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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시'<자연사랑>서지월 시-'적막한 생각' 외
아미산월
2009. 4. 16. 06:55
[영상시'<자연사랑>서지월 시-'적막한 생각' 외

* 적막한 생각 - 서지월
하늘은 푸른 대로
바람은 부는 대로
구름은 흐르는 대로
미류나무 이파리는 물 푸는
소리 내는 대로
내 사랑도 조금씩은 자연스러운 대로
그렇게 왔으면 좋겠다.
물과 친하듯이
마음은 늘 푸르면서
꽃송아리같이 붉게 물들기도 하면서
한 하늘과 땅 얻는 기쁨 누리고
한 바다와 山 사랑하는 법 익히고
그러면 무엇이 남는가
해지는 일과 깊은 어둠 오는 일
낙엽지는 일과 生活을 갈무리하는 일,
천장 보고 누워서 철학하는 거야
밤마다 나무들이 하늘 향해
참회의 모습 짓듯이
山돌처럼 누워서 눈물 없는 꿈 꾸는 거야
* 백도라지꽃의 노래 - 서지월
내 마음 알리 뉘 있으리.
말(馬)은 천리를 가고 물은 만리를
흐른다 하나, 길을 가다가
客死한 사람들의 발자국 이미 지워진지 오래
무덤 위에 핀 무덤꽃같은
흰옷 입고 입 맞추는 바람꽃 같은
내 마음 속 깊은 뜻 뉘라서 알리.
오직 말 못하는 죄 하나로
코 박고 살아도 지나간 천년의 세월
서럽다 생각하기 전에
꽃대궁 밀어올려 말없는 잠
長天에 풀어내는 것을
어이타 나를 두고 떠나시는가
어느 집 문간에는 적막을 깨뜨리는 哭소리
차마 투정하듯 바라볼 뿐이네.
* 빨랫줄에 흐르는 한낮의 햇살 - 서지월
더러는 비워두고 갈 마련이다.
아침 풀잎 위에 맺힌 이슬 털어내고
달려온 바람의 빈터에
흰 모빌밭과 옥양목 출렁이는 江을 거슬러
만난 햇살,
하늘 한자락씩 켠켠히
내려와 앉은 마당가 가로쳐진 빨랫줄
질긴 목숨인 양 바지랑대 꿋꿋한 꿈을 꾼다.
삶의 한낮에 부풀어오르는 구름의 포말
가벼워지고 옅어지는
빨래를 보면 햇살 가득 빨랫줄에 넘쳐나고
목마른 자의 눈길로 오색 꽃무늬 흩어지는데
배고픈 시간의 고동소리 들으며
빨랫줄 타고 다시 긴 江은
내 옆구리를 돌아 흐른다.
* 問喪 가는 길 - 서지월
살아있는 날들이 마늘 같이 매운 때
바람이 내어준 길 따라 간다
옷깃에 달라붙는 건 도깨비풀씨가 아니라
등줄기 타고 흐르는 땀이다
앞서가는 건 나, 뒤돌아 보면
내 모습 닮은 그림자 하나
어디 숨었다가 나온 검은 그림자 하나,
살다보면 거슬러 오르는 날도 있거니
하고 언덕 넘으면
냇물은 낮은 곳으로 제 갈 길 간다
구름은 왜 닿지 않는 내 머리 위에서 맴도는지
그 생각마저 잠시 뿐
내리막길 지나 人家에 닿으면
수십 번 지나다녔을 법한 낯익은 골목들
아가리 벌리고 짖어대는 개들처럼 맞아주는 것을
나 이미 알았었지만
오늘은 가진 것 모두 버리고 와
哭소리 들리는 大門 들어선다
* 가을나무가 비에 젖고 있다 - 서지월
뒷산 수풀에 일제히 찬바람 듣는가 했더니
오늘은 가을나무가 비에 젖고 있다
속절없이, 때 맞추어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에
두 귀 쫑긋 세우며 넘쳐나는
저 그릇의 우수를 본다
징역시간은 또 얼마나 빛나는 보석으로 갈무리 될지
늘 그랬듯이 나는 꿈속에서 보았던
사람의 머리카락 흩날리는 방향을 좇아
예까지 흘러왔건만
문 밖에는 잎이 지는가 했더니
이제는 가을나무가 꼼짝없이 비에 붙들려 있다
자리 털고 일어나 丑方을 보라
눈 뜬 가지와 눈 감은 뿌리 사이
海溢이 몰려오고 있지 않은가
싸늘한 접시 위에 놓여 있다
* 江물과 빨랫줄 - 서지월
오늘도 어머니는
강물을 훔쳐 와
한 자락씩 줄에 너신다.
누런 호박오랭이 썰어 말리듯이
정면으로 부딪쳐 오는 것이지만
얼굴 없는 바람은
부뚜막 위에서 불고
장독대를 넘어와
어머니의 허이여신 머리칼 위에도
분다.
화해를 위해
세상의 이쪽과 저쪽의 분별을 위해
두 귀 바지랑대는
생명의 줄을 튼튼히 받치고 있다.
우리의 祭器, 祭器 같은 것.
낮달이 조을고
젖은 빨래의
그 휴식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파란 하늘은 아득히 멀고
나는 왠지 눈물이 핑 돈다.
* 기다림 - 서지월
맨드라미 붉은 꽃대궁에 가을바람 드니
문살에 비치는 햇빛이 아름답다
여름내 기다리던 사람 다시 오려나
텃밭의 고추가 꽃처럼 예쁘다
보이지 낳는 길 위에 누가 바람을 흩뿌려
청명한 귀뚜라미 울음 올올 엮는가
눈부심의 한 소절씩 눈물 퍼내고
끝내 돌아서고 말 일이라면
서리 가마귀 높은 하늘 위
달은 차갑게 내리비치겠지만
먼 山들 툭툭 잠을 털고
잠자리떼 빙빙 머리 위 도는 것 보니
분명 올 것은 오리라는 기다림 속에
마음은 텃밭의 고추처럼 더욱 붉다.
* 꽃은 왜 피나? - 서지월
꽃은 왜 피나
밝은 세상 향하여 꽃 피고
어두운 세상 향하여 지는 것을
꽃들은 알고 피나?
꽃이 피어 흐트러졌을 때
아니, 자신의 목 디밀어
세상에 내어놓았을 때
저들끼리 주고받는 말
아무도 들을 바 없는데
왜 꽃은 지면서 끝내
저들끼리 말하고
저들끼리 상여매고 훌훌 떠나는가?
* 꿈에 본 여인 - 서지월
꿈속에서 보았었네
횡단보도도 아닌데 나를 보더니만
중앙선을 가로질러 걸어오고 있는 저 여인!
아, 몇 해만인가 내 생에서
해란(海蘭)이 피고 지고 피고 지기를 거듭한 세월
우두커니 서 있는 나는
뜬구름의 세월에 얹혀서 늘
그늘진 삶 살아왔거늘,
세상은 바람만 불고 어디로도 통하는
길은 보이지 않았네
아, 사랑이란 이렇게 중앙선 가로질러
오는 것을 이미 하늘은 아시어
햇빛도 내리시고 가로수들도
질서정연하게 지켜보고 있는 것을!
* 내 나이 마흔넷의 가시덤불 - 서지월
사나이 가는 길에 가시밭만 있을소냐
꽃밭고 있다는 친구 옛말
온데간데 없이 뒤엉킨 가시덤불
시냇물이야 철따라 흘러가면 그뿐
땅 속에 뿌리박고 꼼짝없이 붙들려서 살아온 나는
밑둥은 가리워져 그런대로 지낸다 치고
줄기부터 뻗어나온 갈래길마다
돋아나서 굳어버린 앙증맞은 표피
오도가도 못한 상흔 이것말고도
바람과 굴뚝새 꿰고 가는 가시덤불
차마 걷어낼 길 없으리
* 눈이 옵니다 - 서지월
바람이 불고 간 그대 뒤쪽에서
눈이 옵니다.
그대 앞쪽에 내리지 못하고
그림자 뒤에 쌓입니다
굳은 돌 같은 남자의 시렁 위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언제이던가 잎담배를 피워물면서 물면서
걸어가던 길 위에
강물처럼 차오르고
포말처럼 밀려오던
눈 맑은 새떼들이여,
바람이 불고 간 그대 뒷쪽에
눈꽃은 피고
살얼음 같은 천지사방에 그리운
눈이 옵니다.
* 달아 달아 밝은 달아 - 서지월
닳은 손톱 밑에
밤이 내리면
밤이 내리면
이슬 젖은 달아,
모밀꽃 하얀 숲 속에서 뒤돌아보며 뜨는 달아.
부서지는 물살
얼굴 씻고 뜨는 달아.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바라보는 달아, 달아.
* 돌아오지 않는 江 - 서지월
섬돌밑에 귀또리도 천년을 울고
시렁 위의 달빛도 천년을 내리비추건만
밤은 늘 검은 역사로 흐르고
끝내 돌아오지 않는 江의 머리맡으로
흰수건 동여매고 드러누운 모밀밭
참 희기도 해라
눈물이 마르면 새 눈물이 길을 여는
밤쑥꾹새 울음소리 천리를 가다
* 실크로드 - 서지월
내 삶이 사막이거늘
낙타가 다가와서 등을 낮춰도
올라 탈 수 없네
내 몸이 사막의 모래알갱이거늘
굴러봐도 모래알갱이들 뿐
내 마음이 바람이거늘
떠서 흘러도 닿는 곳은 역시
사막이네
-사막 2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와
낙타의 등에 실려가는 짐보따리와
내려다보고 있는 하늘의 해와
비켜주고 있는 길의 마음과
뒤따라 올 채비하고 있을
뱃속의 아기 꿈틀대는 발길질과
모여서 즐거운 모래 알갱이들
옷가지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저들끼리 터전 이룩했으니
세상에 부러울 것 없어라
-사막 3
내 마지막 가 닿아야 할 곳은
조금도 서러울 것 없는
근사한 명분의 땅 실크로드이리
모든 살아있는 것들 마침내 풍화하여
모래알갱이로 웅얼거리고 있을 뿐
어디에도 비단은 널려있지 않는 땅
비단을 실은 낙타는
힘겨운 발자국 남기며
자신이 걸어가야 했던 운명을
하늘의 해에 맡겼을 뿐
그 어디에도 낙타의 무덤 뵈지 않는
그가 남긴 이름만 근사한 땅
내 마지막 걸어가 닿아야 할 곳!
* 명사산(鳴沙山) - 서지월
모래가 바람에 날려서
해 중천에 걸린 대낮인데도
모래가 가만 있질 못하고
이제는 저쪽에서 이쪽으로 쓸린다
그걸 보고 있는 나는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하고
탄성 질러보지만
돈황에서 그리 멀지 않은
鳴沙山 모래바람에 사람들은
수건 둘러쓰고 선그라스까지 낀 채
어디서 온 짐승인지 구분되지 않지만
나는 그 모든 것 뿌리치고
이가림 선생님이 사서 하나 건네 준
밀짚모자만 눌러쓰고
鳴沙山 오르면서 모래가
이빨 사이로 씹히기도 했지만
아, 저기 저 옥비녀 같은 월아천
내 애인의 얼굴이 아른아른 비치며
왜 함께 오지 않았느냐고
눈썹달 모양을 하고 누운 채로
사르르사르르 눈웃음 치더라니까!
* 심심한 하루 - 서지월
나비가 날으지 않으니
심심한 건 꽃,
바람이 불지 않으니
심심한 건 나뭇잎,
아무도 지나가지 않으니
심심한 건 길,
이런 것들 앞에서
비가 오지 않으니
심심한 건 나,
땅위의 모든 것들이
심심한 건
그렇다,
휴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 꽃 - 서지월
저들이 왜 저렇게 서 있기만 하는지
내가 골목길 빠져나와
바다에 다다랐을 때도 몰랐네
하늘이 가르쳐주지 않아
구름이 몰려와 비가 내려도
푹 젖기만 하고 끝내
아무 말 없는 저들이
왜 저렇게 서 있기만 하는지
내 애인은 멀리 떨어져서
풍문도 보내오지 않는 요즈음
밥숟갈을 들다가도
이게 아닌데 이게 사는 게 아닌데
하고 염세주의의 선봉장 쇼펜하우어를
떠올리며 내 생각을
간추려 보기도 하지만
왜 저들이 저렇게
시간과 역사가 지나다니는 길목마다
우두커니 서서 머물러 있는 것 같은 혼들을
내게 보내주지 않는지 알 길 없었네
* 두보가 말하기를 - 서지월
杜甫가 말하기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시를 쓰지 못할 바엔
어찌 시인이라 일컬을 수 있으랴
했다는데, 나는 이 말을
중국 장강삼협에 가서 어느 숲 속에서 울어대는
뻐꾹새 소리 귀로 듣고 알아차렸던 것이다
하필이면 杜甫가
왜 그런 말을 했겠는가 생각해 보면
세상사의 평범한 일상 뛰어넘는 재주 가진 자가
시인이라는 걸 일컫는 시인지상주의 그것 아닐까
막중한 사명과 임무를 가진 시인이거늘
인생을 그냥 즐기려 들거나 스쳐 지나가는 시간
헌신짝처럼 내버려두면 아깝다는 것이거늘
내가 장강삽협 기행에서 어느 기념품점 벽에 걸린
杜甫의 초상을 내 것으로 하여
가져와 서재에 걸어놓고 늘 눈을 들어 보고 있는 것 또한
杜甫의 높은 정신사에 가까이 닿아보려는
몸짓 아닐지
* 도라지 밭둑을 지나와서 - 서지월
도라지꽃 피어서 저희들끼리
한가로운 도라지 밭둑을 지나와서
이제는 소 먹이던 아이의
발자국 소리도 뚝 끊어져버린 산길에
바람은 불어와 힘껏 쳐다보더니
이네 저기 저 솔숲으로 사라진다
남은 건 나하고 머리 위에 얹힌 흰구름
내 아버지 생전의 허이여신
머리카락 같은 흰구름
젊은 날 새소리는 어딜 갔나
진달래 꽃잎 따서 띄우던
시냇물 소리는 어디 가서 멎었나
내려다보이는 마을에는
아이들 책가방 메고 하교하는 풍경들,
산등성이 너머론 은빛 여객기 하나
손 휘저으며 북쪽으로 날아간다
http://deoinga.egloos.com/3825163 에서 퍼옴
* 심심한 하루 2 - 서지월
바람은 불려다 말고
나루터 사공도 노 저으려다 말고
강물에 비친 하늘의 흰구름 역시
떠가려다 말고
저기 저 들깨밭 매는 아주머니
등에 업힌 아기도 울려다 말고
마주 뵈는 강둑의 패랭이꽃
건너오려다 말고
강물살도 흐르다 말고
전봇대의 입간판도 말하려다 말고
산불조심 관리요원 오토바이 뒤에 꽂힌
붉은 깃발도 나부끼다 말고
* 우리 모르는 사이 - 서지월
우리 모르는 사이
인적 끊인 어느 산길에 버려진
벌레 한 마리
쓸쓸히 숨 거두고 있을지 몰라
우리 모르는 사이
저홀로 벤치 위에
아무 생각없이 떨어져 누워
하늘 바라보는 나뭇잎 한 장
그도 잊혀진 옛 애인처럼
영원의 잠속으로 빠져들었는지 몰라
우리 모르는 사이
밤이 걸어서 지나가고
내 몸에서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날숨소리, 그것들도
어디선가 사막을 이뤄
낙타들 줄지어 터벅터벅 걸어가게 하는지
나는 아직 몰라
우리 모르는 사이
중심에서 한 점으로 이탈하는 모든 눈물들
흩어져가는 그들 뒷모습만
아련히 바라볼 뿐
나는 나를 잘 몰라
* 絲綢之路 詩篇 - 서지월
사막의 길 1
참 많이도 모여 사는
그들만의 세상이 여기 있을 줄이야
어릴 적 내 입안에서 씹히던
모래소리가 긴 세월을 두고
모두 이곳에 와서 웅얼거리며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 나무대세지보살마하살……
어디선가 經을 외는 소리 들려오고
나는 지금 서역으로 가고 있다
내가 낙타의 등이 되어
터벅터벅, 씹히는 모래소리와 함께
우린 오랜 친구처럼 만나
정답게 가는 길
하나뿐인 하늘의 해가 가리키는
저 눈부신 天國,
공중에 떠서 흐르는 가벼운
몸뚱아리들 모두 함께 가는
분주하지도 않는 길이다
사막의 길 2
내 발바닥 꺼칠꺼칠한 게
어쩌면 낙타가 사막을 쉬임없이 걸어온 것처럼
물 한 방울 스밀 데 없어라
그처럼 하늘은 매냥
모래바람만 불어온 듯도 하거니와
갈 길 먼 낙타처럼 가다가
쉬어갈 때도 있거니 하면서
이제는 옆이나 뒤로 눈 돌릴 게 아니라
무작정 앞을 보며 걸어가는 것도
상책이려니 생각해 보는 것이다
* 겨울 나무들의 시간 - 서지월
잠시 머리 위 별을 얹고 생각해 보면
너무 멀리서 온 느낌
그러나 흐르는 물소리의 장단처럼
세상 밖은 온통 허기진 길들의 행렬
가야할 시간이 많지만
여기 붙들려서 이정표처럼
침묵해야 한다
오로지 몸안에는 젖은 섬유질뿐
벌레 한 마리 살지않고 새들도
열국(熱國)을 향해 떠난 지 오래다
바람만 불어도
움켜쥔 흙 더욱 단단히 움켜쥔 채
사방을 휘휘 둘러보는 일
하늘이 눈까풀 내린 캄캄한 밤에도
등 기대며 따스한 체온은
우리들끼리 느낀다
늘 비껴가는 행인들의 발목끝에 나앉아
쓸쓸히 밀려나는 우리들
그들이 땅을 울리며 사라져 간 만큼
따라갈 순 없지만
길을 여는 일 무겁지 않다
목 어깨 팔 옆구리 기지개 켜면
해와 달은 하나씩 머리위에 얹혀
우리를 셈하며 지나가지만
봄이 올 때까지
빈 산의 잠언(箴言)을 들어야 한다
* 꽃이 되었나 별이 되었나 - 서지월
너와 내가 만나서
꽃이 되거나 별이 되거나
일단은 은빛 여울을 하나 사이에 두고
조약돌을 던져 봐야겠다
튕기는 물방울이
너의 앞치마에 닿거나
나의 가슴에 쏟아질 때
비로소 실한 징검다리로 길을 열어선
그 한 가운데 돌 위에 서 봐야겠다
함께 서다가 쓰러질 땐
바람으로 쓰러지듯
가장 강한 힘으로 부둥켜 안고
흐르는 여울에 빠져 봐야겠다
옷 다 적셔
옷 다 말리는 오후의 배고픈 때
너와 나
꽃이 되었나 별이 되었나,
서로의 내부에서 확인해 볼 따름이다
* 꽃의 시간 - 서지월
내가 쉬고 있는 시간의 하염없는 꽃의 떨어져 내리는 행위에 대하여 누가 말해보고 싶다면 이는 바람이 부는 것과는 달리 우주가 힘을 다한 탓 아닐까, 그 꽃들과 나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침묵으로 답할 수밖에 없는 고통을 누가 알고 곁에 와 발 걸어줄 것인가.
구천의 물소리가 저대로 흐르고 우리가 언젠가 이뤄야 할 믿음에 대한 확신보다도 더 아스라히 멀어져감에 부지런히 꽃은 떨어져내리고 시간은 영 멈춰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될지 몰라.
잉잉거리는 피의 순환처럼 아름답고 탐스런 꽃이여 너를 불러앉혀 인제 나는 무작정 쉬기로 한다.
* 서지월 시인, 장백산 세계문학상 수상/ 시<백도라지꽃의 노래>외 5편
[오마이뉴스 2003-01-14]
질긴 민족서정시를 줄곧 써오며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서정시인인 서지월 시인이, 중국 길림성의 대형문예잡지 '장백산'이 주관한장백산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는 오탁번 시인(고려대 교수, 계간 시전문지 <시안> 주간)에 이어 서지월 시인이 두 번째 수상시인이다.
'장백산'은 길림성 민족사무위원회에서 관할하는 잡지로서, 중국의 우리말 간행물 가운데서 유일한 성급 대형문학지이다. 1980년 5월에 창간되어 22년을 내려오면서 중국 조선족 문학창작의 발전과 번영을 위하여 커다란 기여를 했다.
지난 2002년 12월 21일 중국 길림성 장춘시 동향호텔 대회의실에서 <長白山文學賞> 시상식이 열렸다. 수상자인 서지월 시인은, 이날 중국에서 간행된 수상시집 '백도라지꽃의 노래'(<白桔梗花之歌>, 료녕민족출판사)를 증정 받았다. 이날 한국 측 초청시인으로 김은결 시인과 정경진 시인이 참여했다.
'장백산모드모아문학'(세계문학상 부문)에 서지월 시인의 시 '백도라지꽃의 노래'가 된 것은 문학상의 경제후원을 중국 조선족기업가인 광주모드모아그룹 리성일 이사장의 도움으로 이뤄졌기에 상의 이름을 '장백산 모드모아문학상'이라 한 것.
이곳에서 선정되는 작품은, 겨레문학의 만남의 장으로서 2000년부터 중국 조선족 작가뿐만 아니라 세계 우리 민족 문학인이 중국과 관련되는 소재로 쓴 작품도 수상의 대상으로 하였다.
심사위원들은 "작자는 한국에서 시 창작 활동과 신인양성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는 시인으로서, 그의 중국 기행시는 흘러간 역사와 현실에 대한 깊은 감회와 생활 맛이 물씬 풍겨오는 언어로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장백산'은, 남영전 시인이 사장 겸 주필을 맡고 있는 격월간 대형문예잡지로 만주 일대의 조선족문학을 대변하는 역량 있는 대표적인 문예잡지다.
문학 분야 전체를 총망라해서 다양하게 작가들의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쳐 보여주고 있는데, 소설특집·시 특집·세계문학·이야기집·평론·미술촬영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 '한국시 특집'도 마련하고 있는데 한국시단과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끌고 있다.
서지월 시인은 '장백산' 문예잡지 2000년도 3기와 2001년 6기에 각각 시가 발표되었는데 2001년 6기(2001년 11월∼12월호)에 수록된 시 '백도라지 꽃의 노래' 외 5편이 2002년 '장백산문학상' 해외문학상 수상자에 선정된 것.
"우리 민족의 강인한 속성을 지닌 도라지꽃에 대한 애착도 애착이지만, '백도라지꽃의 노래'라는 내 시가 수상작으로 뽑힌 데 대해 이 인연이 내 생에서는 대단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필코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학창시절부터 우리 민족의 역사와 얼에 대해 늘 애착을 가졌습니다. 시인이 되고 나서도 늘 머리맡에 맑은 냉수 한 그릇 떠 놓듯 만주 땅에 대해 굉장한 매력을 갖고 있었지요."
서지월 시인은 이러한 민족애가 스며든 문학에 애착을 가지던 시절부터 써왔던 시를 묶어 시집 <素月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시와 시학사>간,1994)를 내 바 있다.
"고구려의 터전인 만주 땅에 첫 발을 디딘 것은 1998년 여름의 일이었다. 그 후 몇 차례 다녀오며 더욱이 꿈 속에서도 잊지 못할 확고한 나의 정신사가 되었던 것이다. 그때 쓴 시가 <黑龍江에서 부르는 노래> 연작시인데, 몇 번 더 탐방하고 나서 한 권의 시집으로 묶을 요량이다. 수상시집 <백도라지 꽃의 노래>까지 조선어(중국소수민속어)로 간행해줘서 중국문단에 선보이게 된 일에 대해서 장백산문예잡지에 대해 더없이 감사하고 기쁩니다."
전화 인터뷰에서 들리는 구수한 대구 사투리는, 한복차림에 개성 강한(?) 머리 스타일이던(부스스하고 하늘로 뻗친) 서 시인의 모습을 저절로 떠오르게 했다.
1955년생인 서지월 시인은 대구 달성에서 출생해 1985년 <심상>신인상에 시 '겨울 信號燈'으로 문단에 나섰다. 1986년 6월, <아동문예> 신인문학상 동시 '바람에 귀대이면', 1986년 8월, <한국문학> 신인작품상에 시 '朝鮮의 눈발'을 잇달아 당선돼 전업작가의 길을 걸어왔으며, 대구시인학교를 운영해 후학양성에도 힘써 많은 시인들을 배출했다.
시집 <꽃이 되었나 별이 되었나>(1988, 나남출판사) <江물과 빨랫줄>(1989, 문학사상사) <가난한 꽃>(1993, 도서출판 전망),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1994, 시와 시학사), <팔조령에서의 별보기>(1996, 도서출판 중문) 등을 출간해 부지런하고 활발한 작품활동을 벌였다.
현재 경주대학교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 주임교수이며 MBC문화센터 문예창작강좌 초빙강사, 현대시창작 전문강좌 <대구시인학교>지도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백두산에서 흘러내리는 삼형제 강!
서으론 압록강, 북으론 송화강
동으론 두만강이다
백두산할아버지는 압록강과
송화강 두만강 삼형제를 길러
길이길이 백의민족 역사
뻗어가라고 잘 길러 내었지
그 강가에서 목 놓아 울기도 했으며
말 달리기도 했건만
아버지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들,
어디로 가 엎드리었고
들풀만 돋아나 아우성같이
흔들리고 있는가
금 그으며 날아가는 새들의 날개짓
힐끔 내려다보곤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가는 구름송이
그 어느 것에도 마음 달래 수는 없었다 / (<三兄弟 江> 전문)
백두산에서 발원해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압록강과,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두만강, 그리고 만주 땅 전역을 통과해 흑룡강과 만나 동해로 흘러드는 송화강을 두고, 웅장했던 역사의 허무를 의인화해서 아픔을 노래하고 있는 '三兄弟 江'은, 시인이 민족의 뿌리를 내려 오천년 한민족 역사의 강으로 바라보고 있다.
"민족의 혼과 얼을 지키기 위해선 역사의식을 끊임없이 발휘해 시로 녹여낼 것입니다. 잃어버린 옛 땅에 민족의 혼이 남겨져 있고 이를 찾기 위해 나서는 나그네의 마음은 엄마를 찾는 그리움과 비교될까요?"
끈질기게 민족서정을 추구해온 서지월 시인의 말에서 그의 모습처럼 투박한 모습으로 (민족의) 혼불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서지월
1955년 대구 달성 출생
대구대 사범대학 국어과 졸업.
1985년 심상으로 등단, 아동문예 신인문학상 수상
1955년 대구 달성 출생
대구대 사범대학 국어과 졸업.
1985년 심상으로 등단, 아동문예 신인문학상 수상
시집 <꽃이 되었나 별이 되었나> <강물과 빨랫줄> 등
노원희 그림 ... 땅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