 어느어느 날 맡겨놓은 그 옷 찾으러 갔더니 그냥 가지고 가셔요! 하며, 수선한 옷 내게 내미는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수선집 주인 부부 말하자면 2천원 3천원 삯 받고 옷수선 해 주며 수십 년 봉덕시장에서 그 일만 전문으로 해 왔는데 나 역시 10년 가까이 그 옷수선집 드나들었는데
내가 찾아가면 늘 내게 요즘도 시 많이 쓰십니까? 아니어요, 전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는 쓰지 않는 걸요 하고 답하기도 했지만 신문에 보니 많이 나오데요! 라고 할 땐, 나는 쓴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지
그런 옷수선 하며 살아온 그 봉덕시장 길가 허름한 간판 달고 수십 년 한 자리에서 옷수선 하며 살아왔다지만 건물세 미싱값 실값 전기세 등등 그것도 수월치 않을건데 시만 쓰며 살아가는 전업시인인 나에게 앞에서 말한 어느어느 날 맡겨놓았다는 옷 찾으러 갔더니
그냥 가지고 가셔요! 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그냥 가져왔지만 말인 즉 세상에 과부심정 과부가 알고 서민입장 서민이 안다고 나같이 전업으로 큰 돈 안 되는 그것에만 매달려 해 온 전업 아닌가 말일세
푼돈으로 살아가며 겨우 생계 이어가는 전업은 전업끼리 통한다니까!? 나도 수십 년 시만 써 오며 볼펜값 종이값은 그렇다치더라도 남들 희희낙락하며 맛있는 것 먹을 때 밤잠 안 자고 굶으며 싸늘한 방에서 행주 쥐어짜듯 머리 쥐어짜기도 하고 싸매기도 하며 시만 쓰며 고달픈 삶 살아왔거늘
그래도 세상은 공짜 전혀 없이 돈 계산 다 요구하더라는 것 식당 가서 밥 먹으면 밥값 줘야지 레스토랑 가서 커피 마시면 커피값 줘야지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거나 책을 사거나 통닭을 시켜 먹거나 짜장면을 시켜 먹어도 돈 지불해야지 휴대폰값 인터넷 PC통신 사용료 전기세 다 지불해야지 모임 가면 회비 내야지
시집 내면 몇 백만원어치 시집 사서 여기저기 달라는 데 안줄 수 없는 데는 싸인까지 해서 줘야지 전업시인에게도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걸 모르는 일은 아니지만 밤 세워 시를 써서 이튿날 차비 들여 가서 시낭송 해 주거나 발표 하거나 시화전 하면 경비부담 해야지
그렇다고 나 혼자 기인처럼 사는 것 또한 아닌 처자식 딸린 몸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그러나 김소월처럼 시 하나만큼은 언젠가 빛나리라는 정신 그것으로 일관해 온 건 틀림없지만
왜 하필이면 옷 수선해 수공 받고받아도 변변찮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봉덕시장 옷수선집 주인은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전업시인을 헤아려 이렇게 옷수선비 안 받고 그냥 가져가셔요 라고 하느냐 말이다
내 친구가 빵집을 해도 수십 번 지나쳐도 빵 하나 그냥 먹어보라는 소리 못 들었으며 한둘이 아닌 내 제자의 시를 신문에 잡지에 수십 번 해설 써서 소개해 주어도 이 선생 안 모시고 승용차에 딴 시인 태워 다니더라는 것, 인간사 이러할 진데
진작 청산가리 먹고 일찍 목숨 끊은 평안북도 정주 곽산 김소월 심정 이제야 좀, 좀은 알 것 같기도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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