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둥근 밥그릇의 노래
서 지 월
우리가 오천년을 먹어온 밥그릇 앞에 지금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오늘도 따뜻한 밥 한그릇 받고 있으면 「동무 동무 씨동무 보리가 나도록 씨동무 보리밭 길을 가아자......」 겨울을 나는 아이들의 노래소리가 동구밖에서 들려오고
늘 어머니가 지어주신 밥 먹고 자란 둥근 밥그릇 위에 먼 산이 다가서 비치고 나뭇가지에는 새들이 날아와 깃을 칩니다. 또다시 푸짐한 밥 한 그릇 받고 있으면 「해야해야 나오너라 김치국에 밥 말아먹고 장구치고 나오너라......」 더운 여름날이면 아이들의 노래소리가 골목에서 들려오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누나 동생들이 실컷 먹어온 밥그릇 주위를 빙빙 돌며 「쾌지나칭칭나네, 쾌지나칭칭나네......」 밤낮 할것없이 사시장철 우리들을 두루 비추어 온 해와 달 그리고 별 둥근 하늘아래, 북 장구 꽹과리 징 상모 그 어느 것 하나 둥글지 않은 것이 없듯이
우리가 오천년을 먹어온 둥근 밥그릇 속에 김이 오르고 길을 가는 소달구지는 팔조령 재를 넘었습니다.
- 서지월 (徐芝月.49) "둥근 밥그릇 의 노래" 전문.

◆ 고은시인과 서지월시인의 한때.
놀랍구나. 5천년 동안 먹어온 우리 밥그릇이라니. 그것은 오랜 농경시대 를 살아온 우리 조상과 고향들이 대대로 이어온 그 무궁한 친화력과 함께 인 밥그릇이다. 밥그릇은 온 세상을 다 포함한다. 해와 달.별, 땅 위의 풍물 북.장구.꽹과리.징.상모돌리기까지도 마침내 둥근 밥그릇이 아닌가.
ㅡ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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