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족오 시단

[담시]서지월 시-'그냥 가지고 가셔요!'

아미산월 2009. 5. 4. 22:55

[담시]서지월 시-'그냥 가지고 가셔요!'

 

그냥 가지고 가셔요!

 

ㅡ전업시인인 나에게

 

 

서 지 월

 

대구 봉덕시장 옷수선집에 옷수선 맡겨놨다가

어느어느 날 맡겨놓은 그 옷 찾으러 갔더니

그냥 가지고 가셔요!

하며, 수선한 옷 내게 내미는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수선집 주인 부부

말하자면 2천원 3천원 삯 받고 옷수선 해 주며

수십 년 봉덕시장에서 그 일만 전문으로 해 왔는데

나 역시 10년 가까이 그 옷수선집 드나들었는데

내가 찾아가면 늘 내게

요즘도 시 많이 쓰십니까?

아니어요, 전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는 

쓰지 않는 걸요 하고 답하기도 했지만

신문에 보니 많이 나오데요!

라고 할 땐, 나는 쓴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지

그런 옷수선 하며 살아온 그 봉덕시장 길가

허름한 간판 달고 수십 년 한 자리에서 

옷수선 하며 살아왔다지만 건물세

미싱값 실값 전기세 등등 그것도 수월치 않을건데

시만 쓰며 살아가는 전업시인인 나에게

앞에서 말한 어느어느 날 맡겨놓았다는 

옷 찾으러 갔더니

그냥 가지고 가셔요!

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그냥 가져오고 왔지만 말인 즉 

세상에 과부심정 과부가 알고

서민입장 서민이 안다고 나같이 전업으로

큰 돈 안 되는 그것에만 매달려 해 온 

전업 아닌가 말일세

푼돈으로 살아가며 겨우 생계 이어가는 전업은

전업끼리 통한다니까!?

나도 수십 년 시만 써 오며 볼펜값 종이값은

차지하더라도 남들 희희낙락하며 맛있는 것 먹을 때

밤잠 안 자고 굶으며 싸늘한 방에서

행주 쥐어짜듯 머리 쥐어짜기도 하고

싸매기도 하며 시만 쓰며 고달픈 삶 살아왔거늘

그래도 세상은 공짜 전혀 없이 

돈 계산 다 요구하더라는 것

식당 가서 밥 먹으면 밥값 줘야지

레스토랑 가서 커피 마시면 커피값 줘야지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거나 책을 사거나 

통닭을 시켜 먹거나 짜장면을 시켜 먹어도

돈 지불해야지 휴대폰값 인터넷 PC통신 사용료

전기세 다 지불해야지 

모임 가면 회비 내야지

시집 내면 몇 백만원어치 시집 사서

여기저기 달라는 데 안줄 수 없는데는 

싸인까지 해서 줘야지 

전업시인에게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걸

모르는 일은 아니지만

밤 세워 시를 써서 이튿날 차비 들여 가서

시낭송 해 주거나 발표 하거나 

시화전 하면 경비부담 해야지

그렇다고 나 혼자 기인처럼 사는 것 또한 아닌

처자식 딸린 몸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그러나 김소월처럼 시 하나만큼은 언젠가

빛나리라는 정신 그것으로 일관해 온 건 틀림없지만

왜 하필이면 옷 수선해 수공 받고받아도

변변찮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봉덕시장 

옷수선집 주인은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전업시인을 헤아려  

이렇게 옷수선비 안 받고

그냥 가져가셔요 라고 하느냐 말이다

내 친구가 빵집을 해도

수십 번 지나쳐도 빵 하나 그냥 

먹어보라는 소리 못 들었으며

한둘이 아닌 내 제자의 시를 신문에 잡지에 

수십 번 해설 써서 소개해 주어도 

이 선생 안 모시고 승용차에 딴 시인 태워

다니더라는 것, 인간사 이러할 진데

진작 청산가리 먹고 일찍 목숨 끊은

평안북도 정주 곽산 김소월 심정 이제야

좀, 좀은 알 것 같기도 하더이다

 

(2009년 3월 5일 낮, 12시 17분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