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단

[오늘의 詩壇]서문향 시-'늙은 느티나무와 흰 플라스틱 의자'

아미산월 2008. 10. 3. 04:59

[오늘의 詩壇]서문향 시-'늙은 느티나무와 흰 플라스틱 의자'

 

늙은 느티나무와 흰 플라스틱 의자

 



서 문 향


끝도 없이 타오르던 매미의 절규도
지글거리던 한낮의 더위도 한풀 누그러진 밤
어둠으로 채워진 역 광장 구석에 흰 플라스틱의자
다리 하나 잘린 채 버려져 있다
그 곁에 짙은 그늘 드리운 늙은 느티나무
버려진 흰 플라스틱의자 내려다 본다

지친 자들의 육신 지탱해 준 죄로 결국
외면 당해 팽개쳐진 불구의 몸
일어서려 안간힘 쓰는 의자의 일그러진 미소가
잠든 척하는 옆의 사낼 슬프게 한다

흔들리는 도시의 네온불빛 사이로
절뚝거리며 걸어오는 어둠이 있다

 

**서문향:본명 서경원.부산에서 교사로 있음.

 

<해설>

 

도심생활 속 현대인의 일그러진 삶과 풍정을 이토록 실감나게 표현한 작품이 잘 있을까. '끝도 없이 타오르던 매미의 절규도 /지글거리던 한낮의 더위도 한풀 누그러진' 그러한 분위기의 밤이다. 그것도 '어둠으로 채워진' 역 광장 구석이다. 거기 다리 하나 망가진  흰 플라스틱의자가 버려져 있는데,  그곁에 '그 곁에 짙은 그늘 드리운 늙은 느티나무가 버려진 흰 플라스틱의자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다. 두 물상과의 은근한 비유가 일품이다.

 

또한, 불구의 몸으로 '일어서려 안간힘 쓰는 의자의 일그러진 미소'와 '잠든 척하는 옆의 사내'의 비유가 또 뭉클하게 다가온다. 배경이미지인 흔들리는 도시의 네온불빛 사이로 어둠이 '절뚝거리며 걸어오'고 있다고 표현했으니 이 또한 한쪽으로 치우쳐진 도심의 삶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듯 보이는 설정과 구성력이 탄탄한 문장표현으로 더욱 긴장의 끈을 놓치지않고 있다.

 

(서지월시인/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