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詩壇]김창영 연작시-'서탑'

김창영 시 '서탑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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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탑. 51
여기 탑아래 서서 귀 기울이면 평안도 경상도 함경도 절라도뿐이 아닌 온갖 말씨들이 다 모여 꿍시렁꿍시렁 말씨잔치 벌린다
서울 가면 서울말씨 평양 가면 평양말씨 저들 끼리끼리 놀지만 여기서는 친구하며 다정하게 보낸다
언제 우리 여기 탑아래 모여 팔도 말씨자랑 벌리고 서울 평양에서 두분 특별 손님 모셔와 함께 더불어 사는 모습 보여주면 좋을까 몰라
서탑. 52
이 세상 살아가는 법 정해져 있을가마는 하늘아래 말없이 서있는 탑을 보면 참 희한도 하다. 무거운 가슴이 탁 틔이고 머리속 어지러운 생각들이 한곬으로 흐르고 그럼으로 새롭게 내 령혼을 깨우는 탑의 무언이 진실히 진실히 들리나니 "말 말어라 말 말어라 너의 말 나중까지 들어줄 이 이 세상엔 없으니 네 아무리 잘난체 하여도 진실로 진실로 너 알아주는 이 이 세상엔 없으니 자중하여라 그것으로 이 세상에 남는 길이니" 탑의 잠언 가슴에 피로 새기고 탑처럼 탑앞에 서서 다시 탑을 바라보면 탑은 여전히 말없이 참말로 말없이 서있을뿐
서탑. 53
하늘에서는 한낮의 해빛도 그렇고 어스름 달밤 별빛도 그렇고 저마다 주어진 시간에 탑의 어깨에 내려앉아 무언가 속삭이고
탑은 하늘의 뜻인양 오랜 세월 묵묵히 걸어온 서러운 길 가슴에 새겨넣고 하늘처럼 지상의 어느것 하나 자신에게 미치지 않아도 여유로운 그런 모습으로 담담하게 서있으니 이처럼 당당할 수가 없다
서탑. 54
--심양사람들
탑 아래서 해와 별의 이야기 듣는다
때론 "경회루"에 들려 두부 넣고 끓인 청국장 맛을 보고 "묘향산"에서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그려본다
탑속에 내 집 있는양 탑 아래 서면 몸과 맘 편안해지고 외출시에는 탑을 떠올리며 잠자리에 든다
언제부턴가 심양사람들 가슴속에는 탑 하나씩 서있다
서탑. 55
탑도 하늘아래이고 보면 나도 하늘아래여라
탑의 눈에 보이는것이나 나의 눈에 보이는것이나 모두 하늘아래여라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고 하늘아래 탑의 마음은 하늘처럼 무한하여라 탑아래 나의 마음은 탑처럼 무한하여라
서탑. 56
인제 또 언제 허물어지는 일 있더라도 리유도 묻지 말고 서러워도 말자 눈감고 생각마저 비우고 나마저 없는듯 없는듯, 또 무엇이 필요한가
나나 누군가 죽도록 생각해도 죽은듯 생각하지 않는것과 별 다름이 없으니 빈들이 쓸쓸한것 같아도 간혹 바람이 다녀가고 빈 하늘이 공허한것 같아도 있을건 다 있다
내가 굳이 이렇게 서있는것이나 이리로 오는 모든 이들이 나처럼 서있는것이나 나중 좋기는 그 서있는것조차 잊혀지는 일이니 인제부터 서러움같은것 더는 없어라
서탑. 57
탑심(塔心)을 먹고 메주 냄새 하얗게 피여나는 곳
입맛 없을때 보글보글 끓는 청국장 어머님 미소 환하다
서탑. 58
내게 누가 오나 안오나 그네들의 눈빛이나 마음 씀씀이가 내게로 미쳐오는것 아는듯 모르는듯 내 무심(無心)을 하늘이 내려다본다
하늘은 알고있을터, 오랜 세월 닦고 닦아 언제부터 자신을 닮아가는 내 마음을 그리하여 내 모습 내려다보는듯해도 하늘은 진실로 무심(無心)인것을
이제 참말로 누가 나를 찾는다해도 나와는 무관해서 할말이 없고 어떻게 나의 무심(無心)이 그들에게 전해져 하늘의 무심(無心)에 닿으면 좋을가 몰라
서탑. 59
--봉천극장*
할아버지 부름인가 봉천극장에 들어서면 검은 구름 낮게 드리운 거친 광야 어지러운 말발굽소리 아픈 가슴 때리고 한 세대 젊은 마음 피끓이던 《비판》*이 등불마냥 손저어 부른다 자리찾아 앉아 조용히 눈 감으면 수많은 청중들 비분속에 가슴을 울리는 한청*의 뜨거운 목소리 비구름 그친 새날 불러오고 나는 어느새 한청의 뒤를 따라 거친 광야 지나 오늘에 이른다
주: 1, 봉천극장, 지금의 민족영화관, 서탑의 진보인사들이 봉천극장에 자주 모여 일제침략을 반대하는 비밀행사를 가짐. 2,《비판》, 일제침략을 반대하는 내용을 실은 비밀잡지. 3, 한청, 조선의용군 선발종대장(군단장) 력임, 서탑에서 계몽교육을 받음.
서탑. 60
내 옆을 언듯 스쳐간 사람의 냄새도 내 가슴에 한가닥 향기로 남아 이 세상 살맛나게 하느니 우리 사는 법은 이처럼 서로서로 손잡고 하나처럼 더불어 산보고 하늘보고 하다가 갈때는 나만 홀로 없는듯 가는 것으로 참으로 지극히 좋은 날을 남기는것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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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評>김창영 시<서탑>이 갖는 의미
ㅡ민족정서의 승화

徐 芝 月 (韓國詩人)
김창영시인의 놀라운 시세계가 바로 <서탑> 연작시이다. 한 편의 시가 다 말해줄 수 없는 시대적 상황적 또는 정서적인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는데 <서탑> 연작시가 큰 울림울 안겨주는 것이다. 어느 민족이나 그 민족이 갖는 고유정서 즉 고유문화가 있기 마련이며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따라 잊혀지기도 하며 상실되기도 한다. 문제는 문학작품에서 깨어있는 정신이 강조되는데 깨어있는 정서란 민족혼 또는 그 숨결을 동반할 때 가능하리라 본다.
그냥 일상적인 상황이나 담론의 성격이 아닌, 단순한 존재론적인 접근이나 단상이 아닌, 그러면서 감성적인 희노애락을 넘어서서 <서탑> 연작시가 던져주는 의미는 민족정서 그 혼의 승화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서탑> 은 어떤 곳인가. <서탑>이 부여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김창영시인의 의해 <서탑>은 이제 <서탑> 그 자체가 아닌 그 우위의 정신사로 자라잡고 있는 것이다.
<서탑.51>에서 잘 말해주고 있는데 서탑은 '평안도 경상도 함경도 절라도뿐이 아닌 / 온갖 말씨들이 다 모여 / 꿍시렁꿍시렁 말씨잔치 벌'이는 곳이다. 즉 1945년 8.15 해방 전 한반도에서 건너간 조선민족들이 터를 잡아 살아온 곳이 아니던가. 또한 시인은 <서탑.52>에서, '이 세상 살아가는 법 정해져 있을가마는 / 하늘아래 말없이 서있는 탑을 보면 / 참 희한도 하다. 무거운 가슴이 탁 틔이고 / 머리속 어지러운 생각들이 한곬으로 흐르고 / 그럼으로 새롭게 내 령혼을 깨우는 / 탑의 무언이 진실히 진실히 들리나니'라 읊고 있다. 그것이다. 조선민족들이 터를 잡은 상징적인 지명 다름아닌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때론 "경회루"에 들려 / 두부 넣고 끓인 청국장 맛을 보고 / "묘향산"에서 찔레꽃 붉게 피는 / 남쪽 나라 내 고향 그려본다'(<서탑. 54>) 고 읊고 있다. 이 모두가 거부할래야 거부할 수 없는 조선민족의 삶의 체취이며 정서인 것이다. 시인은 '탑속에 내 집 있는양 / 탑 아래 서면 / 몸과 맘 편안해지고 / 외출시에는 탑을 떠올리며 / 잠자리에 든다'(<서탑. 54>) 고 했는데 참으로 설득력 있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심양사람들>이란 심양 서탑부근에 터잡아 살아온 조선민족 그 후예들을 일컫는다.
연작시 <서탑. 55>에 보면, 통찰력이 돋보이는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탑도 하늘아래이고 보면 나도 하늘아래여라
탑의 눈에 보이는것이나 나의 눈에 보이는것이나 모두 하늘아래여라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하늘아래 탑의 마음은 하늘처럼 무한하여라 탑아래 나의 마음은 탑처럼 무한하여라
ㅡ김창영 시 <서탑. 55> 전문.
<탑>과 <하늘> 그리고 <나>와의 상관관계를 탁월한 상징성으로 잘 설정한 작품으로 꼽히는데 그 모두가 무한한 영원성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하늘 아래 모든 만물과 형상이 평등하듯 우주인 하늘은 영원한 것이며 따라서 조선민족의 상징인 서탑이나 조선민족의 혼 역시 영원무궁한 것이리라는 것이다.
<서탑. 56>에서 확인되는 절창 중의 한 대목으로 꼽히는데, '빈들이 쓸쓸한것 같아도 간혹 바람이 다녀가고 / 빈 하늘이 공허한것 같아도 있을건 다 있다'는 표현에 놀라움이 여기에 있다. 이게 바로 하루이틀이 아닌 수많은 날들을 뿌리박고 살아온 질경이같이 질긴 습성을 가진 조선민족의 정신사 아니겠는가.
<서탑. 59> 의 특징은 정서나 사상성으로 일관해 읊은게 아니라 <봉천극장>을 통해 보주는 민족사의 구체적인 한 면모기 그것이다. 시인이 <주>에서 밝히고 있듯이, 지금의 민족영화관인 봉천극장에서 진보인사들이 자주 모여 일제침략을 반대하는 비밀행사를 가졌는가 하면, 일제침략을 반대하는 내용을 실은 비밀잡지를 발간했으며, <한청>이라는 조선의용군 군단장이 활약한 독립운동 근거지였음이 서려있는 현장으로 자리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탑이 갖는 문학적 우수성도 증명이 되지만, 김창영시인 특유의 노련한 문장구가는 아마도 이제까지의 중국 어느 조선족시인들 작품 속에서 쉽게 발견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세련된 문장구가와 더불어 담담한 문체가 끌어안고 있는 심도있는 표현은 가이 놀랍다 할 수 있는데, <서탑. 60>에서도 확인된다.
내 옆을 언듯 스쳐간 사람의 냄새도 내 가슴에 한가닥 향기로 남아 이 세상 살맛나게 하느니 우리 사는 법은 이처럼 서로서로 손잡고 하나처럼 더불어 산보고 하늘보고 하다가 갈때는 나만 홀로 없는듯 가는 것으로 참으로 지극히 좋은 날을 남기는것이리
ㅡ김창영 시 <서탑. 60> 전문.
보라, 발 딛고 서탑을 지키며 살아가는데 살맛나는게 '내 옆을 언듯 스쳐간 사람의 냄새'까지 '가슴에 한가닥 향기로 남'는 것이라 했다. 의미심장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웃이 모두 동질의 민족으로 인식되는 구절이다. 뿐만이 아니다. '서로서로 손잡고 하나처럼 더불어 / 산보고 하늘보고 하다가 / 갈때는 나만 홀로 없는듯 가는 것'이지만, '참으로 지극히 좋은 날' 즉 이 서탑거리에서 민족과 역사와 더불어 곧건하게 보람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서탑거리의 조선민족의 삶의 방식이며 질기고 강한 민족애와 혈육애를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김창영시인의 찰진 문장구가와 언어구사능력은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 하리라 본다. 왜냐하면 문학작품은 견고해야 하며 숭고해야 한다. 그리고 문장이 제대로 앉힐 때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대개의 문학작품들이 토로위주이거나 표방하거나 희열 또는 한탄에 그치는데 비하여 김창영의 시는 조금도 탈선이 보이지 않는 견고한 이미지 싱싱한 상상력 그리고 자연이나 사물 역사나 시대 상황 등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이유도 여기 있는 것이다. (2009년 4월 15일 새벽 05시 17분 집필/한국 서지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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