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시]서지월 시-'그냥 가지고 가셔요!'
[담시]서지월 시-'그냥 가지고 가셔요!'
그냥 가지고 가셔요!
ㅡ전업시인인 나에게
서 지 월
대구 봉덕시장 옷수선집에 옷수선 맡겨놨다가
어느어느 날 맡겨놓은 그 옷 찾으러 갔더니
그냥 가지고 가셔요!
하며, 수선한 옷 내게 내미는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수선집 주인 부부
말하자면 2천원 3천원 삯 받고 옷수선 해 주며
수십 년 봉덕시장에서 그 일만 전문으로 해 왔는데
나 역시 10년 가까이 그 옷수선집 드나들었는데
내가 찾아가면 늘 내게
요즘도 시 많이 쓰십니까?
아니어요, 전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는
쓰지 않는 걸요 하고 답하기도 했지만
신문에 보니 많이 나오데요!
라고 할 땐, 나는 쓴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지
그런 옷수선 하며 살아온 그 봉덕시장 길가
허름한 간판 달고 수십 년 한 자리에서
옷수선 하며 살아왔다지만 건물세
미싱값 실값 전기세 등등 그것도 수월치 않을건데
시만 쓰며 살아가는 전업시인인 나에게
앞에서 말한 어느어느 날 맡겨놓았다는
옷 찾으러 갔더니
그냥 가지고 가셔요!
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그냥 가져오고 왔지만 말인 즉
세상에 과부심정 과부가 알고
서민입장 서민이 안다고 나같이 전업으로
큰 돈 안 되는 그것에만 매달려 해 온
전업 아닌가 말일세
푼돈으로 살아가며 겨우 생계 이어가는 전업은
전업끼리 통한다니까!?
나도 수십 년 시만 써 오며 볼펜값 종이값은
차지하더라도 남들 희희낙락하며 맛있는 것 먹을 때
밤잠 안 자고 굶으며 싸늘한 방에서
행주 쥐어짜듯 머리 쥐어짜기도 하고
싸매기도 하며 시만 쓰며 고달픈 삶 살아왔거늘
그래도 세상은 공짜 전혀 없이
돈 계산 다 요구하더라는 것
식당 가서 밥 먹으면 밥값 줘야지
레스토랑 가서 커피 마시면 커피값 줘야지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거나 책을 사거나
통닭을 시켜 먹거나 짜장면을 시켜 먹어도
돈 지불해야지 휴대폰값 인터넷 PC통신 사용료
전기세 다 지불해야지
모임 가면 회비 내야지
시집 내면 몇 백만원어치 시집 사서
여기저기 달라는 데 안줄 수 없는데는
싸인까지 해서 줘야지
전업시인에게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걸
모르는 일은 아니지만
밤 세워 시를 써서 이튿날 차비 들여 가서
시낭송 해 주거나 발표 하거나
시화전 하면 경비부담 해야지
그렇다고 나 혼자 기인처럼 사는 것 또한 아닌
처자식 딸린 몸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그러나 김소월처럼 시 하나만큼은 언젠가
빛나리라는 정신 그것으로 일관해 온 건 틀림없지만
왜 하필이면 옷 수선해 수공 받고받아도
변변찮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봉덕시장
옷수선집 주인은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전업시인을 헤아려
이렇게 옷수선비 안 받고
그냥 가져가셔요 라고 하느냐 말이다
내 친구가 빵집을 해도
수십 번 지나쳐도 빵 하나 그냥
먹어보라는 소리 못 들었으며
한둘이 아닌 내 제자의 시를 신문에 잡지에
수십 번 해설 써서 소개해 주어도
이 선생 안 모시고 승용차에 딴 시인 태워
다니더라는 것, 인간사 이러할 진데
진작 청산가리 먹고 일찍 목숨 끊은
평안북도 정주 곽산 김소월 심정 이제야
좀, 좀은 알 것 같기도 하더이다
(2009년 3월 5일 낮, 12시 17분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