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TV]서지월 시-낙동강은 말이 없다
[KBS-TV ]서지월 시-낙동강은 말이 없다
낙동강은 말이 없다
서 지 월
밤이 오기까지 꽃들은
말없이 피었다가 지고
먼 숲의 바람소리 흩어졌다 모이는 강안에서
물살 가르며 날으는 철새떼처럼 우리는
저마다 하나씩의 비릿한 꿈을 안고
강을 떠나고 있다
목발 짚고 돌아선 쓸쓸한 총칼* 뒤로
한때 피의 노을이 흐르고
지금은 초롱초롱 눈 맑은 별들마저
하늘에서 눈물짓는 밤ㅡ
사슴같이 목이 긴 사람들과 질경이같이 질긴 목숨의
이 강에 우리는 목 축이고 피리 불었건만
어찌하여 강은 썩어만 가는가,
선량한 인간의 마을로 흘러와서
우리의 쌀이 되고 젖줄이 되고 천년 하늘은
강둑을 따라 구비쳐 푸르렀건만
잔혹한 문명의 이기에 지배당한 포로처럼
젖은 이마의 식은 땀 훔쳐내고
그 이마와 가슴과 허리에 죽음의 붕대를 감고서
오늘도 마른 휘파람 굴리며 낮게
낮게 신음하고 있는가
너와 더불어 살던 흰옷의 물새와
따뜻한 입김의 풀꽃은 이내
피었다가 지고
달디단 바람과 꽃과 별은 쓰디쓴 입맛처럼 울고 있다
죽은 물새들의 날개죽지, 상한 지르러미의 은어떼
신이 쓰다버린 비닐봉지, 빈 깡통 시궁창의 쇳물......
둥둥 떠서 흐르고
강은 썩어 어디로 가 몸 눕히고 다리 뻗는가
이제는 썩은 물이 밭고랑 너머
목쉰 음성으로 식탁에 오르고
화병의 꽃들도 시들어버리는 시간
피곤한 육신은 접힌 우산처럼 버려지나
인간의 마을에서는
젖먹이 아기도 목이 가려워
칭얼칭얼 깨어서 운다
밤이 오기까지
말없이 꽃들은 피었다가 지고
숨져간 아버지와 누이들의 강에
뻐꾹, 뻐꾹, 뻐꾹, 뻐꾹......
뻐꾸기도 물맛이 쓰다고 돌아앉아 울고
청산도 잿빛에 하늘에 싸여
말이 없네
*6.25사변의 낙동강 전투.
(KBS-TV 다큐멘터리[환경특집]-'낙동강을 살리자' 1991년 6월 23일)
ㅡ이 시는 한국 낙동강에 페놀사건이 일어나 세상이 떠들썩했는데
KBS-TV에서 [환경특집] 다큐멘터리<낙동강을 살리자>가 1991년 6월 23일 방영되었다.
이 프로에 한국 서지월시인의 시 '낙동강은 말이 없다'가 소개됐으며
서지월시인이 직접 낙동강에 나가 거니는 모습도 방영 되었다.