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창작전문강좌-대구시인학교/대구시인학교 시단

[문예시대](2008.봄)<시인포커스>서지월 시-''가난한 꽃' 외9편

아미산월 2009. 4. 9. 02:14

[문예시대](2008.봄)<시인포커스>서지월 시-''가난한 꽃' 외9편


<1>가난한 꽃
<2>江물과 빨랫줄
<3>첫 뻐꾸기 울음소리
<4>파냄새 속에서 
<5>푸른 하늘의 뜻은
<6>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
<7>비슬산 참꽃
<8>韓國의 달빛
<9>朝鮮의 눈발
<10>밥그릇


가난한 꽃


서 지 월 


금빛 햇살 나려드는 산모롱이에
산모롱이 양지짝 애기풀밭에
꽃구름 흘러서 개울물 흘러서
가난한 꽃 한 송이 피어납니다.
나그네가 숨이 차서 보고 가다가
동네 처녀 산보 나와 보고 가다가
가난한 꽃 그대로 지고 맙니다.


꽃샘바람 불어오는 산고갯길에
고개 들면 수줍은 각시풀밭에
산바람 불어서 솔바람 불어서
가난한 꽃 한 송이 피어납니다
행상 가는 낮달이 보고 가다가
동네 총각 풀짐 놓고 보고 가다가
가난한 꽃 그대로 지고 맙니다.



江물과 빨랫줄


서 지 월 


오늘도 어머니는
강물을 훔쳐 와
한 자락씩 줄에 너신다.
누런 호박오랭이 썰어 말리듯이


햇빛은 항시
정면으로 부딪쳐 오는 것이지만
얼굴 없는 바람은
부뚜막 위에서 불고
장독대를 넘어와
어머니의 허이여신 머리칼 위에도
분다.


하늘과 땅 그 크낙한
화해를 위해
세상의 이쪽과 저쪽의 분별을 위해
두 귀 바지랑대는
생명의 줄을 튼튼히 받치고 있다.

천년풍우 그 어느날에도
우리의 祭器, 祭器 같은 것.


먼 산 그리메 숱한 메밀밭 위으로
낮달이 조을고
젖은 빨래의
그 휴식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파란 하늘은 아득히 멀고
나는 왠지 눈물이 핑 돈다.



첫 뻐꾸기 울음소리


서 지 월


누이의 버선코를 돌아서 오는 것 같네.
빨랫줄에 널린 빨래
더욱 눈부신 대낮,
후미진 골짜기마다 魂불 놓아


사월이라 초파일
엄마는 절에 가시고
나는 그 소리 들으며
대청마루에 앉아 댓돌 보네 댓돌 보네.


곳간 절구방아 멈춘 지 오래
병풍 가린 문간방에 잠든 누이야
사푼사푼 걸어나와 하늘을 보아라
서낭당 내 너머 꽃구름 피고
극락세계 부처님 행차하신다.


청산은 왼몸으로 초록저고리
초록저고리 옷고름 연등 날리는 날
춘향이 언제 살아 죽었단 말인가
우리 누나 어느 봄날 저승 갔단 말인가


아른아른 비쳐오는 하늘 한자락
天雲寺 탑을 돌아 바스라지는데
홍진에 죽은 누이
하마 울까 웃으실까,
스란치마 깃을 치는
첫 뻐꾸기 울음소리.



파냄새 속에서 
 
서 지 월
     
정작으로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이 있다면
파냄새 속에 흥건한
어머니 치마폭 같은 훈훈한 바람
드리워진 하늘의 思想과
흙빛으로 물드는 노을,
저문 밭둑에
아무도 휘파람 부는 이 없어도
세월은 파꽃처럼 피었다 지고
새로 돋아나는 파냄새의 이랑 사이
실눈 뜨고 봄은 오건만
먼길 걸어온 나비들의 靑山에 깃들기 전
조금씩은 나래 접어 눈물을 심고 가는 길
나는 그 파냄새 속에서
코고무신 끌고 오시는 어머니의 갸름한 모습을
지난밤 꿈속에서도 보았었네.



푸른 하늘의 뜻은


서 지 월


내 마음의 시렁 위에
바람은 와서 머무나
검은 솥뚜껑 같은 구름 걷힌
밤나무 사이로 빤히 올려다보이는 하늘일 때
어머니는 젊은 날 木花밭을 오르시고
나는 그 밭둑에 홀로 핀
엉겅퀴꽃 해지도록
바라보고 있었네.


잡초 우거진 산길에는 땅을 오르는 꽃상여
상여꾼의 노래소리가 발밑에서 들려오고
장승처럼 머언 들녘에
봉긋 솟은 돌무덤 가으론
잦아드는 흑가마귀떼 울음소리,


등 굽은 새우마냥 낮에 나온 저 반달은
할머니적 마당가에 꽃씨 심던 호미 같고
우우 맑은 하늘에 바람 지나가는 것은
저려오는 손끝
장차 무엇이 될까 곰곰
생각하고 생각했던 돌각담
물달개비꽃 꿈이었네.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


                                        
서 지 월
 


하이네도 좋고 릴케도 좋고
바이런도 좋고 구르몽도 좋지만
우리의 산에는 우리와 같은 밥을 먹고
우리와 같이 눈물 흘리며 핍박 받아오던 시대의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
붉은 목젖의 피여 헝클어진 진달래꽃 다발 안고
북녘 어느 소년은 남으로 남으로
내려오고 있는가,


흰옷 입고 자라고 흰 창호지빛 문틈으로 세상 엿보고
동여맨 흰수건 튼튼한 쇠가죽북 울리며
예까지 흘러왔건만
소월의 산새는 지금 어디쯤 날아간 묘지우에서
점점이 멀어져간 돌다리와 짚신과 물레방아와
자주댕기 얼레빗...
이 땅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
섬돌밑에 잠드는가


그리운 백도라지 뿌리 깊이 내리여
천길 땅속 흐르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는가



비슬산 참꽃


 
서 지 월 


 
비슬산 참꽃 속에는 조그만
초가집 한 채 들어 있어
툇마루 다듬잇돌 다듬이 소리
쿵쿵쿵쿵 가슴 두들겨 옵니다


기름진 땅 착한 백성
무슨 잘못 있어서 얼굴 붉히고
큰일난 듯 큰일난 듯 발병이 나
버선발 딛고 아리랑고개 넘어왔나요


꽃이야 오천년을 흘러 피었겠지만
한 떨기 꽃속에 초가집 한 채씩
이태백 달 밝은 밤 지어내어서
대낮이면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


어머니 누나들 그런 날의 산천초목
얄리얄리 얄랴셩 얄랴리 얄라,
쿵쿵쿵쿵 물방아 돌리며 달을 보고
흰 적삼에 한껏 붉은 참꽃물 들었었지요



韓國의 달빛


서 지 월 


쟁반 위에 놓여져
床을 받치고
더러는 바람부는 청솔가지 솔잎 사이로
물소리 흩뿌리는 수작을 걸면서
억겹 산을 넘어
지름길로 오는구나.


玉돌이야 갈고 닦아 서슬이 푸른 밤
싸늘한 바위 속 어둠 밝히며
쟁쟁쟁 울려오는 은쟁반 소리
은쟁반 위의 거문고, 바람이 훔쳐내는
나의 파도소리…….


옛날엔 이런 밤 홀로 걸었노라.
걸어서 거뜬히 몇 십리도 갔노라
짚세기 신고 돌담길 세 번쯤 돌아
모시적삼 남끝동 임을 만나고
수줍어 돌아서는 강물도 보고
손 포개고 눈 포개고 달빛 또한 포갯노라.


창망히 멀어져 간 수틀 위 꽃밭과
애달피 구슬꿰는 피리소리가
시렁 위에 얹혀서 돌아올 때면
쑥국쑥국 쑥국새는 숲에서 울고
칭얼칭얼 어린 것은 엄마품에 잠든다.



朝鮮의 눈발


서 지 월 


나는 지금 세계의 가장 평안한 우차(牛車)에
실려가고 있다


아침 상 받으면
풋풋한 생채나물
그 미각을 더불어
어린 날의 서당골 물푸레나무
결 고운 길을 따라
잠 덜 깬 포대기 속 아이의
꿈결같이 굴러가고 있다


우리가 닿아야 할 예지의 나라
순은(純銀)의 밀알들,
바다와 강江이 놋요강처럼 놓이고
능陵은 풀잎처럼 잠든다


문경 새재에 눈이 내리면
청솔가지 꺾어들고 오는
하얀 버선코,
사슴의 무리가 눈을 뜬다
지붕밑 동박새가 살을 부빈다
마을에서도 숲에서도
눈은 내리고
누군가 흰 고무신 눈발속을
조심조심
미끄러져 가고 있다


아침 신문 유액 위 '조선통사(朝鮮通史)'가 빛나고
한 술의 배고픔보다 천 근의 무게로 울려 올
우리의 풍악소리.....
몇 백년쯤의 뒷날을 다시 생각노니,


지금 나는
세계의 가장 평안한 우차(牛車)에 실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잘도 넘어간다



밥그릇 


서 지 월 


바람이 부는 것은
몇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꼭 같다.
단군할아버짓적 박달나무 가지끝에서부터
불던 바람이
하사(下賜) 받듯 차례로 징검다리를 건네온 것이
目下, 수 천년
귓구멍 뚫린 콧구멍 뚫린
살풀이 한다.



바람 부는 날, 청솔방울
몸 데울 때는
다락에 올라서 피리를 불자.
밥그릇이 넘치도록 피리를 불자.


밥상 위의 밥그릇, 밥상 밑에 밥그릇, 부뚜막 위에 밥그릇, 부뚜막
밑에 밥그릇, 장독간에 밥그릇, 마당가의 개밥그릇......
어디를 가나 밥그릇은 하나씩 놓여 있다.
하나씩 놓여 있는 밥그릇에 六情의 唐菊花는 피고
한 그릇 한 그릇씩 떠받들어 온 香불, 숙원이여.


내 물려받은 하나의 밥그릇에도
朝夕으로 김이 서리고
그 唐菊花같은 香불같은
풀리지 않는 새벽 강의 김이 서리어
바다로 밀려난 뱃머리에서나
산으로 올라간 상여꾼의 북소리 끝에도
그 김이 서려 있는 걸 나는 보았다.


오늘 아침 밥상 위에도 맨 그 김은 서리고
새 바람 아닌 새 바람이 이 밥그릇으로 내림하는 수작을 알아차린
나는
두 귀가 번쩍 띄었다.



<시작노트>


  내가 시의 길을 그렇게 많이 걸어온 건 아니지만 길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굽이진 길을 쓰리고 아린 아리랑고개처럼 왔기에 긴 시간처럼 생각되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어떤 길을 모색하더라도 여기의 시는 내 시의 전형이라 감히 힘주어 말할 수 있는 작품들을 엄선해 본 것이다.

  즉, 전통서정시가 되겠는데 여기에서 전통이란 우리 민족만이 누리며 가질 수 있는 정서 아니겠는가. 전통정서가 민족정서가 융화되어 민족서정시가 된다고 보는데 나는 젊은 날부터 이것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가난한 꽃>에서는 소박한 산골 풀내음 정서가, <江물과 빨랫줄>에서는 시골 마당가의 빨랫줄과 모성애, <첫 뻐꾸기 울음소리>에서는 누이의 죽음을 뻐꾹새소리의 부활적 이미지와 접목시켜 보았으며,  <파냄새 속에서>는  어머니의 자애로움을,  <푸른 하늘의 뜻은>에서는 내 살아온 삶의 정서를,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에서는 남북분단과 통일에의 염원을, <비슬산 참꽃>에서는 우리 민족 고유정서와 애환을, <韓國의 달빛>에서는 고유정서와 민족정서의 융합을, <朝鮮의 눈발>에서는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밥그릇>에서는 역시 우리 민족의 혈통의 내림을 읊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저 만주땅 우리 한민족 정서가 되겠는데 무궁무진하다 아니할 수 없는 것은 오천년 역사 시원의 땅일 뿐만 아니라 고조선을 거쳐 부여 고구려 발해를 잇는 민족혼과 일제치하 독립운동 정신사가 맞닿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정치를 하든 과학을 하든 경제를 하든 예술을 하든 한시도 잊어서는 아니 될 부활을 꿈꾸어야 하는 땅이다. 그게 없으면 우리는 애비 없는 자식으로 앞만 보고 가다가 뿌리 잃은 민족으로 불운을 맞게 되는 것이다. 두고 보라구! (서지월 記)   

 



[서지월시인 약력]


• 1955년, 고주몽 연개소문과 같은 생일인 음력 5월 5일 단오날 대구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371번지에서 태어남. 본명 서석행(徐錫幸), 아명 건식(巾湜).
• 가창초등학교, 대륜중고등학교를 거쳐 대구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 졸업.
• 1985년 10월, 제2회「전국교원학예술상」문예부문에 시 <꽃잎이여>로 大賞에 당선, 문교부장관상 수상.
• 1985년 12월,『심상』신인상에 시 <겨울 信號燈>외 3편 당선.
• 1986년 6월,『아동문예』신인문학상 동시 <바람에 귀대이면> 외 4편 당선.
• 1986년 8월,『한국문학』신인작품상에 시 <朝鮮의 눈발> 당선.
• 1993년, 제3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 1998년, 제1회「한하운문학상」본상 수상.
• 1999년, 전업작가 정부특별문예창작지원금 1천만원 수혜시인에 선정됨.
• 2000년, 한국문인협회 문경지부 주관「正文文學賞」수상.
• 2002년, 한국시인협회 주관 중국 서안-돈황 '실크로드 아시아시인대회' 참가.
• 2002년, 중국「長白山文學賞」(세계문학상) 수상.
• 2003년, 중국 연길 한국정지용시인 국제세미나 참가 등 일곱 차례에 걸쳐 만주땅 전역을 답사함 .
• 2005년, 일본 최대 詩잡지「지구」詩 초청으로 도쿄 아시아환태평양시인대회 참가.
• 2006년, 시 <건들바위>, <울릉도 섬말나리꽃>, <영양고추> 등이 창작 예술가곡으로 작곡 되어 불리워짐.
• 2006년, 대구 MBC 문화방송 노래 <달구벌의 빛과 소리>가 가곡으로 작곡됨.
• 2006년, 한국전원생활운동본부 주관, 詩碑「신 귀거래사」가 영천 보현산자연수련원에 세워짐.
• 2007년, 한국시인협회 창립 50주년기념 향토적인 삶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인으로 선정됨.
• 2007년, 달성군 주관, 한국시인협회 MBC KBS 등 후원으로 詩碑「비슬산 참꽃」이 비슬산 자연휴양림에 세워짐.
• 2008년, 서울특별시「시가 흐르는 서울」에 시 <내 사랑>, <인생을 묻는 그대에게>가 선정됨.


• 중앙일보「한국을 움직인 인물들」,조선일보「국내 주요인사 인물정보 BD」,문화일보「문화예술인 BD」,연합뉴스「한국 주요인물」에 선정됨. 불교TV방송국『불교인명대사전』에 수록됨.『韓國詩大事典』에 수록됨.
•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회원(중앙위원)·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한국동시문학회 · 아동문예작가회 회원. 대구문인협회 및 대구시인협회 회원. <낭만시> 동인으로 활동.
• 현재, 만해실천사상선양회 자문위원. 영남오페라단 이사. 한중공동 시전문지『해란강』한국측 편집 주필. 만주사랑문화인협회 상임고문. 동아문화센터, MBC문화센터, 경주대사회교육원, 달성시인대학 등을 거쳐 현재 대구시인학교 지도시인.



시집


¤『꽃이 되었나 별이 되었나』(1988, 나남출판사)
¤『江물과 빨랫줄』(1989, 문학사상사)
¤『가난한 꽃』(1993, 도서출판 전망).대구시인협회상 수상시집.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1994, 시와 시학사)
¤『팔조령에서의 별보기』(1996, 도서출판 중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우수시집으로 선정됨).
¤『백도라지꽃의 노래』(2002, 중국 요녕민족출판사),(중국 '장백산문학상' 수상시집)
¤CD롬시집『가난한 꽃』(1998, 한국문연, 정선시 188편 수록)
¤『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2003,천년의 시작.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시집으로 선정됨).
¤동시집『휘파람나무』(1987, 아동문예사. 공저).
¤『한국아동문학선집.권42』에 동시가 수록됨(계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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