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시/김문혁

노을이 색깔을 잃었다
한 그루 늙은 느티나무
하늘을 받치고
짜증없이 버티고 서 있다
고독의 리유는
하늘만이 알고 있다
하나, 둘, 셋, 넷......
부질없는 셈세기엔
한기가 가득하다
숨막히는 어둠의
헛기침이 어지럽다
저기 저 멀리
이름 모를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다.
"중국 흑룡강신문 신인문학상 수상작"
이름 모를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다.
"중국 흑룡강신문 신인문학상 수상작"
【시 평】
'황혼'에 대해 쓴 시이다. 왜 이말을 하는가 하면 '황혼'에 대해 썼는데 거기에 실제의 '한 그루 늙은 느티나무'가 존재하는 것이다. '황혼'과 '한 그루 늙은 느티나무'가 동일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좋은 비유가 된다. 그 '한 그루 늙은 느티나무'가 '하늘을 받치고 / 짜증없이 버티고 서 있다'라고 아주 좋은 표현을 하고 있다. 이런 경우 '짜증없이'가 설명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수많은 세월과 비바람 속에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고고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혼자서 그렇게 살아가는데 그 늠름함의 자태(고독의 리유)는 '하늘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하나, 둘, 셋, 넷......
부질없는 셈세기엔
한기가 가득하다
비록,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서 기온이 내려가 춥기는 하나, 그건 하루이틀 버티온게 아니라는 것이이다. 어둠이 밀려와서는, 깡그리 덮어버리는데 '숨막히는 어둠의 / 헛기침이 어지럽다' 이런 표현도 아주 좋다. 마지막 연이 잘 처리돼야 한 편의 시로 품격이 더욱 잘 살아나는데 그게 바로, 자신과의 비유인 '저기 저 멀리 / 이름 모를 한 남자가 /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름 모를 한 남자'는 김혁시인 자신이 될 수도 있으며, 또는 <느티나무>가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 지키고 있는 부동적인 존재라는 것과 인간인 '이름 모를 한 남자'의 유동적인 존재와의 비유가 되는데 인간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고 없어도 <한 그루 늙은 느티나무>는 자신의 그 터전을 굳건히 지키는 증표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굉장한 의미를 가진 시가 되는 것이다. 시란 묘한 매력이 있는 것이어서 제목도 '황혼'이며 황혼을 위주로 읊었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그루 늙은 느티나무'에 대해 존재론적인 접근방식으로 쓴 작품이라는 것이다.
(한국 서지월시인/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