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詩壇]이민영 시-'못물을 보며'
[오늘의 詩壇]이민영 시-'못물을 보며'
못물을 보며
이 민 영
버릴 수 없는 무엇 하나
담고 산다
담지 않는다면 잊혀지고 홀가분했던
자유인 것을
자꾸만 담는게 사는 일인가 보다
어느 날은
비워내고자 작정하면서도
애인처럼 달겨드는 시름같은 영상이여
눈을 감고 걸어도 내안에 있구나
그래
살아온 생, 또 마누라라 하리
지내온 자욱들, 또 친구라고 하리
**이민영시인:고 박목월시인이 펴낸 시전문지「심상」으로 작품 활동. 「시사랑사람들」대표.
●해설●
-못둑은 물을 담아야 제 구실을 한다. 그래서 시인은 '담지 않는다면 잊혀지고
홀가분했던/ 자유인 것을 / 자꾸만 담는게 사는 일인가 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평범한 어조로 말하고 있는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인간의 욕망인 것이다. 못물을 담고 있는 둑은 인간이 갖는 욕망의 그릇 다름 아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못물을 담으면 흘러넘치거나 못둑이 무너져 내리는 수가 있는데,
그걸 시인은 '비워내고자 작정하면서도 / 애인처럼 달겨드는 시름같은 영상'이라고
했다. 무슨 의미인가. 비워내고자 하는데 못물의 수면에 비치는 영상은
하늘이나 구름이나 못가의 나무들의 영상인 것이다.
이 역시 욕망의 그릇에 비치는 욕구 또는 집착 다름아닌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개탄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또, '눈을 감고 걸어도 내안에 있'다 했으니 욕망을 떨치지 못하는 끝없는
욕구를 말하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생(生)에 '마누라'나 '친구'가 존재하듯
욕망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하고 담담하게 처리하고 있지만,
못둑이 '버릴 수 없는 무엇 하나 담고'살듯이 욕망을 떨쳐버릴래야 떨쳐버릴 수
없음을 자의식의 세계로 끌여들어 성찰의 자세로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그 못물이 물을 담는 구실을 하지만 적당함을 넘어서 욕망이 욕심으로
번져 과욕이 되면 넘쳐나서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목둑이 못물을 모두 흘려보내며 담지 않을 수 없듯이
욕망을 버릴 수 없는 것도 인간의 욕구인 것이리라.
길을 가다가 만난 평범해 보이는 것 같은 풍광의 못물에서
경각심이 유발되듯이 일상에서 만나는 여러 형상의 만상 속에서도 인간다운
삶과 그렇지 못함을 깨우친다면 그게 부처와의 만남 아니겠는가.
부처 앞에서 두 손 모으는 수단만이 깨우침을 갖거나 참회를 하거나
마음 속 번뇌를 지우는 것이 아니리라.
모양 없는 것에서 모양을 찾듯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심리반영이
깨달음의 세계로 한 발 다가서는 것이리라. 비단 못물 뿐만이겠는가.
이파리를 많이 달고 있는 나뭇가지가 바람에 더욱 흔들리며,
짐을 많이 실은 수레가 힘겹게 굴러가는 이치 다름 아닌 것이다.
부는 바람 탓하지 마라
예비된 몸짓인 것을
지는 꽃 한탄하지 마라
작별의 시간인 것을
앞서 가는 자 부러워 마라
먼저 일어나 걸어가는 것을
높은 나무의 열매 부러워 마라
부귀영화가 매달려 있음이 아닌 것을
ㅡ시 <무심경(無心經)> 전문.
이처럼, 일찌기 필자가 <무심경(無心經)>이라는 시를 읊었듯이
욕망 욕구 욕심뿐이겠는가. 남을 탓하거나 자신을 한탄하거나 남을 부러워하거나
하는 것도 자신을 갈고닦는자세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리라.
자신을 갈고닦는 삶의 방식이 전제가 되어야 하리. 오늘날같이
사회가 혼탁하고 불신으로 팽배해진 인간세상을 보면, 하루살이 보다
못한 삶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불공을 들이듯 땀을 흘리며 노력하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그게 착하게 사는 길이며 자신을 위한 것이며 이웃을 평화롭게 하는 일일 것이다.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데는 아무도 간섭하는 이가 없다.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지 않고서 남의 것을 탐하거나
남들 잘 되는 것을 비난하거나 헐뜯는다면 바르게 살아가는
정신자세가 아닌 것이다.
모처럼 만난 한 시인의 시 <못물을 보며>가 보여주는 세계가 바로
자신을 바로 보고 성찰하는 자세를 우리들에게 넌즈시 제시해 주고 있으며,
묵시록 같은 강동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서지월시인/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