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월시인 만주기행/제2편-겨울 만주기행

[겨울 만주기행]1.눈덮힌 겨울 만주기행 -인천항

아미산월 2009. 4. 18. 05:57

[서지월시인의 겨울 만주기행]1.눈덮힌 겨울 만주기행 -인천항 

 

1.눈덮힌 겨울 만주기행 -인천항

  (Homepage) 2003-04-22 16:09:11, 조회 : 4,166

1. 눈덮힌 겨울 만주기행 -인천항

◇序

단동시가지의 모택동 동상

 

 

내가 두 번째 만주개행을 겨울에 감행하게 된 것은 남다른데 있다. 2000년대라는 새 천년의 첫해 첫날을 만주땅 환인시에 있는 오녀산성에서 맞이해 보고자 한 것이 그 첫째 이유다.
우리가 늘 맞이하는 남한땅의 해맞이란 동해바다에 떠오르는 해를 보는 것인데, 나는 만주땅 고주몽이 고구려 개국의 깃발을 처음으로 올린 눈덮인 그 오녀산성(고구려 첫도읍지)에 올라가서 바닷가 아니라 고조선시대부터 오천년 역사를 굽이쳤던 비류수를 내려다 보며 줄달음치는 산맥 위에 뜨는 새 천년의 해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땅 새해맞이란 인파로 터져나가고 차량이 밀려 혼잡하기 그지 없을 테니까.
두 번째로는 눈덮인 만주벌판을 보고 싶었고 달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말로만 듣고 역사속에서만 읽어왔던 겨울 만주벌판의 모습을 실지로 가 밟아보고 목격하고 싶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늙으면 기력없어 가고 싶어도 못갈때도 있으니, 내친 김에 뛰어 버리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남한땅보다는 북한땅이, 북한땅보다는 만주땅이 더 추울거라는 생각도 뛰어 넘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인데 추우면 어때? 그까짓것 못 이겨내! 이런 각오로 감행한 것이다.
북으로 올라갈수록 더욱 추운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춥다고 안가본다면 언제 가나? 이런 생각도 났다. 일개의 한국시인으로 남들이 안해본 것을 해본다는 모험심도 시인에게는 창의성의 발현일수도 있으니까.

서지월 시인의 두번째 만주기행에 동참한 애제자 이은림 시인(오른쪽)과 함께 단동 시외버스 터미널 식당에서.

나는 습성적으로 편안하게 있는 것을 싫어하는 성미다. 어디를 쏘다니든 뭐를 하던 해야지 가만히 앉아있거나 누워 있다고 해서 누가 떡주나?
늘 이런 신념으로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한다.


이 기회에 나의 애제자인 이은림시인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가녀린 몸매에 마다하지 않고 그 추운 눈나라를 동행했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도 많은 경험이 되었을 줄 안다.
어떻게 보면 나는 대구에서 만주를 갔고 이은림 시인은 경남 양산에서 만주를 가게 되었으니 이은림시인이 훨씬 더 먼데서 멀리 간 셈이다. 이런 것보면 더 높이 나는 새가 더 멀리 내다본다는 말이 있듯이, 더 먼데서 더 멀리 가본다는 실감은 더욱 남다르리라는 생각이 들기에 해본 말이다.


사실 만주땅은 우리의 땅이다. 한두해 우리의 땅이 아니라, 몇 십년 몇 백년 우리의 땅이 아니라 몇 천년 그것도 오천년 우리의 땅이었다. 그 땅을 우리는 잊고 지내왔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서글픈 일이 아니겠는가.

인천항에서 출발한(동방명주호)가 단동항에 도착해 택시로 20여분가면 압록강변도시인 단동시가지가 나온다. 압록강변의 [압록강] 기념비

그러니 더욱 애착을 가지고 밟아보고 노래할 일이다. 세계 어느나라 여행보다 호화롭지 못하고 고생이 되지만 남의 땅, 남의 문화보다 우리의 땅, 우리의 문화가 서려있던 곳이니까 한시도 잊고지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를 잃었다고 어버이에 대한 생각마저 잊어버린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것에 귀기울여 보자는 것이고 그런 정신이 미래의 조국을 살아가는데 크낙한 정신사의 의미로 자리매김 될 수 있을테니까.
나는 이번 제2차 「눈덮인 겨울만주기행」에서 과거 우리 민족이 이 혹한의 눈더미속에서도 질기게 살아왔다는 빛나는 정신사를 간파할 수 있었으며 지금도 그 후예들이 혹한을 이기며 살고 있는 강인함을 목격했다. 이렇게 추운 땅에도 사람이 산다는 것을 긍정할수 있었으니까.
또 나는 회한이 많은 사람인데 개인적 회한도 회한이지만 우리 민족 그리고 역사에 대한 회한도 남달리 지녀왔기에 이번 「겨울만주기행」이 내 인생의 큰 보탬이 되었다.
역시 많은 조선족 문인, 언론인, 방송인들이 반겨주었으며, 〈나〉 라는 개인인 한 존재가 무실하지는 않았구나 하는 확신도 서게 해 주었으니까 말이다.


한국의 어느 땅보다도 크고 넓어서 가슴이 쩍 벌어졌는가 하면 『내가 옛날에 살았더라면 ?!』 하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다.
하여튼 이 무더운 여름 「눈덮인 겨울만주기행」에 나를 따라오는 독자여러분께 드릴 선물은 눈덮인 땅에서의 인내를 보여주는 것이다. 산다는게 편안할수만 있는게 아닌 속에서 더 짜릿한 생에 대한 쾌감도 있다는 걸 말해주려 하는 것이다.

 

겨울 만주기행에서 오른 서지월 시인

◇인천항을 떠나며
첫 번째 「1만리 만주대장정」 때와 같이 인천 국제여객선 터미널로 가서 중국 단동으로 가는 배를 타게 되었다. 배안에서 일박을 해야하는 것도 그것이지만 만주땅 밟는 경로의 출발은 단동에서부터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그게 밟아가는 순서로 안성마춤인 것을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인천국제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30분, 중국 연변에서 와 한국에서 일년간 체류하고 있는 석화시인이 마중 나왔다. 어찌보면 자신의 나라 땅으로 내가 가니까, 이런 아이러니도 있나보다. 석화시인은 나의 나라땅에, 나는 석화시인의 나라땅에 오고 가는 거니까.


인천항 바닷물이 찼는지 〈동방명주호〉는 저녁 5시25분에 어김없이 출발했다. 시속 30km. 그러니까 배안에서는 눕거나 앉거나 걷거나 간에 전혀 흔들림없는 육지 위와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역시 붐비는 인파들은 인천과 단동을 오가는 무역상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창밖으로는 인천항의 불빛이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디딘 고국을 떠나 옛 고국에 발 디디려 가는 길이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